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지침에 길들여졌던 부처 공무원들 ‘스스로 판단’ 못해 소리 없는 아우성
6월3일로 취임 100일을 맞은 노무현 대통령의 표정이 썩 밝지 않다. 국정이 잘 풀리지 않는다는 비판이 쏟아지고 있으며, 실제로 청와대와 정부 부처들이 일사불란하게 가동된다는 느낌도 적기 때문이다. 국민들의 노 대통령 국정운영 평가 지지율도 취임초의 70~80%에서 50%대로 떨어진 상태다.
“엄마 젖을 떼어가는 과정”
최근의 혼란상을 두고 청와대는 권위주의를 벗어던지고 새로운 시스템을 도입하는 과정에서 빚어진 과도기적 마찰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문희상 청와대 비서실장은 “청와대의 지침을 받는 데 수십년간 길들여졌던 정부 부처 관료들이 그 지침을 없애니까 일시적으로 혼란을 느끼는 것 같다”며 “부처 자율로 넘어가기에 앞서 ‘엄마 젖’을 떼어가는 과정”이라고 말한다.
지금의 청와대는 ‘분권과 자율’을 캐치프레이즈로 내걸고 과거의 경제수석, 복지노동수석, 교육문화 수석 등의 부처별 소관 수석실을 없앤 상태다. 청와대는 대신에 경제 부처들은 경제부총리 중심으로, 그 밖의 사회·문화 부처들은 국무총리 국무조정실 중심으로 부처간 현안을 협의해 조정하도록 하고 있다. 청와대 정책실은 “언제까지 그 과제에 대한 결론을 내달라”며 일의 진도만 챙기고 내용에는 간섭하지 않는다는 방침이다. 노 대통령은 사실 ‘부처 자율주의’의 예고편을 일찍부터 선보인 바 있다. 그는 대선후보 시절에 “후보는 돌아다니면서 유세와 토론 참석 따위의 선거운동에 주력하고, 선거캠프와 당은 그 사람들이 알아서…”라는 입장을 견지했다. 그 결과 후보가 ‘제왕적으로’ 당무 전반을 장악하는 데 익숙했던 민주당에서는 “후보가 챙겨주지 않는다”는 아우성이 터져나왔으며, 혼란도 적지 않았다. 지금의 모델을 짠 데는 미국 백악관과 정부 부처간 관계를 연구해 한국에 적용할 것을 제안한 박세일 전 청와대 수석 등의 영향도 컸던 것으로 보인다. 노 대통령의 당선자 시절에 ‘노무현 사람들’은 박 전 수석 등이 공동집필한 <대통령의 성공조건>이란 책을 교과서처럼 들고 다녔다. 어쨌든 그 모델을 적용한 결과 부처 공무원들 사이에서는 소리 없는 아우성이 벌어지고 있다. 예를 들어 교육행정정보시스템(NEIS) 파동이 한창일 때 청와대 부근 효자동에서는 전교조 교사 몇 사람이 NEIS 철회를 요구하며 노숙 시위를 벌였다. 그러자 경찰은 청와대 정무수석실에 “강제해산시킬지 말지”를 묻고 또 물었다. 청와대쪽이 “그런 건 당신들이 법대로 알아서 하라”고 답해도 경찰은 요지부동이었다. 한마디로 말해 경찰 스스로 판단해 행동했다가 일이 잘못되면 누가 책임질 거냐며 “지침과 함께 책임도 청와대가 져달라”는 이야기였다. 화물연대 파업 때 어떤 경제 부처가 청와대의 각 부서로 무려 16군데나 상황보고서를 올렸는데, 그 배경도 역시 지침을 달라는 것이었다. 1년 이상 걸려야 가닥 잡힐 듯 노 대통령도 고민이 적지 않은 것 같다. 그는 5월30일 중앙언론사 편집·보도국장들과 만난 자리에서 “대통령은 국책만 쥐고 나머지는 부처에 맡기려고 한다. 분야별 수석을 그래서 없앴다. 그런데 자꾸 들고와서 결정을 묻는다. (자신들이) 바로 결정하면 되는데… 문화가 전파되는 데 1년 이상 걸릴 것 같다”고 고충을 털어놓았다. 현재의 상황을 한마디로 요약한다면 “알아서 해달라” 대 “우리는 절대로 알아서 할 수 없다”는 세력간의 일대 문화충돌이 벌어지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또한 우리 사회에선 워낙 낯선 실험이다 보니 마찰도 심하고 언제쯤 가닥이 잡힐지도 알기 어려운 상태다. 한겨레 정치부 박창식 cspcsp@hani.co.kr

사진/ 국무회의에 참석한 노 대통령. “대통령은 국책만 쥐고 나머지는 부처에 맡긴다”는 게 노 대통령의 국정 철학이다.(청와대사진기자단)
지금의 청와대는 ‘분권과 자율’을 캐치프레이즈로 내걸고 과거의 경제수석, 복지노동수석, 교육문화 수석 등의 부처별 소관 수석실을 없앤 상태다. 청와대는 대신에 경제 부처들은 경제부총리 중심으로, 그 밖의 사회·문화 부처들은 국무총리 국무조정실 중심으로 부처간 현안을 협의해 조정하도록 하고 있다. 청와대 정책실은 “언제까지 그 과제에 대한 결론을 내달라”며 일의 진도만 챙기고 내용에는 간섭하지 않는다는 방침이다. 노 대통령은 사실 ‘부처 자율주의’의 예고편을 일찍부터 선보인 바 있다. 그는 대선후보 시절에 “후보는 돌아다니면서 유세와 토론 참석 따위의 선거운동에 주력하고, 선거캠프와 당은 그 사람들이 알아서…”라는 입장을 견지했다. 그 결과 후보가 ‘제왕적으로’ 당무 전반을 장악하는 데 익숙했던 민주당에서는 “후보가 챙겨주지 않는다”는 아우성이 터져나왔으며, 혼란도 적지 않았다. 지금의 모델을 짠 데는 미국 백악관과 정부 부처간 관계를 연구해 한국에 적용할 것을 제안한 박세일 전 청와대 수석 등의 영향도 컸던 것으로 보인다. 노 대통령의 당선자 시절에 ‘노무현 사람들’은 박 전 수석 등이 공동집필한 <대통령의 성공조건>이란 책을 교과서처럼 들고 다녔다. 어쨌든 그 모델을 적용한 결과 부처 공무원들 사이에서는 소리 없는 아우성이 벌어지고 있다. 예를 들어 교육행정정보시스템(NEIS) 파동이 한창일 때 청와대 부근 효자동에서는 전교조 교사 몇 사람이 NEIS 철회를 요구하며 노숙 시위를 벌였다. 그러자 경찰은 청와대 정무수석실에 “강제해산시킬지 말지”를 묻고 또 물었다. 청와대쪽이 “그런 건 당신들이 법대로 알아서 하라”고 답해도 경찰은 요지부동이었다. 한마디로 말해 경찰 스스로 판단해 행동했다가 일이 잘못되면 누가 책임질 거냐며 “지침과 함께 책임도 청와대가 져달라”는 이야기였다. 화물연대 파업 때 어떤 경제 부처가 청와대의 각 부서로 무려 16군데나 상황보고서를 올렸는데, 그 배경도 역시 지침을 달라는 것이었다. 1년 이상 걸려야 가닥 잡힐 듯 노 대통령도 고민이 적지 않은 것 같다. 그는 5월30일 중앙언론사 편집·보도국장들과 만난 자리에서 “대통령은 국책만 쥐고 나머지는 부처에 맡기려고 한다. 분야별 수석을 그래서 없앴다. 그런데 자꾸 들고와서 결정을 묻는다. (자신들이) 바로 결정하면 되는데… 문화가 전파되는 데 1년 이상 걸릴 것 같다”고 고충을 털어놓았다. 현재의 상황을 한마디로 요약한다면 “알아서 해달라” 대 “우리는 절대로 알아서 할 수 없다”는 세력간의 일대 문화충돌이 벌어지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또한 우리 사회에선 워낙 낯선 실험이다 보니 마찰도 심하고 언제쯤 가닥이 잡힐지도 알기 어려운 상태다. 한겨레 정치부 박창식 cspcsp@hani.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