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26일 서울 마포구 동교동 청년문화공간JU동교동에서 열린 ‘지금 여기의 페미니즘x민주주의’의 세 번째 강의는 소설가 손아람이 맡았다. 그는 서울 용산 참사를 배경으로 소설 <소수의견>을 썼고,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 <소수의견>의 각본 작업도 했다. 손아람 작가는 남성 창작자로서 느끼는 남성 편향의 함정에 대해, 또 대중문화 창작 당사자로 관찰한 대중문화에서 ‘여성 주변화’ 과정에 대해 말했다. 강의 내용을 요약 전달한다. _편집자
“대석이 팔꿈치로 진원의 옆구리를 툭 치고 저거 좀 보라는 듯이 턱짓한다. 굽이 높고 좁은 스틸레토힐. 대석이 휘파람 부는 시늉. 진원은 씩 웃는다. 대석: 국민참여재판 전담 검사라 배심원 다 홀려 잡수겠다, 이거지.” 나를 포함한 남성 창작자들은 왜 이런 선택을 해왔을까. 변명하자면 남성이 여성을 적대하는 세계의 구조적 문제를 재현하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여기던 시절이었다. 남성인물에게 주어진 문제는 문제, 문제의식, 충돌, 극복의 과정으로 이야기를 뽑아내지만 여성 인물에게 주어진 문제는 그렇지 않았다. 영화 안에서 문제를 투사하는 게 아니라 재생산하고 있었다는 걸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질문들이 나를 바꿨다. 가령 다음과 같은 질문들. 과연 이게 충분한가? 공평한가? 이런 성비가 나오는 데 무의식적 우선순위가 투영되지 않았나? 2010년 한 인터뷰에서 “소설 속 여성 캐릭터가 왜 다 그 모양이에요?”라는 질문에 나는 “우리 세계가 그 모양이어서 그대로 베꼈다”고 답했다. 그러나 6년 뒤 ‘한국문학의 여성 혐오’라는 특집 기사에서 대담자로 참여한 나는 이렇게 말했다. “여성을 대상화하는 것보다 주변화하는 것이야말로 한국문학의 치명적인 장애인데, 이게 얼마나 극복하기 어려운지, 질환자로서 누구보다 잘 알고 있으니 ‘마루타’(실험도구) 중 하나로 내 작품들을 기꺼이 제공하고 싶다.” 수용자의 목소리가 압력 이제 문화 소비자의 역할을 생각해보게 된다. 문화라는 전체 생태계를 볼 때 만드는 사람이 모든 것을 결정하지 않는다. 보는 수용자의 목소리가 압력이 될 수도 있다. 창작자들은 에고가 강하다. 인정받고 싶어 한다. 소비자가 외면한다면, 자신이 바뀔 수밖에 없다. 여러분이 저를 바꿨듯, 창작자에 대한 압력과 발화는 지금 구제 불능으로 보이는 다른 창작자들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한다. 글 박수진 기자 jin21@hani.co.kr 사진 박승화 기자 eyeshoot@hani.co.kr
독자 퍼스트 언론, <한겨레21> 정기구독으로 응원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