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혁- 취재 중간에 그만두고 싶을 때는 없었나.
강- 생명보험회사에서 교육받을 때 가장 힘들었다. 숨도 제대로 쉬기 어려운 분위기에서 2주간 교육받았다. 야간자율학습까지 하느라 아버지 생신 모임, 취업 OTL 기획회의에도 못 갔다. 취업이 뭐길래 이렇게 자존심까지 내팽개쳐야 하는 걸까 싶었다.
전- 첫 회에 내 이야기를 쓰는데 자기소개서를 쓰는 기분이었다. 언제까지 나는 과거를 써야 하나 자괴감이 들었다. 또 지나치게 돈에 맞춰 낭비되는 것을 다루지 못했다. 20대라는 시간. 고통스러우니까 어떻게든 즐길 수 있는 방법을 취준생들이 찾는데 그런 모습도 많이 보여주지 못했다. 우울하게만 써졌다.
찬혁- 취업에 대한 생각이 달라진 게 있나.
나- 언론사 취업만 준비해봤지만 일반 기업은 취업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전혀 아니었다. 금융권 20곳에 지원했는데 서류도 통과하지 못했다. 취업이 쉽지 않구나 한 번 더 절감했다.
전- 취업시장이 문제라는 걸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지만 글을 쓰다보니 다른 관점도 생겼다. 토익을 참 나쁜 시험이라고 단언했는데 기업 입장에선 객관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잣대가 너무 없지 않나 싶었다. 스터디룸이 꽉 차서 예약할 수 없을 정도로 취준생이 많은데 무슨 기준으로 뽑을까, 대기업도 갑갑하겠다 싶었다.
민희- 주변 취준생의 반응은 어떤가.
나- ‘최고 스펙은 남자’라는 기사를 봤는데 여자친구들이 공감된다고 했다. 그런데 댓글을 보니까 남자들은 엄청 욕을 했더라.
찬혁- 남자라고 다 취업이 잘되는 게 아닌데, 지나친 대립 구도 아닌가.
강- 취업 현장에서 겪은 이야기고 객관적 통계자료도 이를 증명한다. 하지만 남자도 많이 떨어지니까 욱하는 게 아닌가.
나-요즘은 최고의 스펙은 부모라는 말도 있는데.
정- 학과 차이도 있지 않을까. 대기업은 공대생을 많이 뽑는데 공대는 대부분 남자잖나. 취업 OTL에 참여한 기자들의 전공이 다 인문계라서 한계가 있지 않았을까.
전- 친구 중에 건축학과 여자가 있다. 중소기업까지 다 떨어졌다. 건축 쪽에선 여자들이 적은데다 아예 안 뽑더라.
정- 취업 실패를 예상했나.
나- 지원서 100개를 쓰면 서류전형에서 10개 통과한다고 들었다. 15개를 쓰면서 한두 개는 면접 보겠지 싶었다. 서류에서 하나 붙었는데 필기에서 떨어졌다. 주변에서 100개는 써야 하는 거 아니냐고 하더라.
전- 예상은 했는데 생각하기 싫었다. 간절함이 있었기 때문에. 의사 역할을 하는데 진짜 의사가 된 것으로 착각하는 배우 같았다.
정- 간절함이 왜 생겼나.
나- 입사 지원을 하면서 연봉이나 복지를 보게 되고 주변에서도 다들 가고 싶어 하니까. 이렇게 좋은 곳인데 나도 되면 가야 하는 거 아닌가 싶었다.
정- 되면 가려고 했나.
[%%IMAGE8%%]전- 영화를 좋아해서 CJ E&M은 가고 싶었다. 서류에서 떨어졌다.
강- 지원 분야가 영업직인데 경험할수록 자신이 없어졌다. 활발한 성격도 아니고 말주변도 없어서.
나-금융권의 최고 초봉이 6천만원이더라. 하기 싫은 일이라도 그 정도 연봉이라면 자격증 따고 경력을 쌓으면 되지 않을까 마구 상상했다. 다 떨어지고 역시 언론사를 준비하겠다고 스스로 위로했다.
정- CJ 리턴십에 합격하면 해볼 생각이었다. 편집장이 꿈 깨라고 놀렸는데, 그 말이 맞았다. (웃음)
민희- 왜 떨어뜨렸다고 CJ는 말하던가.
정- 나를 아예 기억하지 못한다. 몇천 명 중 하나니까. 기자라는 걸 숨기면서 2002년부터 경력이 없어졌고.
찬혁- 취업 OTL 5회에 이직한 사람들의 인터뷰가 들어갔는데 뜬금없었다.
정- 결과적으로 취업에 다 실패해 ‘취업 성공 이후’를 담지 못했다. 취업에 성공하면 그것으로 ‘해피엔딩’일까, 그런 궁금증을 풀어주고 싶었다.
찬혁- 취업·면접 컨설팅은 많이 받나. 도움이 되나.
나- 누가 받나 싶은데 생각보다 많다. 비싸서 그렇지. 학교에서 컨설턴트를 초청하면 1시간 안에 마감된다.
전- 취업 스터디를 컨설팅업체 주관으로 시작했다. 2주의 기간이 끝나고 엄청 욕했다. 자소서도 제대로 첨삭해주지 않는데 저 사람을 어떻게 믿고 100여만원씩 내냐고. 하지만 한 스터디 친구가 면접 가면 등록할 거라고 말하더라. 면접 기회가 다시 오기 어려우니까 그걸 놓치지 않기 위해 무슨 짓이든 하고 싶은 마음이다. 취준생의 절박함을 노리고 장사하는 현실이 슬프다.
찬혁- 한 꼭지 더 쓴다면 뭘 쓰고 싶나. <한겨레>에 지원했다가 떨어진 사람들을 취재해보면 어떨까. 왜 떨어졌는지도 알려주고.
나-자기만의 삶을 개척하는 20대를 인터뷰하고 싶다. 어떤 마음가짐이면 그렇게 씩씩할 수 있는지, 어떻게 자기 길을 선택할 수 있는지 궁금하다. 취업 준비하며 우울감이 커져서 생활 상담을 받는 친구도 많으니까.
강- 남동생이 이공계 출신이라서 취직한 상태다. 나는 기자 되겠다고 이러고 있으니까 부모님이 불편해한다. 아버지가 “야, 넌 언제까지 그렇게 살래?” 소리도 지르고. 나는 기가 죽고 그렇다. 취업하며 겪는 가족 간 스트레스를 써보고 싶다.
지방은 박람회·컨설팅도 없다
민희- 취업 OTL이 서울 중심이라 지방에선 상대적 박탈감이 있을 수 있다.
찬혁- 실제로 ‘왕관을 쓰려는 자 그 무게를 견뎌라’, 그런 느낌이었다. 박람회나 컨설턴트의 문제점을 지적했는데 지방에선 아예 없다. 지방 대학생이 기자였다면 다르게 쓸 수 있겠다 싶었다. 만약 취업 OTL 시즌2를 한다면 마이스터고 졸업생 등 좀더 다양한 이야기가 나왔으면 한다.
정- 첫 회 편집자주에서 ‘아름다운 도전기’를 담겠다고 썼다. 아름다운 도전기란 합격기를 의미하는 게 아니었다. 그땐 이미 취업 실패담이라는 게 확실해져서. (웃음) 지난 6개월간 불안 속에서도 자기 꿈을 향해 도전해온 전다은·강선일·나해리씨가 아름답다고 나는 생각했다. 연봉도 높지 않고 노동강도도 세지만 기자라는 하고 싶은 일을 향해 뚜벅뚜벅 걸어가는 모습이 그랬다. 두렵지만 용기를 낸 덕분에 올해 취업 OTL을 썼고 내년엔 길벗출판사에서 책을 낸다. 새로운 길을 개척하는 취준생을 더 만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