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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측근비리 대응코드’ 감상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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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3-05-08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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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직 대통령들과 달리 직접 사과·해명 나서…직선적 접근방식이 사태 해결에 도움 될까

노무현 대통령이 측근인 안희정씨가 기업에서 돈을 받은 사건과 관련해 5월1일 문화방송 <100분 토론>에서 “국민에게 죄송하고 난감한 심정”이라며 사과 의사를 밝혔다. 이 사건은 안씨가 대학선배인 기업인한테서 2억원을 받아 오아시스워터라는 생수회사에 쓴 게 뼈대다. 검찰의 1차 수사 결과, 뒷날 생수회사를 매각한 잔금 2억원을 노 대통령이 국회의원 시절에 실질적으로 이끌던 지방자치실무연구소(안씨가 사무국장으로서 살림살이를 도맡았다고 함) 운영자금으로 갖다쓴 것으로 나타난 상태다.

부하를 나무란 김영삼 대통령

사진/ 노무현 대통령은 〈100분 토론〉에서 안희정씨 사건에 대해 사과 의사를 밝혔다. 전직 대통령들과는 사뭇 다른 태도다.(청와대사진기자단)
사건의 전모는 검찰 수사를 좀더 지켜봐야 알 것 같다. 그러나 여기서는 권력자들이 자신의 측근 비리를 어떻게 다뤄나갔는지를 ‘읽어보고자’ 한다. ‘측근 비리’는 항상 권력자의 아킬레스건이었기 때문이다.


김영삼 대통령은 1997년에 청와대 부속실장인 장학로씨 비리사건을 겪었다. 권력자의 문고리를 잡은 덕분에 실세가 된 장씨가 기업인·공무원·국회의원들한테서 27억원을 챙긴 사건이었다.

사건이 나자 강삼재 신한국당 사무총장은 “어디까지나 장학로 개인 비리”라며 보스인 YS와의 무관함을 강조했다. YS는 내내 침묵을 지켰다. 그러다 장씨의 혐의가 사실로 드러나자 “(나는) 부정부패를 척결하는 데 솔선수범해왔는데 비서관이 어떻게 부정부패 혐의를 받을 수 있느냐”고 개탄했다. 나는 안 그랬다면서 부하를 추상같이 나무란 것이다.

김대중 대통령은 야당 총재 시절인 1997년 2월에 권노갑씨가 한보그룹으로부터 돈을 받은 혐의로 구속됐다. 권씨는 당시 김대중 총재의 자금관리인으로 알려진 측근 중의 측근이었다.

DJ는 권씨가 구속되자 자택에 칩거했다. 참모들도 숨죽이며 엎드려 있었다. 그러던 1주일 뒤 DJ는 “당의 중진이 관련된 점”(자신의 측근이라기보다는)을 들며 대국민 사과를 했다.

과거 권력자들의 측근비리 대처법에는 하나의 공식이 있었다. 첫째, 일단은 뭉개면서 사태와 여론의 추이를 지켜본다. 둘째, 그동안 참모들은 보스와 사고를 친 자의 무관함을 강조하면서 ‘꼬리 자르기’를 시도한다. 셋째, 실상이 드러나 빼도박도 못하게 될 때 포괄적으로 유감을 표시하며 재발 방지를 다짐한다.

노 대통령은 안희정씨에 대한 수사결과가 나오기 전인데도 직접 해명하고 사과하겠다고 수석·보좌관회의에서 몇 차례 주장했다고 한다. 그런 것을 ‘검찰수사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참모들이 만류하는 바람에 주저앉았다가 문화방송 토론 무대에서 우선 사과부터 하고 본 것이다.

검찰에 대한 으름장인가

노 대통령은 또한 “안희정씨는 사리사욕이 아니라 나를 위해 일한 사람이며, 나로 말미암아 고통을 받고 있는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이 말은 장학로·권노갑씨 사건과는 또 다르게 문제의 돈이 실제로 자신의 정치활동과 관련돼 있기 때문이라는 측면이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안씨가 “내가 모두 알아서 했다”고 주장하는 상황에서 다소 뜻밖이라는 느낌도 준다. 이를 두고 노 대통령의 참모들은 “안씨에게 떠넘기며 꼬리 자르기를 할 수도 있겠지만, ‘비겁하게 뒤에 숨진 않겠다’는 게 노 대통령의 생각”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런 직선적 접근방법만으로 노 대통령이 궁색한 상황을 벗어날지는 의문이다. 대통령이 되기 이전의, 게다가 일개 비주류 정치인 시절의 정치자금 문제였다고 주장할 수도 있겠으나, 요즘 부패 문제를 다루는 세인의 잣대는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엄격해졌기 때문이다. 당장 “나로 말미암아 고통을 받은 사람”이라는 언급을, “나와 관련된 사람이니까 함부로 건드리지 말라”고 검찰에 으름장을 놓은 것으로 해석하는 사람들이 나오는 것도 이런 사정의 반영으로 보인다.

한겨레 정치부 박창식 cspcsp@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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