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이정용
때로는 하나의 단순한 물음이 그 어떤 복잡한 이론으로도 설명하기 어려운 삶의 진실을 담고 있는 법이다. 토마 피케티의 화제작 <21세기의 자본>이 가져온 충격은, 사람들이 일상에서는 직면하지만 현대경제학은 애써 외면해왔던 ‘불평등’이라는 문제를 단도직입적으로 다루고 있다는 데서 비롯된다. ‘피케티 쇼크’는 오른쪽으로 치우쳤던 경제학의 물줄기를 바꿔놓은 것은 물론이려니와, 각국의 경제통계 작성 방식마저 바꿔나갈 것으로 보인다(이미 변화는 시작되었다!). 그러나 피케티가 다룬 여러 나라의 장기통계에서 정작 한국 사례는 찾아볼 수 없다. 관련 통계가 미비한 탓이다. 불행 중 다행으로 때마침 한국은행은 유엔의 지침에 맞춘 국민대차대조표(잠정)를 작성·발표했다. 비록 2000년대 이후의 자료밖에 없다는 한계를 지니지만, 피케티의 문제의식에 따라 급한 대로 한국 경제 불평등 실태의 희미한 윤곽이나마 그려볼 수 있게 되었다. 왼쪽으로 물줄기를 바꿔놓은 피케티 쇼크
피케티가 거의 300년에 걸친 불평등의 역동적인 모습을 정리해낼 수 있도록 만든 단순하면서도 강력한 모델은 과연 어떤 것인가? 피케티 모델은 다섯 가지 경제변수들, 즉 자본소득분배율(α), 부/소득비율(β), 자본수익률(r), 저축성향(s), 국민소득증가율(g)로부터 출발한다. ‘피케티 비율’이라 부를 이 변수들에 대해 좀더 알기 쉽게 설명해보자. 생산된 소득은 자본 소유자와 노동자가 나눠 갖는다. 자본 소유자가 가져가는 몫의 비율은 자본소득분배율, 노동자가 가져가는 몫의 비율은 노동소득분배율이다. 만약 당신의 연봉이 4천만원인데 재산(부)은 2억원이라면, 부/소득비율은 5가 된다. 즉, 연봉의 5배에 해당하는 재산을 가지고 있다는 뜻이다. 그 2억원의 재산을 1년 동안 굴려 1천만원의 수익을 거뒀다면 자본수익률은 5%다. 연봉 4천만원 중에서 사용하지 않고 남은 돈이 400만원이라면 당신의 저축성향은 10%다. 만약 내년에 연봉이 4100만원으로 오른다면 소득증가율은 2.5%다. 이들 변수 사이에는 피케티가 ‘자본주의의 첫 번째 기본법칙’과 ‘두 번째 기본법칙’이라 부른 두 가지 관계가 성립한다. 먼저 α=r×β 이다. 즉, 자본소득분배율은 자본수익률에다 부/소득비율을 곱한 값이다. 이 관계는 언제나 성립한다. 자본소득/자본=(자본소득/국민소득)×(국민소득/자본). 예를 들어 자본수익률이 연간 5%이고 부/소득비율이 6이라면, 자본소득분배율은 5%×6=30%가 된다. 쉽게 말해 자본총량이 국민소득의 6배이고 자본의 평균수익률이 5%라면, 국민소득 가운데 30% 정도가 자본(가)에 돌아간다는 뜻이다. 피케티는 보통 경제학에서 자본이라고 부르지 않는 것들, 즉 개인이나 법인, 정부가 가지고 있는 금융자산 등은 물론 재화나 서비스 생산에 이용되지 않는 주거용 토지까지 ‘자본’에 포함시킨다. 한마디로 어떤 형태로든 수익을 얻을 수 있는 모든 자산을 가리키는 것이니, 전통적인 경제학적 개념으로는 오히려 부(wealth)에 가깝다. (그래서 β를 자본/소득비율이라고도 부/소득비율이라고도 부른다). 다음은 β=s/g이다. 이것은 ‘첫 번째 기본법칙’처럼 항상 성립하는 것은 아니고, 경제학에서 말하는 ‘균제상태’(steady-state)에서만 성립한다. 만약 어느 경제가 성장률 4%인 상태를 충분히 오랫동안 유지하고, 또 전체 소득 중에서 소비하지 않고 저축하는 비율 또한 20%로 안정적으로 유지된다면, 부/소득비율(β)은 20/4=5이다. 즉, 부가 소득의 5배 정도 되는 수준이 계속 유지될 것이라는 뜻이다. 경제가 항상 균제상태에 있는 것은 아니지만, 일단 균제상태에 도달하면 이 비율은 변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단순화해 올해 국민소득이 100이고 자본총량(부)이 500이라고 가정하자. 이때 부/소득비율은 5이다. 만약 국민소득 증가율이 4%이면 내년 소득은 104가 된다. 만약 저축률이 20%이면 올해의 자본총량 500에 20이 보태져 내년의 자본총량은 520으로 늘어난다. 따라서 내년의 부/소득비율(β)은 520/104=5가 되는데, 이것은 s/g=20/4=5와 같다. 부/소득비율이 계속 5로 유지됨을 알 수 있다. 마지막으로 피케티의 모델을 완성시키는 것은 r>g라는 부등식, 즉 자본수익률이 성장률을 웃돈다는 것이다. 사실 이 관계는 이론적으로 항상 성립하지는 않는다(물론 피케티는 대부분의 경제모델에서는 이 관계가 성립한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지난 300년의 통계자료를 분석한 피케티에 따르면, 20세기의 예외적인 기간을 제외하곤 이 부등호가 오래전부터 성립해왔다. 자본수익률이 국민소득증가율보다 크다는 것은, 자본의 소유자들이 경제 전체의 평균보다 더 빠른 속도로 이윤을 챙긴다는 것을 뜻한다. 현실적으로 자본은 소수에 집중돼 있다. 그렇다면, 쉽게 말해 부자들은 경제성장률보다 더 높은 수익률을 실현하며, 그 결과 매년 일해서 버는 소득보다는, 기존에 쌓아놓은 소득, 즉 부(재산)가 차지하는 영향력이 더 커진다. ‘땀 흘려 일해 양식을 취하는’것보다는 ‘은수저를 물고 태어나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해지는 셈이다. 피케티 자신은 거듭해서 부인하지만, 서구의 보수주의자들이 그의 저서 <21세기의 자본>에서 마르크스의 유령을 떠올리는 것은 이 때문이다. 성립할 수 없는데 성립하는 ‘자본수익률>성장률’ 이제 한국 경제에서 피케티 비율의 추정치를 살펴보도록 하자. 먼저 α, 즉 자본소득분배율의 추이는 <그림1>과 같다. 한국의 경우 자영업 인구가 차지하는 비중이 전체 고용인구의 30% 가까이나 돼 대체로 선진국 수준(10%)의 3배에 이른다. 자영업자의 소득을 자본소득과 노동소득으로 적절하게 나누어 계산하지 않으면 현실과는 동떨어진 결과가 나오기 쉽다. 만약 어느 치킨가게 주인이 한 달에 200만원을 벌었다면, 한국은행이 작성해 발표하는 전통적인 통계에서는 200만원 전체를 자본소득으로 간주한다. 그러나 자영업자는 자본을 소유하는 동시에 스스로 일해야 하는 노동자이기도 하다. 따라서 200만원 중 일부는 노동소득으로 계산해주어야 한다. 이렇게 자영업자의 소득을 부분적으로 보정해준 결과, 한국의 자본소득분배율은 지난 10여 년간 상승세를 보였음을 확인할 수 있다. 바꿔 말해 노동이 가져가는 몫은 꾸준히 줄어들었다. 2010년 이후 그 추세가 약간 꺾이기는 했지만, 예전에 국민소득의 25% 내외를 자본이 가져갔다면 현재는 30% 이상을 자본이 가져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