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8월 강제 철거된 뒤 서울 공덕역 경의선 공유지에서 새롭게 ‘아현포차’를 연 ‘강타 이모’(왼쪽)와 ‘작은거인’ 이모. 경의선 공유지에선 도시에서 떠밀려난 ‘도시 난민’들이 연대하며 삶을 꾸리고 있다.
아파트 가격은 ‘마래푸’를 기준으로 형성된다. 재개발 아파트들의 형님 격인 ‘마래푸’ 주민들은 ‘주거 가치 인상’ ‘안전한 통학’ 등을 이유로 포차 철거를 요구했다. 마포구청에 민원을 넣고, 지난해 4월 총선에서 3선을 노리던 노웅래 더불어민주당 의원과도 만났다. 노 의원은 총선 공약에 이 대단지 아파트 주민들의 민원사항을 모두 포함시켰다. 강타 이모는 이들을 두고 “집값에 눈이 먼 보아뱀 같다”고 말했다. 시민의 공유지로 강타 이모도 아현 지역에서 진행 중인 재개발 품에 편승해 아파트를 한 채 가질 뻔했다. 강타 이모는 아현역 웨딩타운 뒤 3층 연립주택을 소유하고 있었다. 세입자들에게 월세도 받았다. 이모가 살던 곳도 2006년 북아현재정비촉진지구에 포함됐다. 그러나 이모는 10년씩 돈을 묶어두며 재개발 조합원이 될 여유가 없었다. “거기에 뭐가 지어질지, 언제 지어질지도 모르고. 제대로 지어져도 분담금 수억원을 더 내야 아파트에 들어갈 수 있을 텐데 그럴 돈도 없고….” 강타 이모는 2006년 1억5천만원을 받고 재개발 조합에 집을 넘겼다. 10년 뒤인 2016년 그곳에는 역시 ‘브랜드’ 아파트가 들어섰다. 33평 아파트 한 채에 8억~9억원 하는 곳이다. 재개발로 살던 곳에서 밀려난 이모는 아현동 빌라 반지하에서 월세 40만원을 주고 서른이 된 막내아들과 산다. 지난 4월, 6년을 투병하던 남편은 세상을 떠났다. 지역 주민들의 이른바 ‘명품 주거’를 위해 일터를 뺏긴 이모는 지난해 8월 공덕역 경의선 철도부지 자리에 ‘아현포차’를 차렸다. 같은 세월 아현포차 거리에서 장사해온 동료 ‘작은거인’ 이모 조용분(72)씨도 함께 왔다. ‘아현포차 지킴이’들이 이모들이 공덕역 경의선 부지에서 26년간 지탱해오던 삶을 이어갈 수 있도록 도운 덕이다. 이곳은 지난해 11월 ‘경의선공유지시민행동’이 서울의 26번째 자치구로 선언한 땅이다. 이 땅은 어떻게 자치구가 될 수 있었을까. 사연은 조금 복잡하다. 애초 이 땅은 철도부지로 국유지다. 국유지라 소유권은 국토교통부에 있고, 철도부지여서 관리권은 한국철도시설공단에 있다. 한국철도시설공단은 2007년 마포구와 경의선을 지하화하면서 위는 경의선 숲길공원으로 조성하고, 역세권은 상업지구로 개발한다는 협약을 체결했다. 2011년 (주)이랜드월드가 사업자 공모를 통해 사업주관자로 선정됐다. 이 과정에서 마포구청은 사업자 선정 뒤 실제 개발사업 허가 등 시행 절차에 들어가기 전까지 시간이 소요되니 그동안 지역 주민이 이 공간을 사용할 수 있도록 하자는 협조 요청을 했고, 철도공단이 이를 승인했다. 이 때문에 이곳은 2013~2015년 3년 동안 ‘시민장터’가 됐다. 마포구와 협약을 맺은 늘장협동조합이 시민들의 장터를 열었다. 그러나 2015년 한국철도시설공단이 마포구에 사용 중단을 요청함으로써 마포구는 늘장협동조합과 계약을 종료하고 이 공간을 비워달라고 요청했다. 이 지점에서 시민들이 반발했다. 김상철 경의선공유지시민행동 위원장은 “기존 국공유지는 대부분 기업 중심으로 임대 수익을 내기 위해 사용됐다. 이제 국공유지를 시민이 주도해 사용할 수 있는 원칙을 만들어야 한다. 그 모델을 ‘경의선 공유지’에서 만들어볼 수 있을지 공론장을 만들어 제안하려 한다”고 말했다. 도시 재생과 관련해 도시 내 국공유지를 활용해야 한다는 전문가 의견도 나오는 중이다. 경의선공유지시민행동은 시민들이 이 공유지의 활용 방안을 주도적으로 결정할 때까지 도시에서 쫓겨난 ‘도시난민’들이 상처받은 삶을 재생하고 이어가는 공간으로 활용하자는 생각이다. 이 땅의 주인은 누구나 될 수 있다는 철학을 반영한 결정이다. 이런 생각으로 서울 곳곳에서 쫓겨난 이들이 여기 모였다. 아현포차 거리에서 쫓겨난 강타 이모와 작은거인 이모가 ‘아현포차 시즌2’를 열어 장사를 이어가고, 행당6구역 재개발로 밀려난 이희성(34)씨도 ‘청년주거난민 뜨거운 청춘’이라는 닉네임으로 컨테이너 한 동에 주거 공간을 꾸렸다. 작은거인 이모는 밤이 되면 희성씨에게 전화한다. “희성아, 밥 먹었냐.” 맑고 뜨거운 순두부국, 호박잎 된장찌개 같은 집밥을 가난한 이모가 가난한 청춘에게 먹인다. 또 누군가는 찾는다 9월18일 저녁 8시. “이모, 저희 수제비 되나요?” “이모, 삼겹살이오.” “이모, 밥 주세요.” 아현포차에 불이 켜지고, 지나가던 직장인들이 하나둘 포차에 자리잡고 앉아 안주와 소주를 시킨다. ‘명품 주거’를 위해 누군가는 이모들을 밀어냈지만, 또 다른 누군가는 이모의 따뜻한 안주와 술을 찾는다. 글 박수진 기자 jin21@hani.co.kr 사진 김진수 기자 js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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