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단 ‘애인’이 2012년 연극 <장애, 제3의 언어로 말하다>를 상연하고 있다. 극단 애인 제공
‘애인’의 김지수 대표는 배우들에게 ‘자신만의 연기’를 찾아야 한다고 조언한다. 김가윤 교육연수생
배우들은 자신들의 삶을 다룬 연극 <장애, 제3의 언어로 말하다>에서 그들의 고민을 털어놨다. 지체·지적장애인 한정식 배우는 “멋있게 보였으면 좋겠다. 누가 공연을 보고 장애인처럼 안 보였다고 얘기했을 때 제일 좋았다”고 말했다. 그는 관객이 ‘장애인’ 대신 ‘연기’를 보길 원한다. 백우람 배우는 “우리로선 비장애인 연기를 흉내 내지 말고 내 것을 찾아야 한다”고 했다. 그는 ‘비장애인 흉내 내기’는 안 하니만 못하다고 생각한다. 지체장애인 하지성 배우는 “그래도 불쌍해 보이는 건 싫다”고 한다. 이런 생각들이 모여져 ‘애인’의 고민은 끝나지 않는다. ‘장애인도, 비장애인도 보이지 않는 연기’는 가능할까. 무대에서 나를 본다 ‘애인’의 배우들은 연극에서 ‘나’를 발견한다. 일상에서 사람들을 만날 때 무시당하는 느낌을 받아온 한정식 배우는 “무대에서 연기할 때만큼은 중요한 사람”이 된다. 당당하게 살고 싶지만 항상 일상 속 장애를 느끼는 강희철 배우는 “공연이 시작되면 장애와 상관없이 아무도 간섭할 수 없는 나와 우리의 시간이 펼쳐진다”고 느낀다. 김 대표는 “무대는 세상 속의 나와 우리를 확인하는 시공간”이라고 했다. 김 대표는 극단 배우들이 무대에서 얻는 자존감과 독립심을 삶에서부터 찾고자 했다. 32살 되던 해 의사는 그에게 수술을 강하게 권유했다. “당신의 척추와 골반뼈 마디마디를 잘라서 로보캅처럼 재조립해야 한다. 당신은 아기처럼 다시 태어나게 될 것이다. 물론 선택은 당신의 몫이다.” 그는 수술을 거부했다. 수술 뒤 보조기를 차고 조심스럽게 살아야 하는 삶, 가족의 돌봄에 의지하며 사는 삶을 도저히 선택할 수 없었다. 그는 “몸만 놓고 생각했다면 수술하고 보조기를 찬 채 덜 움직이며 살았을 테지만, 나에겐 사회활동을 하며 사는 삶이 더 중요했다. 내 생계를 내가 책임지고 내 의지대로 자유롭게 움직이고 무언가를 더 많이 해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애인’의 다음 작품인 <무무>도 장애로 인해 오히려 용기 있는 선택을 내리는 이야기다. 청각장애인 주인공이 겪는 장애가 오히려 사랑을 찾아 자유롭고 용기 있게 나서도록 하는 계기가 된다. 수술을 거부하고 장애를 삶의 일부로 끌어안으면서 세상과 치열하게 부딪치기로 마음먹은 김 대표의 삶과도 맥이 닿는다. 그는 “사람들은 누군가 장애를 갖고 있으면 보잘것없고 하찮고 많은 것을 하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행동할 용기가 있는 사람을 연극에서 그려보려 한다”고 말했다. 장애인이 자기 목소리 내는 비결 김 대표가 극단 배우들에게 바라는 건 하나다. “어디 가서도 좋은 연기를 하는 배우가 되면 좋겠다”는 것. 김 대표는 그들이 배우로서 무한히 성장할 수 있다고 믿는다. 여기엔 장애인으로서 살아가는 삶에 대한 존중과 자부심이 깔려 있다. “이 사회는 확연히 비장애인에게 맞춰진 사회여서 장애인은 느리고 불편하고 힘들게 살고 있다. 그럼에도 장애를 가진 사람이 매일매일 고통과 고민을 겪어내며 살아가는 데 자부심을 느낀다”고 그는 말했다. 장애인 스스로의 자부심과 정체성에 대한 연구 작업이나 사회적 논의는 영국·미국과 같은 나라에선 이미 시작됐다고 한다. 동성애자들이 자신의 성적 정체성과 몸을 드러내는 ‘퀴어 퍼레이드’를 여는 것처럼 미국에선 장애인들이 ‘장애 퍼레이드’를 열기도 한다. 미국 일리노이주립대에서 장애학을 공부한 전지혜 전 한국장애인개발원 선임연구원은 “그동안 이 사회에서 장애인은 누군가가 도와줘야 하는 수동적인 존재로 인식돼왔다. 하지만 장애인들이 스스로 자부심을 느끼고 활동할 때 제대로 된 자신들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힘이 생긴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 사회에서 안타까움의 이미지가 덧칠돼온 ‘장애’라는 단어에 이제 ‘자부심’이라는 말이 붙기 시작했다. 글·사진 김가윤 교육연수생 gaga0618@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