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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예쁜 집 이야기를 쓰고 싶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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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22-02-06 11:08 수정 : 2022-02-06 1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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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둘 소품을 사는 짓과 부동산 애플리케이션(앱)을 뒤지는 짓을 번갈아 주기적으로 하고 있습니다. 스스로 어이없어하는 활동인데, 그러니까 이런 식입니다.

이 셋집은 칙칙합니다. 분위기를 쇄신해보자며 소품을 검색합니다. 책을 좋아하는 척하고 있으니 벽을 메운 책장이 필요합니다. 신문을 쫙 펼쳐도 무리 없을 큰 책상도 있어야 합니다. 마음에 들지만 흔하지 않은 그림을 한 점 걸어놓는다면 참 좋겠습니다. 조명도 좀 은은한 것으로… 그러나 진정해야 합니다. 지금껏 그래왔듯 2년, 길어야 4년 뒤 이사 가야 할 테니까요. 그때 이 모든 물건은 짐일 것이며, 새로 구할 집에 이 물건이 다 들어갈지도 알 수 없습니다.

현실을 자각하고 나면 부동산 앱의 시간입니다. 마음 편히 살 수 있는 내 집을 ‘산다’면 이 모든 고민은 해결될 테니까. 단지 조감도와 평면도를 보며 설레는데, 물론 나한테 허락된 가격은 아닙니다. 받을 수 있는 대출과 상환 액수를 셈하는 무망한 짓을 꽤 오래 하다가, 안 되겠다, 자각하고 다시 또 소품을 찾아 나섭니다. 자각과 자각 사이에서 어쩔 줄 모릅니다.

‘사니까 집이다’(제1398호)는, 설이니까 집 얘기를 해야겠다는 단순한 생각에서 시작한 기획입니다. 둘이 무슨 관계냐 물으신다면, 머무는 공간이라곤 회사 아니면 집인 밋밋하고 착실한 생활인으로서, 명절이면 회사에 가지 않으니 집을 떠올릴 수밖에…(죄송합니다). 아는 사람한테 “집 얘기 쓰려고요” 했더니, <디렉토리 매거진> 같은 예쁜 웹진도 알려줬습니다. 이런 잡지처럼 ‘힙하고 우아하게 써볼 테다’ 하는 다짐도 했습니다. 서울 아파트 가격 폭등 기사는 몇 번 썼지만, 막상 그 집에 얽힌 이야기를 예쁘게 쓴 기억이 별로 없습니다. 집값을 덜어낸, 순수하게 거주하는 집 이야기를 들려줄 세입자를 만나기로 했습니다.

이야기를 듣고 적는 동안 힙과 우아는 길을 잃었습니다. 기사 ‘최선의 집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는 소유권이 아니라 주거권의 보장을, 딱딱하게 촉구합니다. ‘2년 또는 4년 한정인 집을 감수한다’ 혹은 ‘운 좋게 인자한 집주인을 만난다’, 아니면 ‘무리해서 집을 산다’ 말고 선택지가 없는 세입자 처지는 돌아보니 이상합니다. 이 셋집에서도 원하는 만큼 편히 살고 싶다는 바람은 시민 절반 이상 세입자인 서울에서 눙칠 수 없는 꿈입니다. 집값 안정도 그 바탕에서 시작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셋집살이의 불안과 고역을 듣는 와중에도 끝내 힙과 우아는 놓지 못했고, 모두에게 집에서 그나마 가장 사랑스러운 물건, 정붙인 공간을 꼽아달라고 졸랐습니다. 아이돌 가수 CD가 놓인 책장, 캣타워 등을 세입자들은 말했습니다. 기석씨는 “없는 것 같아요” 했는데, 막상 집을 찾으니 향초들이 방 한쪽에 올망졸망 놓여 있습니다. 아직 세상은 내 집 마련으로 향하는 임시거처로 여기는 셋집, 그 집에서도 우리는 행복해야 했습니다. 그리하여 지금은 소품 검색의 주기입니다. 마음에 드는 장스탠드 하나를 고민하다, 그냥 샀습니다. 오래 함께할 생각입니다. 안정적인 머물 곳을 함께 비는 동료로 삼을 겁니다.

방준호 기자 whorun@hani.co.kr

*덧붙임. 주거권을 요구하는 시민단체 모임 ‘집걱정끝장!대선주거권네트워크’와 <한겨레>가 2월8일 오전 9시30분 ‘집걱정 시민이 묻고 대선후보가 답하다-대선후보캠프 초청 주거정책 대담회’를 엽니다.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 정의당의 주거정책 담당자들이 참석할 예정입니다. 민달팽이유니온 유튜브 채널(https://youtu.be/mSieeyJ8iXg)에서 생중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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