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4월 뜻하지 않은 사고로 세상을 떠난 음악인 김신영씨. 조주영 제공
“하늘거린 저 꽃잎들은 살랑 춤추며 귀 기울여 듣던 소리는 마음에 그려지네/ 손끝 느껴지는 동안 작은 풀잎 날리고 발끝 느껴지는 동안 고운 모래 남기고/ 불어오는 저 바람도 들려오는 저 마음도 아무 말 없이 다가온다” 이 노래는 미발표곡으로 남았다. 신영씨는 자신이 만든 노래를 완성하지 못한 채 지난해 4월 세상을 떠났다. 음주 뺑소니 교통사고였다. “나는 운전할 때 베스트 드라이버야.” 사고를 낸 운전자는 술을 마신 상태로 차를 몰며 이렇게 말했다. 운전자는 주말에 위수 지역을 벗어나 홍대 클럽에서 밤새도록 논 현역 육군 중사였다. 클럽에서 만난 여자와 아침이 돼서야 나온 그는 신호 단속에 걸리자 110km로 질주했다. 오토바이를 타고 출근하던 신영씨는 그 무서운 속도에 부닥쳐 허공으로 떠버렸다. 사람을 치고도 그대로 달리던 차는 결국 벽에 부딪히고서야 멈췄다. 동료들이 바친 추모 음반 장아무개 중사는 얼마 전 2심 재판에서 8년형을 선고받았다. 그는 상고했다. 검사는 8년으로 확정될 거라며 주영씨를 위로했지만 변하는 건 없다. 신영씨는 세상을 떠났고 남은 건 주영씨와 신영씨가 끔찍이 아꼈던 아들 쿠마(애칭)뿐이다. 주영씨는 계속 같은 생각을 한다. ‘차라리 신영이를 부산에서 오지 말라고 했으면, 신영이와 결혼을 안 했으면, 신영이를 사귀지 않았으면, 신영이를 만나지 않았으면.’ 생각은 계속 거꾸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 지옥 같은 마음을 온전히 이해할 수는 없다. 주영씨는 쿠마와 살기 위해 상담을 받으며 계속 무언가를 하고 있다. 사람을 만나 자꾸 이야기를 나눠야 한다는 건 알지만 쉽지 않았다. 새로운 걸 만나는 건 여전히 힘들어서 이미 익숙한 것들을 반복한다. 드라마도 이미 본 드라마를 다시 본다. 신영씨가 세상을 떠난 지도 어느새 10개월이 됐다. 처음엔 아빠를 찾던 쿠마에게 “아빠 어디 있어?”라고 물어보면 아빠의 영정사진을 가리킨다고 한다. “쿠마를 너무 많이 사랑했거든요. 같이 놀아주고 아이 앞에서 기타 치면서 노래해주고. 그런데 시간이 흐르고 나중에 쿠마가 커서 아빠의 그런 모습을 기억하지 못할 거라는 게 가장 슬퍼요.” 신영씨는 김목인과 함께 공연하는 게 소원이었다 한다. 매번 “목인이 형, 목인이 형” 하면서 그의 음악을 좋아했다. 신영씨는 세상을 떠난 뒤에야 소원을 이루게 됐다. 그가 생전에 남긴 음악이 음반으로 나왔다. <아무 말 없이-A Tribute To Shinyoung>. 생전에 너무 착하고 예의 바르던 신영씨에게 동료들이 바치는 헌정·추모 음반이다. 남편을 잃고 너무 힘들던 주영씨는 신영씨가 남긴 자료나 음원 등을 그들에게 통째로 넘기고 관여하지 않았다. 온전하게 남아 있는 노래는 없었다. 휴대전화에 녹음돼 있거나 라이브 영상에 담겨 있는 노래가 전부였다. 김목인, 빅베이비드라이버, 시와, 강아솔, 이호석, 이혜지 등 동료 음악가들이 그렇게 남겨진 노래들에 살을 입혔다. 노래의 코드를 따기 위해 유튜브를 보던 동료들은 세상에 없는 그의 영상을 보며 슬픔 속에서 작업해야 했다. 앨범 커버와 부클릿(소책자)에 쓰인 바다 사진은 부산에서 함께 음악을 했던 ‘세이수미’의 멤버 김병규가 부산 송정에 가서 찍은 사진이다. 신영씨가 남긴 노래 <송정>을 기리기 위해 광안리에서 송정까지 1시간 넘는 거리를 일부러 찾아가 찍었다. 그 많은 친구들의 도움과 고마운 마음이 모여 <아무 말 없이-A Tribute To Shinyoung>이 태어났다. ‘돌아봐도 소용없이 이젠’ 주영씨도 음반의 첫 곡 <송정>을 가장 좋아한다. “<송정>을 들으면 바다를 보고 있는 느낌이 들어서 좋아해요. 음악을 들을 때 그런 이미지를 주는 곡들을 좋아하거든요. 남편한테도 그런 마음이 느껴지는 노래를 쓰면 좋겠단 말을 자주 했는데, 음반 전체를 들어보니까 그래도 내 말을 허투루 듣지는 않은 것 같아요.” <송정>의 가사는 이렇다. 가사를 읽으며 신영씨가 떠오르는 건 어쩔 수가 없다. “눈을 감으면 보이는 시원한 바람의 바다/ 답답한 얼굴 찡그리는 사람들의 시선이/ 이젠 바람에 날아와 이젠 추억에 날아와 다시 볼 순 없네/ 스쳐 가는 바람에 말 걸어봐도 상관없어 돌아봐도 소용없이 이젠” 김학선 대중음악평론가
독자 퍼스트 언론, <한겨레21> 정기구독으로 응원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