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언론사에서 시사 주·월간지가 현직 대통령을 인터뷰한 처음이자 (현재까지) 마지막 사례로 기록된다. 1970~80년대 <신동아> <월간조선>이 시사지 시장을 선도하며 종합일간지를 제치고 여론몰이를 하던 시절에도 현직 대통령은 인터뷰하지 못했다. 노 대통령 인터뷰 이후 15년이 흘렀지만 여전히 현직 대통령을 인터뷰한 시사 주·월간지는 없다. 배경록 편집장은 “현직 대통령 인터뷰는 <한겨레21>과 <한겨레> 신문의 매체 영향력에 힘입은 바 크고, 올곧게 정론지의 길을 걸어온 성과물이었다”고 평가했다.
를 최고의 표지기사로 꼽았다. 교회에 가면 주기도문을 외우듯, 국기를 앞에 두고 신앙고백 하듯 외우는 ‘국기에 대한 맹세’의 연원과 변질, 악영향을 다룬 수작이었다.
고 편집장은 “국가는 국민을 위해 서비스하는 기관인데 국기에 대한 맹세문은 국가와 개인의 관계를 역전시킨 것”이라며 “독재 국가의 큰 잔재인데 그 당시까지도 너무 일상화되어 있어서 사람들이 문제의식조차 못 느끼고 있었다”고 설명했다. 기사를 작성한 남종영 기자는 ‘국기에 대한 맹세’ 저자인 유종선 전 충남교육청 장학계장을 찾아내 “1968년 교육감의 지시로 맹세문을 지었고, 1972년 문교부가 전국 학교로 확대하면서 일부 문구가 수정돼 의미가 변질됐다. 지금의 맹세문은 전체주의적”이라는 충격적인 인터뷰를 이끌어낸 바 있다.
제8대 정재권(위)/ 제9대 박용현(중간)/ 제10대 이제훈(아래)
제8대 정재권 편집장이 선택한 기사는 제683호
‘내 계좌에 삼성 비자금 50억 이상 있었다’였다. 김용철 변호사(전 삼성 법무팀장)가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 기자회견 형식으로 비자금 은닉 사실을 공개하기 전 미리 보도된 단독 기사였다. 정 편집장은 잡지 발행일까지 하루 늦춰가며 ‘모처’에서 김영배 기자와 함께 김용철 변호사를 만났다. 국내 최대 기업인 삼성그룹이 그룹 임원 명의로 차명계좌를 만들어 조직적으로 비자금을 조성·관리하고 있다는 그룹 핵심 관계자의 증언과 증거(이자소득세 규모)가 그렇게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정 편집장은 “보도 이후 삼성은 ‘김용철 변호사가 <한겨레21> 표지사진에서 쓰고 있는 안경이 굉장히 고가’라는 식으로 치졸하게 내부고발자를 흠집냈다”며 “삼성 개혁, 재벌 개혁이 여전히 현재진행형인 게 아쉽지만 당시 보도가 삼성 개혁의 가장 강력한 단초를 제공한 기사였던 것만큼은 확실하다”며 자부심을 드러냈다.
현 <한겨레> 신문 편집국장인 제9대 박용현 편집장은 장고 끝에 제778호
‘9번 기계의 노동일기’를 꼽았다. 최저임금(당시 시급 4천원)을 받는 일자리에 기자가 한 달간 직접 취업해 몸으로 써내려간 ‘노동 OTL’ 시리즈의 첫 번째 기사다. 경기도 안산의 한 공장에서 시작한 이 시리즈는 서울의 갈빗집과 인천의 감자탕집, 경기도 남양주시 마석가구공단, 서울 강북 대형마트로 이어졌다. 훗날 책으로 묶여 나온 <4천원 인생>으로 기억하는 독자도 있을 것이다.
2009년 한국에서 ‘장기 참여관찰형 탐사보도’의 장을 연 ‘노동 OTL’ 시리즈는 독자들의 폭발적인 반응을 이끌어냈다. 그해 이달의 기자상과 한국기자상, 민주언론상 특별상 등을 휩쓸었다. 박용현 편집국장이 <한겨레> 신문 편집국장이 된 이후, 2018년 신문에서 ‘노동 OTL’의 오마주 기사인 ‘노동 orz, 우리 시대 노동자의 초상’ 시리즈를 보도하기도 했다. 박 편집장은 “눈에 보이지 않는, 혹은 보여도 알아차리지 못하는 진실을 드러내는 게 언론의 중요한 역할이지만, 우리 이웃의 일상과 관련된 진실은 평범하다는 이유로 외면받기 쉽다”며 “우리가 놓쳤던 진실 하나를 발견해 독자들께 전해드렸다는 점에서 기억에 남는 기사”라고 설명했다.
제10대 이제훈 편집장은 제892호
‘올해의 인물을 뽑아주세요’를 ‘최고의 (내 마음속) 표지기사’로 골랐다. 이 기사는 애초 단행본 형식의 통권으로 기획된, 당시로선 전인미답의 실험이었다. <한겨레21> 모든 구성원이 두 달간 매달려 ‘집단 창작’을 끝냈고, 최고의 표지로 손색없는 기사였지만 ‘운명의 장난’으로 표지기사가 되지 못했다. 강판을 앞둔 2011년 12월17일 토요일,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급서하는 바람에 긴박하게 표지를 교체했기 때문이다. ‘올해의 인물’은 애초 통권에서 22쪽이 빠진 23꼭지 30쪽 기획 기사로 줄었고, ‘아들을 걱정하는 아버지는 갔습니다’에 표지 자리를 내줬다.
한반도 전문가인 이제훈 편집장은 “진짜 표지를 밀어내고 형식상 표지가 된 ‘김정일·김정은 부자’의 이야기를, 2차 북-미 정상회담 즈음에 대하는 감회가 남다르다”고 했다. 그는 “젊은 리더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행보가 2500만 북녘 인민의 더 나은 삶으로 이어지기를, 식민과 전쟁과 분단으로 점철된 한반도의 공고한 평화를 여는 한축으로 기여하기를 간절히 바란다”고 덧붙였다.
세월호 유가족과 함께 걷다
제11대 최우성(위)/ 제12대 안수찬(중간) 제13대 길윤형(아래)
제11대 최우성 편집장은 불시에 인터뷰 요청을 받고도 “제953호부터 제1052호까지 100권을 만들었다”며 경제학 박사다운 범상치 않은 기억력을 뽐냈다. 최 편집장 시절 제1000호와 창간 20주년이 있었던 터라 공들인 기획기사가 많았다. 하지만 최 편집장은 세월호 참사 첫 주에 만든 제1008호
‘이것이 국가인가’와 백지에 카피도 없이 검은 테두리와 검은 제호만 넣은 제1009호
세월호 참사 특집호를 최고의 표지기사로 꼽았다. 최 편집장은 “취재기자가 팽목항에 내려갔을 때 유족들이 맨 처음 했던 말이 ‘이게 나라냐’였다. 기사가 들어오기 전에 표지 먼저 마감한 드문 사례”라며 한국 사회에 가장 먼저 ‘이것이 국가인가’라는 질문을 던진 표지의 취지를 설명했다. 곧이어 발행된 백지 표지도 비탄에 젖은 한국 사회에 묵직한 울림을 줬다.
<한겨레21>은 표지 디자인 이외에 기사로도 세월호 참사를 가장 끈질기고 심층적으로 보도한 매체로 평가받는다. 특히 정은주 기자는 유가족과 함께 38일간 도보순례에 동행하고 관련 기록·자료 집대성에도 앞장섰다. 최 편집장은 당시 상황에 대해 정 기자와 ‘견해차’가 있음을 미리 밝히며 ‘최우성 시점’으로 배경을 설명했다.
“유가족 도보순례 제보는 내가 받았지만 따라가겠다고 한 건 정 기자였다. 정 기자는 ‘한겨레21 페이스북에 도보순례 중인 정 기자의 휴대전화 번호를 올려 자신을 순례단 로드매니저로 만든 사람’이 나라고 하지만 내 기억엔 정 기자와 합의해 올린 것이다. 정 기자가 고생했지만 그 뒤로 많은 이가 함께 걸었고 유가족에게도 큰 힘이 됐다.”
제12대 안수찬 편집장 역시 2년간 만든 <한겨레21> 중 최고의 표지로 세월호 연속보도를 꼽았다. 제1057호
‘진실은 이렇게 감춰졌다’를 시작으로 안 편집장 시절 세월호 관련 표지기사를 세 차례나 썼다. 안 편집장이 마지막으로 만들고 후임자에게 ‘만리재에서’ 배턴을 넘기고 떠난 제1157호 표지도
‘세월호 그날의 목소리’였다. 안 편집장은 “최 편집장 때 유족 도보순례에 동행하면서 <한겨레21>이 세월호에 대한 국민적 관심을 계속 환기시키는 역할을 해왔고, 나도 그 역할을 계승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다만 유족과 함께하고 관심을 환기시키는 것만으론 부족하고, 세월호 의혹과 사실을 밝히는 쪽으로 ‘진도’를 나가기로 했다”고 말했다.
마침 정은주 기자가 세월호 관련 수사 기록 일체를 입수했다. 너무 방대해서 검찰과 감사원조차 그 의미를 제대로 짚지 못하고 있는 자료였다. 분석하려면 상당한 인력과 시간, 비용이 들어가는 문제였다. 안 편집장은 말했다. “옛날엔 시사주간지가 발생 뉴스를 조금 더 깊게 해설하면 됐지만 더 이상 그 포지셔닝이 유효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결국 깊은 호흡으로 숨겨진 사실을 드러내는 추적 탐사보도가 답이라고 생각했다. 그 당시 한국 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탐사보도 대상은 세월호 참사였다. <21>의 역량을 다 바쳐서라도 하자고 결심했다.” 정은주 기자와 ‘진실의 힘 세월호 기록팀’이 자료 분석을 위해 10개월간 매달렸다. 2014년 4월16일 오전 8시49분 세월호가 오른쪽으로 기울기 시작했을 때부터 10시30분 침몰할 때까지 한국의 국가구조 전체가 어떻게 오작동했는지 적나라하게 전모가 드러났다. 주요 내용은 <한겨레21> 기사로 보도됐고, 단행본 <세월호, 그날의 기록> 역시 그렇게 만들어졌다.
제13대 길윤형 편집장은 사이비 역사의 폐해를 심도 있게 다룬 제1167호
‘사이비 역사의 역습’을 선택했다. 기사 출고 전 <환단고기> 등 위서를 상대로 열심히 싸우고 있던 소설가 이문영씨가 “엄청난 후폭풍이 있을 텐데 자신 있냐”고 물었을 땐 “천둥벌거숭이에 가까워서 ‘별로 겁나지 않는다’고 답했으나, 정말 상상도 못할 후폭풍을 겪었다”고 회고했다. 이 기사로 <한겨레21>은 역사학자 이덕일씨로부터 “조선총독부 기관지”라는 공격을 받았다. 회사에는 길 편집장의 사죄와 사퇴를 요구하는 공문이 쇄도했다. 그러나 길 편집장은 “젊은 역사학자들과 한국 상고사학회 등으로부터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았다’는 격려가 이어졌다”고 상반된 평가를 전했다.
길 편집장은 책의 완성도 측면에서
‘死·삶 4·3을 말하다’도 빼놓을 수 없다며 기어이 표지 하나를 더 꼽았다. 그는 “두 달 전부터 전체 기획을 구성하고 고정 필자들에게 모든 외고의 주제를 ‘4·3으로 해달라’고 주문했다”며 “다른 시사주간지와 비교가 되지 않는 압승이었고 ‘이렇게만 만들어달라’는 독자들의 요구가 빗발쳤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매주 잡지를 그렇게 만드는 것은 불가능했다”며 ‘ㅠㅠ’로 마침표를 대신했다.
전정윤 기자 ggum@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