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15일 일본 도쿄에서 만난 호시 겐토(오른쪽)와 성소수자 채용 플랫폼 ‘잡레인보우’를 통해 취업한 나카소네 다다시. 호시는 지난해 6월 손정의 일본 소프트뱅크 회장이 육영재단을 설립해 선발한 일본의 차세대 리더 96명 가운데 한 사람으로 뽑혔다.
가족에게 못한 커밍아웃을 회사에서 세계적으로 볼 때 LGBT는 인권 의제를 넘어 경제 전략이 된 지 오래다. 구글·애플·스타벅스·나이키·아디다스 등 글로벌 기업은 LGBT를 기업 브랜드 가치를 높이는 마케팅 수단으로 활용해왔다. 이른바 ‘레인보우 마케팅’이다. 일본 기업도 여기에 보조를 맞추고 있다. 2015년 일본 광고회사 덴쓰는 일본 LGBT 시장 규모가 6조엔(약 60조원)이라는 조사 결과를 발표하며 ‘핑크 머니’(LGBT의 구매력을 말함)에 주목했다. 2016년 11월 일본에서 처음 LGBT 친화 기업 목록인 ‘프라이드 인덱스’가 발표됐다. 마이크로소프트나 유니레버 등 글로벌 기업 말고도 일본항공·파나소닉·소니·후지쓰·라쿠텐 등 일본 토종 기업까지 모두 53곳이 LGBT평등지수 최고 레벨인 ‘골드’를 받았다. 지난해 5월엔 2020년 도쿄 올림픽·패럴림픽 조직위원회가 올림픽에 물품·서비스를 제공하는 모든 기업에 LGBT 직원에 대한 차별 금지 규정을 요구했다. 2016년 창립한 잡레인보우가 ‘고급’ 취업 정보와 LGBT 친화 기업 평판을 공유하는 사이트였다면, 2017년 6월 연 ‘아이추즈’(ichoose.jp)는 LGBT 구직자와 LGBT를 채용하기 원하는 기업을 연결하는 구인·구직 플랫폼이다. 이곳에서 LGBT는 자신의 성정체성을 분명히 밝히는 ‘성평등 이력서’를 기업에 제출할 수 있다. 아이추즈가 제공하는 성평등 이력서를 보면 ‘성별’의 경우 남성과 여성 말고도 트랜스젠더여성(MTF), 트랜스젠더남성(FTM)을 포함해 6가지 추가 항목이 제시됐다. 아이추즈 기업 구인광고에는 LGBT를 위해 운영하는 복리후생 제도와 소수자 친화적인 사내 문화를 소개하는 항목이 필수로 포함돼 있다. 지난 1년 동안 80여 기업이 아이추즈를 통해 ‘LGBT 인재’를 원한다는 광고를 게시했다. “절반 정도는 대기업이에요. 우리 전략은 대기업 중심입니다. 작은 기업이 많으면 사람들이 잘 안 찾아 브랜드 가치를 높일 수 없으니까요. 의도적으로 대기업, 외국계 기업, 정보기술(IT) 기업 등을 받으려고 합니다.” 이날 호시와 함께 만난 나카소네 다다시(21)는 잡레인보우 덕분에 가족에게도 하지 못한 커밍아웃을 회사에서 할 수 있었다고 했다. 그가 지난 4월부터 인턴십을 시작한 공간 대여 업체 ‘겐자야’는 잡레인보우로 LGBT 직원을 채용하겠다는 구인광고를 냈다. “자기 자신을 감추지 않고 일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게 회사의 모토예요. 게이라는 사실을 감추고 아르바이트를 할 때는 느끼지 못했던 안정감과 업무 만족도를 경험하고 있어요.” 직원 50여 명의 소규모 기업인 겐자야에서 나카소네는 동료들과 함께 LGBT 사업을 구상하고 있다. 대학교 3학년인 그는 인턴십을 마치면 정규직 사원으로 채용될 것 같다고 말했다. 일본의 성소수자단체(Nijji Diversity)가 조사한 결과를 보면, LGBT가 LGBT 친화적인 기업에서 일할 때 근로 의욕은 27%포인트, 생산성은 30%포인트 올랐다. 호시는 자신의 성적 지향을 회사에서 인정받는 일의 중요성에 대해 “모든 사람은 자기답게 일할 때 행복하다. LGBT도 마찬가지다. 일반적으로 LGBT는 성정체성을 숨기고 사는 것을 당연시하는데, 궁극적으로는 성정체성 자체가 무의미한 사회가 좋은 사회다”라고 말했다. LGBT답게 일하는 것 잡레인보우의 성장세는 가파르다. 매출액을 공개하지는 않았지만 밀려드는 일을 기존 직원 4명으로 감당할 수 없어 다음달까지 3명을 추가 고용한다고 했다. “일본 경제가 살아나면서 노동인구 부족 문제를 LGBT 채용으로 해결하는 부분도 있어요. 도쿄올림픽을 계기로 인권경영 붐도 일어났고요. 하지만 ‘LGBT 프렌들리 정책’이 인권경영이나 기업 사회공헌 정도에 머물면 안 돼요. 기업의 경쟁력을 키우는 데 LGBT 고용이 이득이 된다는 공감대를 확산시킬 겁니다.” 도쿄(일본)=글·사진 진명선 기자 toran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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