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223호 마감일인 7월27일 밤 독편 카톡방에서 표지 후보 셋(오른쪽 아래)을 두고 독편들이 ‘투표’를 하고 있다(왼쪽 갈무리). 매주 금요일 밤 독편 카톡방에선 표지 후보 투표가 이뤄질 예정이다. 독편 카톡방 화면 갈무리/ 디자인주 제공
기자들의 ‘텔레그램방’도 독자들의 ‘카톡방’으로 확장됐다. 노회찬 의원의 국회 영결식에서 김영숙 국회 환경노동조합 위원장이 이정미 정의당 대표 품에 안겨 눈물을 쏟는 동영상은 기자들의 메신저 방에 올라온 뒤 곧바로 독편 카톡방에 공유됐다. 이 동영상을 물려 쓴 현장 기사가 인터넷한겨레에 오르고, 포털사이트를 통해 대중에게 전파되기 전에 일어난 일들이다. 기자들이 전유하던 뉴스 보도 이전의 과정을 공유하는 새로운 존재가 독편이다. 진성독자를 만드는 경험 같은 날 밤 10시께 <21>의 디자인을 맡은 디자인주 사무실에서 열린 표지 선정 회의 직후엔 표지 후보 셋이 독편 카톡방에 똑같이 올랐다. “다음 셋 중 어느 게 <21> 표지로 좋을까요?” 고 노회찬 전 의원이 첼로를 켜는 표지가 독편 다수의 지지를 받았고, 첼로 표지가 실제 표지로 채택돼 제1223호가 발행되었다. 표지 소장을 원하는 독편에게는 표지 PDF 파일도 제공됐다. “결과보다는 과정이 새롭다. 다수의 참여에 따른 기사 편집, 앞으로가 더 기대됩니다. 어떻게 진화해갈지.”(최영식) “잡지 편집 과정에 참여하는 경험 자체가 편집장님께서 말씀하신 ‘진성독자’를 만드는 지름길이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앞으로 더 기대된다.”(황준서) “<21> 받고 뿌듯했다. 이런 경험 처음이다.”(클라라파파) 2013년 한겨레신문 창간 25주년을 맞아 작성한 ‘한겨레 25년, 창간정신의 진화-말 거는 한겨레’ 보고서는 미래의 한겨레가 지향해야 할 가치로 ‘개방, 공유, 협력’이라는 열쇳말을 제시하면서, 한국의 언론이 마주한 현실을 이렇게 진단했다. “기자가 아는 것은 제한되고 혼자 다 할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대중의 지식, 뛰어난 전문가의 역량을 엮어서 취재를 해야 한다. 시민들이 일상에서 얻고 경험하는 정보를 공유하고 제공토록 하는 ‘집단협업(crowdsourcing) 저널리즘’이나 ‘오픈 저널리즘’을 능숙히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 당시 해당 보고서 작성에 참여한 류 편집장은 5년 뒤인 2018년 <21>의 편집장이 됐다. 독편 3.0은 개방·공유·협력이라는 미래 한겨레의 가치가 구현되는 공간이다. <기자협회보>는 독자와 소통을 강화하는 매체들의 실험을 다룬 기사(7월17일 “벽을 허물었다, 독자가 다가왔다”)에서 유튜브를 통한 시청자의 뉴스 참여를 시도하는 MBC의 ‘마이 리틀 뉴스데스크’와 <21>의 ‘독편 3.0’을 소개했다. 내 뒤에 <21>이 있다 한국을 넘어 세계 저널리즘의 경향을 고려할 때 독편 3.0은 때늦은 시도다. 영국의 진보적 일간지 <가디언>이 매일 오전 편집회의에서 결정된 기사 출고 계획을 독자에게 공개(오픈 뉴스리스트)한 것이 2010년의 일이다. 전세계 언론인이 모이는 가장 큰 행사인 세계편집인포럼이 언론사의 생존 모델로 ‘뉴스 유료화’와 ‘수용자 참여’를 화두로 삼은 때는 2013년이다. 당시 미국 뉴욕시립대 저널리즘스쿨의 제프 자비스 교수는 핵심 시장 안에 있는 독자들이 밖에 있는 독자들보다 25배나 중요하지만, 불행하게도 많은 언론사가 독자들이 어디에 있는지도 모른다고 지적했다. “독자들이 어디에 살고, 무슨 일을 하는지와 같은 작은 데이터로 독자들과 관계 맺기를 시작하라.… 우리는 관계 비즈니스 안에 있어야 한다.”(한국언론진흥재단, <신문산업 생존을 위한 승부수, 뉴스 유료화>, 2013) 독편 3.0은 시도보다 중요한 진화가 남아 있다. <가디언>은 편집회의 공개 이후 2012년 독자와 소통하고 독자의 참여를 매체 전략의 핵심으로 삼는 ‘오픈 저널리즘’을 자사 슬로건으로 내걸었다. 2015년과 2016년엔 미국에서 경찰에 의해 사망한 민간인의 정보를 집약하는 데이터베이스 크라우드소싱 프로젝트 ‘더 카운티드’를 시작하면서 “수용자가 우리가 추구하는 저널리즘의 핵심이다”고 선언했다. 8월3일 독편 카톡방에 기사에 대한 피드백을 남긴 권성철 독편과 나눈 카톡 대화에 진화의 실마리가 있다. “참여하면서 ‘나도 영향력이 있구나’ 느꼈다. 특히 표지 디자인 결정이 그랬다. 생활 중에 부조리를 개선할 수 있다는 생각이 이전보다 커졌다. 내 뒤에 이야기를 들어주는 <21>이 있다고 생각하니 든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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