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하선씨는 <까칠남녀> 성소수자 특집 방송이 있은 뒤 ‘음란한 여자’라는 프레임이 씌워지고 혐오가 강화돼 자신을 향했다고 말했다.
EBS 홍보담당자는 1월19일 <한겨레21>과 한 통화에서 “은하선씨 하차는 류재호 CP의 결정이지만, 회사 공식 입장도 그 결정과 같다. 은하선씨 하차 결정이 번복될 가능성은 현재로서는 없다”고 말했다. <까칠남녀> 제작진은 마지막 녹화를 앞두고 패널 7명 가운데 1명 하차, 3명 녹화 거부라는 상황을 맞아 ‘대책’을 논의하고 있다. 논란의 한가운데 있는 은하선씨를 1월18일 만났다. ‘방송에서 하차해야 한다’는 통보를 받은 게 1월13일이다. 달력을 보니 토요일이더라. 토요일 오전, <까칠남녀> 제작진이 연락했다. 오후에 시간이 가능해 밤 9시에 만났다. 제작진이 거의 다 나를 만나러 왔다. 이 많은 사람이 나를 만나러?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하차를 해야 한다’는 이야기였다. 위에서 결정이 내려왔는데 받아들여야 한다고 했다. 제작진은 금요일 밤 12시에 ‘은하선을 하차시키라’는 통보를 받았다고 했다. 공식적인 결정을 하고 전달하기에 이상한 시간이다. 처음엔 구체적인 ‘결격 사유’는 듣지 못했다. 나의 하차를 결정했다는 류재호 CP와는 만난 적도, 통화를 한 적도 없다. “EBS로부터 사과받고 싶다” 교육방송(EBS)이 “은하선씨의 하차는 성소수자 탄압이 아니다”라는 공식 입장을 냈다. 이 모든 사건이 ‘성소수자 특집’ 방송 뒤에 일어났다. <까칠남녀>는 여러 젠더 이슈를 다루면서 지지도 많이 받았지만 ‘교육방송에서 콘돔이 웬 말이냐’ ‘남혐 방송이다’ 같은 왜곡된 비난도 많이 받았다. ‘양성애자’로 내 이야기를 한 ‘LGBT 방송’ 이후 나에 대한 공격이 훨씬 심각해졌다. ‘남자랑도 하고 여자랑도 하는 부도덕한 여자’라는 ‘음란한 여자’ 프레임이 씌워졌다. 내가 쓴 책 <이기적 섹스>에서 ‘섹스’ 행위 부분만 발췌하고, 내가 하지도 않은 자위 관련 말들을 한 것처럼 왜곡했다. 이 모든 공격의 주체는 반동성애 단체들이다. EBS가 이야기한 그 민원들도 결국은 ‘동성애를 반대하는 세력’이 제기한 것이다. 동성애 혐오에서 시작된 민원으로 나를 ‘결격사유가 있는 사람’으로 취급했다. 지난해 3월 첫 방송부터 출연했다. 프로그램 녹화 과정은 어땠나. 제작진이 정말 많이 고민하고 공부하면서 프로그램을 만든다. 방송을 만드는 1년 동안 즐거웠다. 매회 방송 주제와 관련해 대중과 소통할 수 있는 언어로 말하기 위해 자료를 찾고 공부하면서 방송했다. 나도 많이 배웠다. 한 번도 브래지어를 안 하는 것을 생각해본 적이 없는데, ‘노브라’ 편에서 브래지어가 여성의 몸을 어떻게 억압하는지 인식하게 됐다. 무엇보다 ‘성소수자 특집’ 편을 찍으면서 내 이야기를 할 수 있어 즐거웠다. 최근 전북 완주 경로당에 가서 할머니들의 ‘페미니즘’을 들었다. 할머니들은 ‘페미니즘’이라는 단어는 모르시지만 살아오면서 겪은 인생 경험 자체가 페미니즘이다. 프로그램에 애정이 많은 것 같다. 처음 하차 통보를 받았을 때는 어땠나. 처음에 화가 난 건 뭐였냐면, 지난 1년간 함께했던 패널들과 인사하며 예쁘게 마무리할 수 없다는 사실이었다. 정말 열심히 했고 패널들과도 ‘케미’가 좋았다. 기념촬영을 하면서 예쁘게 마무리하고 싶은 소박한 꿈이 좌절돼서 화가 났다. 지금은 EBS로부터 제대로 사과받고 싶다. EBS가 낸 공식 입장은 ‘제기된 민원이 사실인 것으로 확인됐다’며 나를 사기범으로 확인하는 것이었다. 내가 그 글을 올리던 당시는, <까칠남녀> 성소수자 특집이 방송되기 전부터 제작진에 ‘방송 중단’ 압력, 동성애 혐오가 빗발치던 때였다. 그에 대한 나름의 저항이자 풍자로, 제작진 번호로 퀴어문화축제 후원번호를 적은 것이었다. 검찰이 기소한 것도 아니고, 한 보수단체가 고소장을 접수한 걸 두고 ‘사실로 확인됐다’고 방송사가 공식적으로 이야기하는 것은 매우 잘못된 일이다. “기회 되면 장애여성 이야기하고파” <까칠남녀>가 계속된다면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었나. 아직 다루지 못한 무궁무진한 이슈들이 있다. <까칠남녀>에 장애여성이 나온 적이 한 번도 없다. 지금까지 비장애여성 중심의 이야기였다. 장애여성, 이주여성의 이야기를 꼭 하고 싶다. 가부장제도의 문제도 전격적으로 다루지 못했다. 글 박수진 기자 jin21@hani.co.kr 사진 김진수 기자 js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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