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28일 서울 종로구 ‘사진위주 류가헌’에서 열린 ‘두 어른’전 기자간담회 뒤 백기완(왼쪽)·문정현이 나란히 골목을 걷고 있다. 박승화 기자
누구인가, 문정현은. “1975년 인혁당 수형자들이 사형선고 하루 만에 형장의 이슬이 되고 시신마저 탈취당할 때, 영구차를 가로막고 몸을 던진 젊은 사제였다. 1976년 박정희 영구집권에 반대하는 3·1구국선언 사건으로 감옥에 갇혔다.” 6월28일 류가헌에서 기자간담회가 열렸다. 사진작가 노순택은 전시회를 성사시키기까지 어려움을 말했다. 두 사람 모두 손사래를 쳤던 것이다. ‘아름다운 사기’가 필요했다. 주최 쪽은 백기완에게 문정현을, 문정현에게는 백기완을 팔았다. 두 사람은 “벽돌 몇 장 보태는 마음으로”(백기완), “노동자들 손잡아주는 마음으로”(문정현) 슬쩍 속아주었다. 전시 작품은 백기완의 붓글씨와 문정현의 새김판(서각)이다. 백기완은 한 달 내내 방에 갇힌 채 다소곳이 쪼그리고 앉아 글씨를 썼다. 40여 점을 내놨다. 문정현은 10년 전부터 투쟁의 여백 시간에 새겼던 목판 글씨를 추렸다. 70여 점을 꺼냈다. 이번 전시에 맞춰 두 사람이 뜻과 손을 모은 공동작품도 선보인다. ‘산 자여 따르라’ ‘천년을 실패한 도둑’ ‘하늘도 거울로 삼는/ 쪽빛 아 그 빛처럼’. 뜻이 거룩하니, 만담이 더 살았다. 유쾌한 말솜씨를 뽐낸 두 사람은 말했다. “여기저기 ‘협박’이 들어와서 동참하게 됐습니다. ‘역사 진보 그 예술에/ 취할 줄 모르는 놈들아/ 술잔을 놓아라’라는 글귀가 있어. 술에 취하는 새끼들은 대폿잔을 놓으라는 말이야. 여러분 좀 널리 알려줘요. 우리가 진짜 술에 취하고 해롱거렸지, 역사·진보 그 절망에 취한 적은 없잖아. 그러면 술을 끊어야 하는 거 아닌가 문제제기를 한 거야.”(백기완) “돈 주고 판다는 건 상상도 못했습니다. 어떤 목사님이 얼마에 파느냐고 해서, 내가 ‘예수님 말씀을 돈 주고 팔아요?’ 했어요. 값을 매길 수는 없는데, 집 짓는 데 도움이 된다면, 작품으로 생각하지 말고, ‘꿀잠’을 위해서 좀 보태주시는 마음으로 가져가셨으면 하는 마음이에요. 고통 속에서 만든 노력이라 생각하고 많이 알려주셨으면 고맙겠습니다.”(문정현) ‘두 어른’전의 목적은 하나다. 비정규노동자의 집 ‘꿀잠’( laborhouse.kr)을 짓는 데 필요한 목돈을 마련하기 위한 것. ‘꿀잠’ 모금은 지난해 여름 시작했다. 아직 목표치의 30% 정도밖에 못 모았다고 한다. 사정이 이러하므로, 이번 전시는 판매도 주목적이다. 두 사람을 장터로 끌어낸 이유다. 백기완·문정현은 ‘모시는 글’에 곡진한 사연을 적었다. “지금도 여기 찬 바닥에서, 저기 뜨거운 굴뚝 위에서 비인간이 된 비정규노동자들이 외롭게 싸우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옵니다. 간신히 버티는 게지요. 거리 싸움을 하는 비정규노동자들이 잠시 쉴 곳, 잠시 씻을 곳, 잠시 치료받을 곳이 너무나 절실하다는 얘기에, 나이테 많은 두 사람이 작은 힘이라도 보태고 싶어 용기를 냈습니다. 비정규노동자의 집 ‘꿀잠’을 짓기 위해 글씨 몇 점, 서각 몇 점 달라는데 버틸 재간이 있어야지요.” ‘연대의 단열재’ 두른 집 하나 ‘아름다운 사기’의 공모자 송경동 시인은 헌시로 화답했다. “(…) ‘비정규직 없는 평등한 세상’/ ‘그 누구도 그 누구 위에 군림하지 않는 세상’/ ‘함께 일하고, 함께 나누되, 함께 올바로 잘사는 노나메기 세상’// 그런 세상을 향한/ 아름다운 연대와/ 투쟁과 단결의 집 하나/ (…)”(헌시 ‘생명의 약속-<두 어른>전을 열며’) 우리는 보았다. 마침내 예술에 이른 두 사람을. 노동자들의 예술가를. 비정한 세파 막아줄 ‘연대의 단열재’를 두른 집, ‘꿀잠’을 짓는 예술가를. ※ 백기완·문정현 두 사람은 비정규노동자의 집 ‘꿀잠’ 건립 기금을 보태려고 붓글씨와 새김판(서각)을 내놓았다. 작품 하나하나에 두 사람의 삶과 정신, 세상에 전하는 뜻이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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