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 말 핀란드와 스웨덴 등 북유럽 교육현장을 함께 탐방했던 교사·학부모들이 모여 북유럽 교육이 우리 교육에 던지는 시사점은 무엇인지, 우리 학교 현장을 변화시키는 데 북유럽 교육 모형에서 어떤 도움을 받을 수 있을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좌담은 2월19일 한겨레신문사 회의실에서 진행됐다. 편집자
권태선(이하 권): 최근의 일제고사 파문에서 보듯 한국 교육은 지금 극도로 혼란스럽다. 새 정부 들어 추진된 각종 정책은 공교육의 기조를 흔들 뿐만 아니라 정부의 공언과는 반대로 사교육의 비대화를 가져왔다. 이런 현실 속에서 한국 교육을 바꾸기 위해 노력해오신 분들이 한국 교육의 대안을 찾기 위해 북유럽을 방문했다. 우선 핀란드와 스웨덴의 교육환경을 직접 보고 온 소감부터 이야기해보자.
정희곤(이하 정): 학교 교육이 이렇게 갈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공립학교의 개혁 사례인 푸투룸스콜라(미래학교)가 인상적이었다. 먼저 철학을 정립하고 조직을 재창출해 혁신적인 학교를 만들어낸 것을 보면서 우리는 그렇게 할 수 없을까를 고민했다.
서길원(이하 서): 북유럽에선 학교가 교육의 본질적 역할에 충실했다. 총체적으로 봤을 때 북유럽의 교육은 조화롭다. 거기에선 수월성과 형평성, 자율성과 책무성이 대립 개념이 아니라 조화를 이룬다. 교사의 자율성과 전문가적 책무성을 인정해주는 것이 시스템 속에 녹아 있다. 우린 모든 문제를 시스템의 문제로 보지 않고 교장이나 교사의 열정 따위로 해결할 수 있다고 밀어붙이는데, 우리도 이제는 시스템을 고민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병오(이하 병): 공교육을 모든 사람들을 위한 교육으로 정의하고 기초 단계에서는 한 사람도 포기할 수 없다는 생각으로 모든 사람을 일정 수준 이상으로 올려주기 위해 노력하며, 고등학교 이상 단계에서는 다양성을 기를 수 있게 하는 시스템이 인상적이었다. 공교육 중심인데도 관료주의가 없고 정직하고 투명한 교육이 이뤄지는 것도 놀라웠다. 교육에 관련된 국가와 지방정부, 그리고 학교의 역할과 책임을 세분화하고 명료화할 필요를 느꼈다.
김명신(이하 김): 핀란드의 경우 학업성취도가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세계 최고다. 그러나 한국은 경쟁을 통해, 핀란드는 협동을 통해 그런 결과를 냈다. 핀란드와 한국의 이런 차이는 교육 자체가 다르기 때문이 아니라 그 사회의 철학과 가치가 다르기 때문에 나타나는 문제라고 생각했다. 지난 십수년간의 학교교육 개혁운동이 왜 그만한 성과를 내지 못했는지 두 사회를 보고 이해가 갔다. 교육이 변화하려면 사회가 함께 변화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이광호(이하 이): 우리 교육은 정치권력에 따라 변해왔다. 북유럽과 가장 대비되는 점이다. 핀란드와 스웨덴은 교육개혁이 있어도 기본 틀은 변하지 않았다. 스웨덴이나 핀란드 모두 소수자에 대한 배려를 포함한 민주적 가치 추구를 이야기한다. 기업형 학교에서조차도 어떤 아이도 뒤처지지 않게 한다는 목표를 내세운다. 모두를 위한다는 정신이 똑같이 흐르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 공립학교가 그 기업형 학교보다 더 나은 것이 무엇인지 모르겠다. 개인적으로는 핀란드보다 스웨덴이 더 흥미로웠다. 스웨덴은 한편에선 인문계와 실업계가 통합된 고등학교처럼 평등주의 경향이 강하면서도 쿤스캅스스콜란(지식학교)처럼 극도의 효율성을 추구하는 학교도 용인되는 분위기였다. 실업계와 인문계가 함께 있는 스웨덴은 인간적이란 느낌이 든 반면, 핀란드의 경우에는 실업계와 인문계가 서열화된, 그러나 정돈된 느낌이었다.
권: 김 선생님께선 사회체제의 차이가 교육제도의 차이를 만들어낸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고 했다. 그렇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사회민주주의 국가인 북유럽 사회의 학교 모델이 우리 사회에 적합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를 제기하기도 한다. 교육 현장 경험에서 볼 때 이런 견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정말로 우리완 다른 먼 나라의 꿈같은 이야기인가.
정: 그동안 우리는 국가 수준의 교육개혁만 논의해왔다. 그렇기 때문에 핀란드 모델은 꿈같은 얘기로 치부해버렸다. 그러나 국가 수준, 지방자치 수준, 학교 단위, 학년 단위, 교사 개인, 교과 단위 등으로 개혁의 축을 다양화한다면 못할 것도 없다. 이제는 멀티트랙으로 접근해야 한다. 그동안 실패의 연속이었기 때문에 새로운 작은 대안이라도 성공한다면 국민에게 희망을 줄 수 있다.
서: 북유럽 교육 모델은 단순히 먼 나라 얘기가 아니다. 지금은 단순히 틀의 이식이 필요한 게 아니라 근본적인 사고의 전환이 필요하기 때문에 그렇다. 최근 일제고사 성적 공개는 우리 사회에 근본적인 논쟁점을 던져줬다. 그동안 우리의 교육개혁 논의는 명문대 입학생 수로 대변되는 대학입시제도 중심이었다. 그런데 무더기 기초학력 미달 사태가 확인됐다. 뒤처지는 아이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가 논점이 된 상황에서 핀란드 모델은 우리에게 새로운 시사점을 준다. 한국과 핀란드의 국제학생평가프로그램(PISA·피사) 성적은 모두 높지만, 핀란드는 성적이 균등한 반면 한국은 차이가 컸다. 그들보다 더 많은 평가, 더 많은 수업을 하고 있는데 왜 그런 결과가 나오는가. 그것은 시스템의 효율성 문제라고 생각한다. 핀란드에선 질 관리가 충실할 뿐만 아니라 학생들이 중도에 탈락하지 않고 다시 살아날 수 있는 패자부활 가능성이 계속적으로 보장되고 있다. 이게 핀란드의 힘인 반면 우리에겐 그것이 없다.
권: 구체적으로 단위학교 현장에서 적용할 수 있는 것들은 무엇일까.
병: 두 나라의 교육제도를 보고 우리의 자산은 무엇인지를 생각해봤다. 무엇보다 교사들의 열정이 자산이라고 본다. 핀란드와 스웨덴은 교육 시스템이 우리보다 낫지만 개별 교사가 더 헌신적이라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그러나 우리 교사들은 시스템이 제대로 안 갖춰진 상황 속에서 나름대로 결과를 내기 위해 다양한 교수법을 활용하는 등 노력하는 선생님들이 많다. 이런 교사들의 자산을 활용할 수 있게 해주는 게 필요하다. 그렇게 하려면 유연성이 필요한데, 예를 들어 초등학교에서 한 교사가 다른 교사 수업의 보조교사로 활동하는 핀란드처럼 우리도 내부의 유연성을 만들어내는 일부터 시작해볼 수 있다.
서: 북유럽 모델을 교실 현장에 적용할 수 있는 방법을 말해보고 싶다. 교실의 변화는 어떻게 가능한가. 우선 개방성 확보가 관건이고 학생의 학습 선택권을 보장해주는 게 필요하다. 학생이 학습을 선택하게 되면 학습이 다양해지고, 교사의 질적 성장이 가능해진다. 나아가 이는 교사의 헌신성·자발성으로 이어진다. 관료제를 개혁하는 것 역시 중요하다. 현재 통제 중심 체제의 관료제를 지원 중심 체제로 전환하는 게 필요하다. 스웨덴과 핀란드 학교에선 교장실은 귀퉁이에 있거나 아주 자그마했다. 학교를 소개하러 나선 것도 모두 교장들이었다. 그들은 수석 교사이면서도 교사들의 지원자로서 역할을 철저히 했다. 교육위원회나 지방자치단체의 역할도 마찬가지였다. 핀란드에선 장학·감사 제도가 이미 1990년대에 폐지됐다. 나아가 교육개혁의 담론을 유치원과 초등교육 중심으로 개발하는 것도 중요하다. 입시개혁 같은 문제는 다양한 힘의 관계가 존재하기 때문에 성과를 내기 어려운 반면, 유치원과 초등교육 부분에선 좀더 쉽게 성과를 낼 수 있다. 미래사회의 대응력을 키우기 위해 기술대학이나 직업학교에 집중 투자가 필요하다는 점 역시 강조하고 싶다. 특목고나 국제중, 기숙형 학교 등에 투자할 돈을 기술학교나 기술대학 같은 곳에 투자한다면 우리 젊은이들에게 다양한 미래를 보장해줄 수 있다. 북유럽에선 직업교육이 국가 발전의 성공적인 열쇠가 된 것 같았다.
정: 덧붙여 스웨덴이나 핀란드에서 강조하는 학생·학부모·교사의 3자 대화를 우리도 도입해봄직하다. 학부모들 역시 우리 학교 교육이 미래지향적 교육이 되지 못함을 잘 알고 있다. 그러므로 3자 대화를 활성화함으로써 학부모와 학생을 미래를 위한 교육의 동반자로 이끌어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김: 그와 함께 우리도 거대 학교를 쪼개 작은 학교로 만드는 일이 시급하다고 생각한다. 거대 학교는 학생들의 학습권을 충족해주지 못한다. 푸투룸스콜라에선 한 학교가 3개의 작은 학교로 나눠져 있었다. 그렇게 하니 교사들의 선의의 경쟁이 이뤄지고 책무성도 높아졌다고 한다.
서: 작은 학교 문제는 중요한 논점이다. 작은 학교를 통해 대도시의 학력 미달 문제를 해결할 수도 있다. 학교는 교장이 적어도 자기 학교 학생들의 이름과 얼굴을 알 수 있는 규모여야 한다. 작은 학교는 현재 공교육 틀 내에서 실험해볼 수 있는 문제다.
권: 작은 학교가 가능하려면 교사 확보에 문제가 없어야 한다. 초등학교는 별 문제가 없지만, 중학교는 전공별로 나눠져 있으니까 문제다. 스웨덴은 이 문제를 교사의 복수전공으로 푸는 것 같던데, 우리도 그렇게 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이: 학생을 중심에 두고 그 밖의 요소는 학생들을 지원하기 위한 시스템이라고 생각한다면 우리라고 못할 게 없다. 유연한 시스템이 가능하려면 교사들 역시 유연해야 한다. 젊은 교사들 가운데는 복수전공을 한 교사들도 있기 때문에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정: 교육 변화를 추동하는 것이 상향식도 있고 하향식도 있다고 할 때 학교 현장에서 할 수 있는 일이 많다고 생각한다. 제일 만만한 게 수업이다. 교사가 마음을 바꾸면 교실은 학교 변화를 위한 거점이 된다. 민주주의 등 개념 교육은 담임이 생각만 있다면 현실에서 적용할 수 있다. 방과후 학교 역시 거의 의무화되다시피 했는데 변화를 촉발할 수 있는 장치이고, 재량활동도 변화를 이끄는 기회로 활용할 수 있다. 학교 현장에서 검증돼 학부모와 사회를 설득할 수 있는 사례들을 만들어냄으로써 학교에 개혁 거점을 마련하는 게 중요하다.
이: 단위학교들이 그런 식의 개혁을 해나가면서 새로운 모델들이 만들어져야 한다는 데 동의한다. 그런 개혁이 성공하려면 그것을 지원하는 시스템이 구축돼야 하는데 우린 그렇지 못하다. 일제고사 파동만 해도 그렇다. 정부는 일제고사로 학교를 평가하겠다고 압박하면서, 학교에는 온갖 통제를 가한다. 통제와 일제고사식의 일률적인 평가가 단위학교의 자율을 억압하고 개혁을 가로막는다. 자율화·분권화하지 않으면서 학교에 책무성만 덧씌우는 시스템을 개혁해야 한다.
병: 스웨덴은 교과서가 없으니까 교사들이 교재를 만들면서 서로 연구·협동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따라서 각 교사의 연구 결과와 참여 정도가 온전히 드러난다. 교사들의 연구·협동을 진작하기 위해선 우리도 교과과정에 대한 자율권을 교사들에게 주는 게 필요하다.
권: 이명박 정권의 교육정책을 주도하는 이주호 교육과학기술부 차관도 자율화와 다양화를 이야기한다. 새로운 교육을 갈망하는 쪽에서도 자율화와 다양화의 필요성에는 공감한다. 그렇다면 둘 사이에 어떤 접점을 찾을 수 있는 여지는 없는가.
이: 지금의 정부도 자율화와 다양화를 이야기하지만 우리가 보기엔 신자유주의적 교육일 뿐이다. 그러나 정부나 정부 정책을 반대하는 진영 모두 구체적인 실천 모델이 없는 상태에서 그림만 그려놓고 밀어붙이려 한다. 그런 점에서 단위학교에서 새로운 모델들을 축적해서 학부모와 사회에 보여주는 것이 필요하다. 이와 함께 교육 문제를 둘러싼 이견을 좁히기 위해 사회적 대타협도 절실하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 그것을 만들어낼 주체가 있는가 생각하면 갑갑하다. 지금처럼 교원단체와 정부, 교원단체들 사이의 대립과 힘 겨루기가 난무하는 한 우리 사회의 교육적 역량은 계속 소진될 뿐이다. 그렇지만 스웨덴의 푸투룸스콜라가 상상력을 자극한다. 지방자치단체가 교사와 협력해 단위학교 차원의 개혁을 추동함으로써 새로운 미래형 학교를 탄생시켰다. 우리도 교육 자치가 제대로 이뤄진다면, 지방자치단체와 협력해 각 지역에 맞는 새로운 교육 모델을 만들어내는 일을 추동해볼 수도 있지 않을까.
병: 이명박 정부와 협력할 부분이 있다면 협력하고 활용해야 한다는 데 원칙적으로 찬성한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가 이주호 차관을 반대했던 것은 그가 관료개혁을 주장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 그는 관료개혁에는 손도 못 대고 학교에 고통만 가중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김: 교육을 교육의 문제로만 보면 합의점을 찾기 힘들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실제와 표상이 다른 말들을 하고 있다. 경제·문화·환경·복지 등 우리 사회의 문제들을 풀어내려면 교육이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를 물어야 한다. 그런 점에서 단위학교 개혁과 제도 개혁이 함께 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서: 교육은 여러 이해관계가 상충되어 있는 문제이기 때문에 전선을 넓혀서는 풀기 어렵다고 생각한다. 축소해서 학교 내적 문제를 해결하는 데서 시작하는 것이 쉽다고 본다. 학교 안에서 학생들에게 책무만 존재하고 선택권이 없는 문제부터 제기할 필요가 있다.
권: 정부가 다양화와 자율화를 이야기하면서 학교선택제를 내세우고 있지만, 아이들은 실제로 선택할 수 없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아이들은 무엇을 선택할 수 있어야 하는가.
서: 학생들에게 학습선택권이 주어져야 한다. 다양화란 이름으로 학교를 선택할 수 있다고 하지만, 학교 안에 들어오면 학생들은 아무런 선택권이 없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예를 들어 내 돈 내고 하는 자율학습조차 선택할 수 없는 게 오늘의 현실이다. 핀란드 고등학교에선 수많은 예체능 과목이 특성화 과정으로 개설돼 있어 학교의 색깔을 만들어냈다. 이것이 핀란드를 디자인 강국으로 만든 힘이 아닌가. 핀란드의 경우, 아이들이 학습 내용뿐 아니라 학습 속도까지 선택할 수 있다. 우리도 학습의 자율화·다양화를 위한 모델들을 만들어야 한다. 학교 다양화란 말은 학습의 다양화가 전제될 때 비로소 의미가 있지 지금 같은 형태로는 학교 서열화의 다른 말일 뿐이다. 우리에겐 자율화와 다양화가 단순히 구호에 그칠 뿐인데, 핀란드는 시스템과 법으로 보장하고 있다.
김: 다양화와 자율화는 교육의 본질에 근거했을 때 의미가 있는 것이다. 우리 교육에선 줄서기의 앞자리를 차지하기 위한 무한경쟁에 나설 수 있는 것을 허용하는 자율화이고 다양화일 뿐이다. 서울 강남의 한 학교에선 1년 363일 야간 자율학습을 하기로 했다. 이게 우리나라 자율화의 실상이다.
권: 이번 좌담을 통해 우리 교육에 새로운 상상력이 필요하다는 것이 확실해졌다. 우리 현실은 엄중하지만 여러분의 노력으로 학교 현장이 조금씩이나마 변화를 이뤄나갈 수 있으리라는 기대도 든다. 오랜 시간 말씀 고맙다.
사회·정리 권태선 한겨레 논설위원 kwonts@hani.co.kr
사진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 |
핀란드·스웨덴 교육 현장 탐방단 좌담
서길원 번천초등학교 교사·스쿨디자인21 대표
김명신 함께하는 교육시민모임 대표
이광호 이우학교 기획실장·함께여는교육 대표
정병오 문래중학교 교사·좋은교사운동 대표
정희곤 광주지산중학교 교사
사진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