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가 5월23일 강원도 철원의 육군 3사단을 방문해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우리나라 안보는 국민이 선출한 정치권력(대통령)과 문민 관료(국방부)가 주도하고 안보 전문가 집단인 군은 군사작전으로 이를 뒷받침한다. 국군조직법에는 “국방장관이 대통령의 명을 받아 군사에 관한 사항을 관장하고 합동참모의장과 각군 참모총장을 지휘·감독한다”고 돼 있다. 황 대표의 주장과 달리 우리 헌법과 법률에는 정부, 국방부, 군의 입장이 다를 수 없게 돼 있다. 군이 정책을 결정하는 게 아니라, 정치인이 결정한 안보 정책을 군이 집행한다. 이 방식을 ‘문민통제’라고 한다. 문민통제는 현대 민주주의 국가의 상식이다. 문민통제는 왜 필요했을까? 역사를 살펴보면, 국가와 국민을 수호하기 위해 만든 군이 사회를 위협하는 경우가 있다. 제1차 세계대전 당시 프랑스 총리 조르주 클레망소는 “전쟁은 너무나 중요해 장군들에게 맡길 수 없다”며 문민통제의 중요성을 강조한 바 있다. 1차 대전 발생 이전 유럽의 민간 지도자들은 군부의 전쟁 주장을 제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국내에선 아직 낯선 문민통제 ‘전쟁이 정치 도구’란 독일 클라우제비츠의 주장과는 반대로, 군사가 정치와 외교를 선도하고 대체하는 현상이 나타났다. 당시 유럽의 군대는 사회와 동떨어진 ‘국가 속의 또 하나의 국가’가 됐고, 각국 황제와 정치 지도자의 정책을 정면으로 거스르는 월권을 일삼았다. 제어되지 않는 군부는 무모한 전쟁으로 나아갔다. 군이 독자적인 정치 세력이 돼 국가를 위협한 경우는 일본에서도 나타났다. 1930년대 중일전쟁을 주도한 일본군은 동아시아 전체를 전쟁터로 만들고 미국 진주만을 공격했다. 일본의 제2차 세계대전은 처참한 패전으로 끝났다. 제1·2차 세계대전을 통해 군이 폐쇄적이고 권력화된 집단이 돼 시민과 공동체의 안전을 위협한 것을 겪은 뒤 민주주의 국가에선 문민통제가 원칙으로 자리잡았다. 국내에선 1993년 문민정부가 들어서면서 군부의 정치 개입이 끝났지만, 아직 일부에선 문민통제를 낯설어한다. 국방부와 합동참모본부(합참)가 뭐가 다른 조직인지 정확히 아는 사람이 드물다. 국방부와 합참 청사는 한울타리 안에 있다. 서울 용산구 국방부 정문 앞에서 바라보면 정문 왼쪽 기둥에 ‘국방부’, 오른쪽 기둥에 ‘합동참모본부’라고 적혀 있다. 합참은 군부대이고 국방부는 정부조직법에 따른 정부 부처이다. 국방부는 외교부, 교육부 등과 같이 정부 부처이지만 많은 사람이 국방부를 군부대로 착각한다. 현실을 보면 착각할 만하다. 국방부에는 현역 영관급 장교와 장군이 다수 근무한다. 국방부 고위 공무원단에 속하는 국장급 이상의 직위 상당수를 현역 또는 예비역 장군들이 맡고 있다. 국방장관은 군의 대표자가 아니라 총체적 국정 운영을 맡는 민간 국무위원이지만, 예비역 장군들이 국방장관을 맡아왔다. 군복을 벗자마자 국방장관이 된 경우도 여럿 있다. 이명박 정부 때인 2009년 9월23일 아침 8시, 국방부과 합참이 있는 용산 연병장에서는 김태영 합참의장 이임식과 전역식이 열렸다. 같은 날 오전 9시 국방부 대강당에서는 김태영 국방장관 취임식이 열렸다. 김태영 육군 대장은 전역 1시간 뒤에 국방장관이 됐다. 정경두 국방장관은 지난해 9월21일 오후 2시 장관에 취임했다. 앞서 정 장관은 같은 날 오전 10시30분 합참의장 이임식과 전역식을 하고 공군 대장 군복을 벗었다. 그는 전역한 지 3시간30분 뒤에 국방장관이 됐다. 이와 달리 미국은 국방부의 장·차관과 국·실장급 간부 직위는 현역에서 전역한 후 7~10년이 넘지 않으면 맡을 수 없도록 하고 있다. 역대 미국 국방장관은 대부분 정치인, 교수, 기업가 출신이었다. 현재 장관인 패트릭 섀너핸은 항공사 보잉의 수석부사장 출신이다. 장군 출신 국방장관은 1950년대 조지 마셜과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초대 국방장관인 제임스 매티스 2명뿐이다. 미 국방장관은 정치인, 교수, 기업인 출신 미국의 관련 법은 군 출신은 전역 후 7년이 지나야만 국방장관에 임명될 수 있도록 제한하고 있다. 지난해 1월 미 상원 군사위는 2013년 해병 대장으로 전역한 매티스 장관 후보자에 한해 예외를 적용하는 법률안을 통과시켰다. 미국이 민간인 출신 국방장관을 고집하는 것은 군 내부의 불필요한 인맥 형성을 막고, 군 통수권자인 대통령을 보좌해 문민통제에 앞장서야 할 국방장관이 군의 이해관계를 대변하는 가능성을 막기 위해서다. 군 내부의 불필요한 인맥 형성이 쿠데타로 이어진 불행은 우리 현대사에서 되풀이된 적 있다. 황교안 대표는 공안 검사 출신이다. 황 대표는 공안 검사 출신임을 내세우고 자랑한다. 공안은 ‘공공의 안전과 평온’을 뜻한다. 공안은 우리 헌법의 가치를 지키는 일이다. “군은 정부, 국방부의 입장과도 달라야 한다”는 황 대표의 주장은 헌법이 규정한 문민통제와 양립할 수 없다. 공공의 안정과 평온을 허무는 일이다. 권혁철 한겨레평화연구소장 nur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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