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평양의 노동당 중앙위원회 청사 집무실에서 2019년 신년사를 발표했다고 <조선중앙텔레비전>이 1월1일 보도했다. 김 위원장이 집무실에서 신년사를 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조선중앙통신 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월2일(현지시각) 백악관에서 열린 각료회의에서 김정은 위원장이 보낸 친서를 들어 보이며, 북-미 대화 의지를 밝히고 있다. AP 연합뉴스
북한 최고지도자는 해마다 1월1일 미리 녹화(녹음)한 신년사를 통해 새해 국정운영의 방향을 제시한다. 신년사의 구성은 대체로 정해져 있다. 먼저 지나간 해의 성과를 짤막하게 평가한다. 이어 새해의 ‘으뜸 구호’를 제시하고, 국내 부문별로 새로운 목표를 제시한다. 여기까지가 ‘대내용’인데, 대체로 신년사의 3분의 2 정도를 이에 할애한다. 신년사의 주요 ‘독자’가 북한 주민이란 뜻이다. 이어 ‘대외용’ 메시지가 등장한다. 통상 남북관계에 대한 평가와 전망, 사회주의 동맹국을 중심으로 한 대외정책 기조, 이어 미국을 비롯한 ‘적대국가’와의 관계에 대한 입장을 순서대로 밝힌다. 북한의 대외정책 기조를 분석·전망하는 데 신년사가 중요한 것도 이 때문이다. 올해 신년사 구성도 전례를 충실히 따르고 있다. 김 위원장은 2018년을 “대내외 정세에서 커다른 변화가 일어나고, 사회주의 건설이 새로운 단계에 들어선 역사적인 해”였다며 “지난해 4월에 진행된 당 중앙위원회 제7기 제3차 전원회의”를 “전화적 의의를 가지는 중요한 계기”라고 평가했다. 4·27 판문점 남북 정상회담을 일주일 앞둔 지난해 4월20일 열린 노동당 중앙위 7기 3차 전원회의에서 북한은 이른바 ‘병진 노선’(핵-경제 병행발전 추진)의 ‘완성’을 선언하고, ‘새로운 전략 노선’을 채택했다. 이를 두고 김 위원장은 신년사에서 “전체 인민이 경제 건설에 총력을 집중할 데 대한 당의 새로운 전략적 노선”이라고 언급했다. ‘경제 건설 총력 집중’이 북한의 새로운 ‘지도 이념’이란 뜻이다. 김 위원장은 이어 전력, 석탄, 과학·교육, 문화·예술 등 부문별로 지난해 이뤄낸 성과를 평가했다. 특히 군수공업 부문에선 “경제 건설에 모든 힘을 집중할 데 대한 우리 당의 전투적 호소를 심장으로 받아안고, 여러 가지 농기계와 건설기계, 협동품들과 인민 소비품들을 생산하여 경제발전과 인민생활 향상을 추동했다”고 평가했다. ‘새로운 전략 노선’에 따라 군수공업 부문이 민수용 ‘경제 건설’에 적극 나서고 있다는 뜻이다. 김 위원장은 신년사에서 2019년 북한의 ‘으뜸 구호’로 “자력갱생의 기치 높이 사회주의 건설의 새로운 진격로를 열어나가자”고 강조했다. 특히 김 위원장은 “인민경제 전반을 정비 보강하고 활성화하기 위한 국가적인 작전을 바로 하고 강하게 집행해나가야 한다”고 지적했다. ‘인민경제’는 북한 주민의 일상을 뜻한다. 앞서 김 위원장은 2011년 12월 집권 이후 여러 차례 “다시는 우리 인민들이 허리띠를 조이지 않고 사회주의 부귀영화를 누리게 하겠다”고 공언해왔다. 하지만 첨예한 남북-북미 대립 속에 이렇다 할 성과를 내놓지 못했다. 2017년 신년사 때 김 위원장이 “언제나 늘 마음뿐이었고 능력이 따라서지 못하는 안타까움과 자책 속에 지난 한 해를 보냈다”고 말한 것도 이 때문이다. 김 위원장은 올 신년사에서 “인민생활을 획기적으로 높이는 것은 우리 당과 국가의 제일가는 중대사”라고 새삼 강조했다. 핵을 내려놓지 않고는 쉽게 이루기 어려운 과제란 점을 김 위원장도 잘 알고 있을 게다. 선이후난식 접근, 대북제재가 걸림돌 김 위원장은 지난해 신년사에서 북한의 평창 겨울올림픽 참가를 밝혔다. 후속 협상을 통해 문을 연 남북관계는 4월·5월·9월 3차례에 걸친 정상회담까지 내달리며, 이전과는 전혀 다른 단계로 진입했다. 판문점 공동경비구역에선 무장 경비 병력이 철수했고, 비무장지대에 전진 배치됐던 초소를 서로 철거하면서 남북을 잇는 11개의 오솔길이 생겨난 것이 이를 극적으로 상징한다. 김 위원장이 이번 신년사에서 “지난해는 70여 년의 민족 분열 사상 일찍이 있어본 적이 없는 극적인 변화가 일어난 격동적인 해였다”고 평가한 것도 이 때문이다. 특히 김 위원장은 “조선반도에 더 이상 전쟁이 없는 평화시대를 열어놓으려는 확고한 결심과 의지를 담아 채택된 판문점선언과 9월 평양 공동선언, 북남 군사분야 합의서는 북남 사이에 무력에 의한 동족상쟁을 종식시킬 것을 확약한 사실상의 불가침 선언”이라고 평가했다. 지난해 9월 평양 정상회담 직후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 등은 ‘사실상의 종전선언’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이어 김 위원장은 2019년 남북관계 진전을 위한 제안도 내놨다. 첫째, “군사적 적대관계 해소를 지상과 공중, 해상을 비롯한 조선반도 전역에로 이어놓기 위한 실천적 조치”다. 둘째, “정세 긴장의 근원으로 되고 있는 외세와의 합동군사연습” 중단과 “외부로부터의 전략자산을 비롯한 전쟁 장비 반입” 중지다. 셋째, “정전협정 당사자들과의 긴밀한 연계 밑에 조선반도의 현 정전체제를 평화체제로 전환하기 위한 다자협상” 추진이다. 지난해 한반도에서 군사적 긴장을 낮췄던 긍정적 조처를 지속·심화하자는 얘기다. 그간 남북관계는 사회·문화·경제 교류로 물꼬를 트고, 군사적 신뢰 구축 등으로 나아갔다. 쉬운 것부터 먼저 해 신뢰를 쌓은 뒤 어려운 것은 나중에 한다는 이른바 ‘선이후난’식 접근이었다. 하지만 국제사회의 대북제재가 지속되면서 과거 ‘쉬운 일’이 되레 ‘어려운 일’이 돼버렸다. 군사적 신뢰 구축 측면에서 남북이 성과를 낼 수 있었던 건 이런 정세가 만들어낸 ‘역설’이었다. 김 위원장은 내놓은 제안에 대해 ‘우리의 주장’이란 표현을 썼다. 얼마든지 ‘협상’이 가능하다는 뜻이다. 이어 이렇게 말했다. “북남 사이의 협력과 교류를 전면적으로 확대 발전시켜… 온 겨레가 북남관계 개선의 덕을 실지로 볼 수 있게 하여야 한다. 당면하여… 아무런 전제조건이나 대가 없이 개성공업지구와 금강산관광을 재개할 용의가 있다.” “북남관계 개선의 덕을 실지로 볼 수 있게” 해야 한다는 주장은 문재인 대통령이 강조하는 ‘평화가 경제다’란 구호와 맞닿아 있다. 다만 개성공단과 금강산관광 재개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대북제재와 맞물려 있는 게 현실이다. 미국은 지난해 협상 국면에서도 추가적인 대북 독자 제재에 나서는 등 ‘최대의 압박’ 기조를 강화해왔다. 북-미 협상이 교착 국면으로 접어든 결정적 이유다. 북-미 관계에 대한 김 위원장의 언급이 이번 신년사의 핵심이었던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북-미 교착 국면을 뚫고, 1월 초로 예상됐던 2차 북-미 정상회담을 성사시킬 수 있는 새로운 제안을 내놓을 것인지가 관심의 초점이었다. 김 위원장은 먼저 “역사적인 첫 조미 수뇌 상봉(북-미 정상회담)은 지구상에서 가장 적대적이던 조미 관계를 극적으로 전환시키고, 조선반도와 지역의 평화와 안전을 보장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고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이어 그는 이렇게 말했다. 빨리빨리, 더 이상 늦어지면 안 된다
지난해 6월 중국을 방문한 김정은 위원장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왼쪽)과 손을 맞잡으며 인사하고 있다. 남북 정상회담과 마찬가지로, 북-중 정상회담도 지난해에 3차례 열렸다. 조선중앙통신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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