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리재에서] 변화의 순간
등록 : 2021-03-19 11:33 수정 : 2021-03-19 12:26
잔소리하지 않습니다. 말로 내가 바뀐 적이 없으니 남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나도 바뀌고, 남도 바꾸고 싶습니다. 방법을 모를 뿐입니다.
‘세상을 살기 좋은 곳으로 조금씩 바꾸고 있는 혁신가 21명’을 인터뷰한 통권4호를 준비하며 ‘나를 바꾼 것’이라는 공통 질문을 던졌습니다. 바꿈 전문가들을 변화시킨 것이니까 믿을 만하지 않겠어요?
첫 번째 방법은 경험입니다. 혁신가는 “하고 싶은 것은 다 해봐 다른 거 별로 없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뭐든지 해봅니다. 내게 맞는 것, 맞지 않는 것은 “해보지 않으면” 모릅니다.1) 실패해도 괜찮습니다. 배울 수 있으니까요.2) 자립도 소중한 경험입니다. 스스로 결정하고 책임지는 일을 일찌감치 하다보니 순간순간 선택할 때 여유가 생깁니다.3) 그래서 사소한 경험이라도 홀로서기는 환영입니다.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을 사정이 안 된다면 한강을 혼자 걸어봅시다. 걷는 데만 집중해도 종착지가 다가오면 떠나기 전에는 상상치 못했던 결론에 닿을 것입니다.4)
내면을 들여다보면서 길을 찾을 수도 있습니다. 하루도 빼먹지 않고 나를 대면하는 명상 시간을 갖다보면 “내 내면이 광활하듯 타인 역시 그러함을 알게 돼 누구라도 손쉽게 판단할 수 없”습니다.5)
바꾸는 방법, 두 번째는 다른 공간입니다. 먼 곳으로 떠나 다른 일상을 살아보는 겁니다. 해외에서 “두 달 머물면서 한 가지 일에만 집중하는 것” 그러면 “변화가 몸으로 스며듭니다.”6) 공동체도 변화를 이끄는 공간입니다. 그곳에서 사회가 잘못됐다는 것을, 서로 다르게 관계 맺는 법을 배울 수 있으니까요.7)
뭐니뭐니해도 바꾸는 궁극적 힘은 사람입니다. 먼저 배우자가 있죠. “단순히 부부로서가 아닌 사회 구성원으로서 삶, 그 자체로 존경”하며, 그 덕에 “사람으로서 가치를 존중받는다는 게 무엇인지도 알게” 됩니다.8) “멋진 여성”이라고 남편이 말한 순간도 잊히지 않습니다. “그 말이 더 멋진 여성이 되고 싶게 하더라고요.”9)
주변 사람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60일 넘게 단식하고도 전을 부치고 막걸리를 내오는, 환하게 신나게 싸우는 동지들을 힘들 때면 떠올립니다.10) “주변에서 같이 일하는 사람들의 지지와 응원”은 활동을 지속할 수 있는 강력한 힘입니다.11) 때로는 지하철에서 잠시 스쳐 지나갔을 뿐인 낯선 이가 정신을 번쩍 들게 합니다.12) 아마도 “어느 상황에서건 관계에 집중하고 그 관계 속에서 의미와 방향을 찾”으면 변화가 꿈틀거리나봅니다.13) 그래서 흔들림은 동물로도 가능합니다. 동물원에서 만난 호랑이가 동물권에 눈뜨게 했습니다. “무기력하게 누워만 있는 (호랑이의) 불행이 몸으로 전해졌”던 거죠.14)
혁신가들을 바꾼 것을 짚어보니 특별한 것이 없습니다. 그저 일상에서 마주한 변화의 순간을 놓치지 않고 잡아내는 슬기로움이 그들에게 있었을 뿐이네요.
덧붙임 한 가지 주제로만 제작하는 특별한 잡지를 네 번째 만듭니다. 2020년 코로나 뉴노멀(제1315·1316호), <한겨레21>이 사랑한 작가 21명(제1326·1327호), 디지털성범죄 끝장 프로젝트 너머n(제1340호)에 이어 2021년 세상을 바꾸는 체인저스 21명을 펴냅니다. 지속가능한 세계, 평등한 세계, 자유로운 세계, 더불어 사는 세계를 꿈꾸며 체인저스들은 오늘도 한 걸음씩 내딛습니다. “때론 변하지 않는 사회를 보면서 분노하지만 어쨌든 세상은 조금씩 변하고” 있고 그 “작은 변화의 흐름에 함께할 수 있어 행복”한15) 이들은, “작지만 값진 승리”16)를 향해 멈추지 않습니다. 우리도 동행해볼까요?
*이번 통권호는 합본호(제1355호·1356호)입니다. 한 주 쉽니다. 정기구독자는 한 주 뒤 제1357호에서 뵙겠습니다. 정은주 편집장 ejung@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