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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선물

1404
등록 : 2022-03-14 03:53 수정 : 2022-03-14 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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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4호 표지이미지

3월16일은 <한겨레21>의 스물여덟 번째 생일입니다.

생일을 맞아, 선물을 드리고 싶었습니다. <21>을 이만큼 키워주신, 곁에서 든든하게 지켜봐주신 독자 여러분께요. 대단한 선물이 아니라도 마음 따듯한, 즐겁게 펼쳐보고 싶은 이야기를 담은 창간기념호를 만들고 싶었어요. 그런데 뜻밖의 문제가 하나 생겼습니다. 앞으로도 5년마다 반복될 상황입니다. 2022년부터 대통령선거 투표일이 3월 첫 번째 수요일이 되는 바람에, <21> 창간기념호 제작일과 정확히 겹치게 됐습니다. 12월 대선이, 2017년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에 따라 5월 벚꽃 대선으로 바뀐 탓입니다. 대통령 임기 만료 70일 전에 선거를 치러야 하니, 제20대 대선부터는 5월이 다시 3월로 앞당겨졌고요. 그래서 3월9일 대통령선거 결과를, 어떻게 선물처럼 독자 여러분께 전달해야 하나, 고민했습니다.

‘역대 최악의 선거’ ‘역대급 비호감 선거’ 이야기가 선물처럼 반가울 리 없을 테죠. 대선 개표 방송을 지켜보다 설핏 잠이 들었는데, 휴대전화 진동 소리에 깼습니다. 3월10일 새벽 4시44분, <21> 독자편집위원회3.0 대화방에 한 독편위원이 이모티콘을 올리자 같은 모양의 이모티콘 행렬이 이어졌습니다. 모두 개표 방송을 보느라 뜬눈으로 밤을 지새운 모양이었습니다. 이날 온종일 독편위 대화방은 와글와글했습니다.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가 제20대 대통령으로 당선된 것, 그것도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에게 0.73%포인트, 30만 표도 되지 않는, 역대 가장 적은 표 차이로 신승한 것에 대해, 그 절묘한 민심이 의미하는 바에 대해, 그리고 심상정 정의당 후보가 2.37% 득표율에 그친 것에 대해,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상파방송 3사 출구조사 결과에서 나타나듯 ‘이대남’ 담론에 가려 보이지 않는 존재인 양 취급됐던 2030세대 여성들이 ‘혐오 정치’를 막기 위해 막판 결집한 것에 대해, 함께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독편위원을 포함해 독자 여러분과 나눈 대선 이야기는 따로 지면을 통해 전합니다.

어쩌면 답답하고 묵직한 선물일 테지만 이번 창간기념 특대1호는 제20대 대통령선거에서 나타난 한국 사회의 어떤 징후를 읽어내고 분석하는 데 69쪽을 할애했습니다. 2022년 3월9일에 이르기까지 문재인 정부의 지난 5년, 앞으로 이어질 새 정부의 다음 5년도 짚어봤습니다. 극단적인 정치 양극화, 서로를 적대시하면서 지지층을 결속하고 그럼으로써 공조·공생하는 거대 양당 구조는 점점 더 강고해질 겁니다. 이대남으로 대표되는 혐오와 ‘갈라치기’ 정치도 모자라, 검사 출신 첫 대통령이 만들어갈 ‘검찰공화국’을 마주하게 생겼습니다.

그라운드제로에, 잿더미에 서 있는 느낌입니다. 낡은 것은 사라졌지만, 새로운 것은 아직 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혐오와 차별, 배제에 맞서는 미래를 그려보는 내용을 담으려 했습니다.

“한겨레도 제발… 부탁합니다. 정론직필하는 언론사, 그 길을 뚜벅뚜벅 걸어가주시기 바랍니다.” 한 독편위원의 격려 한마디가 <21>에는 큰 선물입니다. “돈이 많다 싶을 때는 정기구독 3년 연장하고, 좀 없다 싶을 때는 2년 연장했어요.” 11년간 <21>과 함께해온 독자의 말씀이, 사막에서 우물을 찾은 듯 반갑고 고맙습니다. 다시 촛불을 들 준비라도 하고 싶다고, 촛불을 들었던 마음만은 간절하게 지키고 싶다는 독자 여러분께 약속합니다. <21>은 앞으로도 이 폐허를 똑바로 응시하고 정확하게 기록하겠습니다.

마지막으로 다음주 제작할 창간기념 특대2호를 살짝 먼저 소개해드립니다. 한국 사회의 유명한, 귀감이 되는 글쟁이/저술가 21명이 말하는 ‘글쓰기의 모든 것’이 담긴 잡지를 준비 중입니다. 두고두고 펴보면 좋을 내용이 가득합니다. 선물로도 추천합니다. 소설가 21명을 인터뷰했던 ‘21 WRITERS’처럼 금세 완판될지 모르니, 인터넷서점 알라딘에서 예약 구매하세요(https://url.kr/wyi3kn).

황예랑 편집장 yrcom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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