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글라데시·아일랜드·이탈리아·코트디부아르·한국 등 다양한 국적의 음악가들이 모인 ‘지구인뮤직밴드’. 여러 음악이 섞이면 새로운 실험이 된다.지구인뮤직밴드 제공
오해와 편견 있으면 같이 놀아봐야 이렇게 서로 다르지만 음악으로 소통하는 모습은 아름답다. 한국 사회는 다양한 이주민이 한자리에 모여 살고 있다. 이주노동자, 결혼이민자, 난민 등 점점 이주민이 많아지고 있다. 한국 사회는 아직 이들을 받아들일 준비가 부족하다. 나를 포함한 대부분의 이주민들은 그 지역사회에 그저 평범하게 섞여 살고 싶어 한다. 하지만 외국인이라서 받는 따가운 시선과 차별은 그들로 하여금 그저 숨죽이거나 ‘나대고 활동하며’ 과장스러운 목소리로 자기 주장을 하게 만든다. 나는 후자에 가깝게 살았다. 생활에서 오는 차별이 분노로, 그 분노가 운동과 활동으로 나를 몰아갔다. 그러나 아무리 열심히 활동하고 목소리를 높여도 택시기사의 말 한마디에, 지하철 어느 낯선 이의 시선에 좌절하고 만다. “어느 나라에서 왔어요?” “한국말 잘하시네요.” 누가 들어도 아무렇지 않을 질문에도 나는 화가 난다. 맘속으로 ‘나 주민등록증 있거든요’ ‘한국에서 15년 살았는데 말 못하면 바보 아닌가요?’ 하고 대꾸하게 된다. 실제 이렇게 말했다가 택시기사와 싸운 일도 있었다. 아내는 “뭘 그런 걸 마음에 담아두고 있어. 그냥 무시해. 신경 쓰면 너만 손해야”라고 말한다. 난 왜 아직까지도 이렇게 상처를 받을까? 아마 이런 트라우마가 예술가도 아닌 나를 예술판에 기웃거리게 하는 동력일지도 모른다. 요즘의 화두인 ‘힐링’을 나는 지구인뮤직밴드에서 찾고 있는 것 같다. 일상의 소소한 차별도 있지만 가장 극적으로 상처를 입은 건 영화 <반두비>를 찍고 나서였다. <반두비>에서 나는 남자 주인공 카림 역을 맡았다. 영화는 발랄한 한국 여고생과 방글라데시 이주노동자가 우정을 나누는 이야기다. 개봉 전에 이 영화는 12살 관람가로 프랑스의 유명한 영화제에서 상을 받고, 청소년을 상대로 특별 상영행사까지 진행했다. 하지만 막상 한국에서 개봉될 때는 ‘19금’을 받았다. 게다가 개봉 전부터 온라인에서 악성 댓글이 끊이지 않았고, 심지어 나를 죽이겠다는 협박 전화까지 걸려왔다. 여고생이랑 키스 신 한 번 찍었을 뿐인데 나는 그 뒤로 밤길을 조심해야 했다. 오해와 편견이 있으면 한번 같이 놀아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한국인과 이주민이 같이 모여 놀 수 있는 기회를 만들자는 것이 프리포트의 기획 의도였고, 올해 2회를 맞은 이주민 예술제의 슬로건이었다. 언론이나 대중매체에서 다뤄지는 이주민은 항상 불쌍하고 도와줘야 할 존재이거나, 영화 <반두비>를 보는 일부의 시선처럼 잠재적 범죄자로 낙인찍혀 있다. 나는 이주민 스스로가 자신을 이야기할 수 있는 문화 콘텐츠가 많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게 말처럼 쉽지 않다. 정부가 지원하는 대부분의 다문화 정책은 전체 이주민의 20%인 국제결혼 이주여성의 한국어 능력, 한국 음식 만들기 등 동화 정책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무엇보다 그 지원이 ‘합법적’ 테두리 안에 있어야 가능하다는 것이 가장 큰 한계다. 합법과 불법이 나뉘고 합법 속에서도 다양한 체류 등급 속에 조건지워져 있는 이주민들에게는 그림의 떡일 수밖에 없다. 특별한 대접 아닌 일상적인 평등을 이주민에게 필요한 것은 특별한 대접이 아닌 일상적인 평등이다. 정부의 다문화 정책은 이주민을 주체가 아닌 대상으로 설정하고 있다. 또한 이주민의 현실을 잘 알고 있는 활동가들도 간혹 이주민을 사업의 대상이나 항상 도움이 필요한 사람으로만 생각하는 것은 아닌가 의구심이 들 때가 있다. 10년 넘게 한국에서 이주민 관련 활동을 하는 나에게도 그것은 큰 과제다. 그러면 어떻게 한국인(활동가)과 이주민이 일상적으로 평등하면서 의미 있는 일을 같이 만들어나갈 수 있을까? 그 문제 역시 함께 재미있게 놀면서 풀어나가야 하는 것이 맞다고 본다. 때로는 이주민들의 권리를 위한 투쟁도 필요하지만 한국에서 잘 섞여 살아가려면 다른 사람들과도 같이 놀 줄 알아야 한다. 동화 정책의 꼭두각시가 되거나 신기한 볼거리가 되라는 말이 아니라 소통하고 대화해보자는 것이다. 여기에 국적과 언어를 초월한 예술이야말로 놀이와 소통의 훌륭한 도구가 아닌가 싶다. 마붑 알엄 영화감독·배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