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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우리가 제1당 아냐?…‘줏대 있는’ 무당층의 탄생

소극 지지자·교차투표자 많은 충남 아산·인천 연수구·서울 중구 시민을 만나다…이들이 바라는 정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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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23-09-22 20:26 수정 : 2023-09-26 1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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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치관이 뚜렷한 `줏대 있는\' 무당층이 등장해 이전과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다. 일러스트레이션 장광석

“저는 지난 대선 때 윤석열 대통령을 뽑았어요.”

2023년 9월12일 인천 연수구의 카페에서 만난 류정서(31·남성·인천 연수구)씨가 말했다. 정서씨는 수도권의 한 회사에 다니는 평범한 직장인이다. 눈에 띄는 경력을 꼽으라면 ‘해군 복무’. 문재인 정부 시절 해군 장교로 복무했고 2019년 제대했다. 2022년 대선 때 ‘소극적 국민의힘 지지자’였다는 그는, 당시 가장 중요하게 본 기준으로 ‘범죄 이력’을 꼽았다. 윤 대통령에겐 전과가 없었다. 장교 복무 경험이 있기에 국민의힘 안보관이 가깝게 느껴진 것도 영향을 끼쳤다. 하지만 대선 이후 1년6개월이 지난 지금, 그는 더는 정부·여당을 지지하지 않는 무당층이 됐다.

2023년 9월12일 인천 연수구에서 유권자들과 이형은(국민의힘) 구의원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박승화 기자

그들은 왜 무당층이 됐나

‘정치’가 피부에 와닿은 건 2023년 8월이었다. 인천 지역 축구팀인 ‘인천유나이티드’ 팬인 정서씨는 전북 전주월드컵경기장에서 8월11일 열리는 축구협회(FA)컵 경기를 보기 위해 경기 티켓을 예매하고 숙소도 예약했다. 하지만 하루 전날 경기가 열리지 않는다는 갑작스러운 통지를 받았다. ‘2023 새만금 세계스카우트 잼버리 대회’가 파행을 빚으면서 급조된 ‘잼버리 케이팝 콘서트’가 해당 경기장에서 열리게 된다는 게 이유였다. 숙소 예약은 위약금을 물어가며 취소했다. 잼버리 관련 뉴스를 보니 정부 행정이 “무능”하게 느껴졌다.

또 한 번 “어이없는 상황”이 있었다. 육군사관학교 홍범도 장군 흉상 이전과 홍범도함 명칭 변경 논란이었다. ‘홍범도 논란’을 지켜보면서 그는 국민의힘을 뽑은 이유 중 하나였던 ‘안보관’도 믿을 만한 것인지 의심하게 됐다. 정부·여당이 ‘극우 지지층’을 대변하는 메시지를 내놓는다고 느껴서다. “홍범도함 명칭이 결정된 건 박근혜 정부 때예요. 보수 정부에서 이걸 다시 바꾼다는 건 이념이든 뭐든 다 의미 없어지는 겁니다.” 정서씨는 자신을 비롯해 주변에 “국민의힘을 뽑았다가 무당층이 된 이가 꽤 많다”고 말했다.

인천 연수구에 사는 안아무개(39)씨는 반대의 환멸을 느꼈다. 현재 지지 정당이 없는 상태다. 그는 ‘가치 지향’보다 ‘편 가르기’가 우선이 된 정치 현실에 실망했다. “개인적으로 더불어민주당에 제일 깬 건 2020년 박원순 전 서울시장 사망 당시 ‘피해호소인’이라는 듣도 보도 못한 말을 썼을 때예요. 조국 사태 때도 비슷한 이유로 조국 개인을 넘어 민주당에 실망했고요.”

안씨는 다음 총선에서 ‘당보다는 그 사람의 실력’을 볼 것이라고 했다. “그런데 거기서 확신을 주는 사람이 별로 없어요. 가끔 지방선거에 인턴 경력 적어서 낸 정치인들 보면 황당하기까지 했어요.”

무당층이 늘고 있다는 뉴스가 나온다. 윤석열 정부 출범 직후 10%대였던 무당층 비율은, 2023년 7월3주차 한국갤럽 조사에선 32%로 최대치(민주당 30%·국민의힘 33%)를 기록했다. 9월2주차 한국갤럽 여론조사에서도 무당층은 29%(민주당 32%·국민의힘 33%)로 나타나, 양당과 비슷한 수치를 보인다. 정치학자들은 우리나라 유권자가 대체로 ‘30%(보수) : 30%(진보) : 40%(무당층)’의 양상을 띤다고 지적하지만 유난히 ‘정치 혐오’를 말하는 유권자가 늘고있다.

<한겨레21>은 이들 무당층의 목소리를 듣고 싶어 직접 찾아가보기로 했다. 지방자치데이터연구소의 도움을 받아 찾아갈 지역으로 소극 지지자, 교차투표자가 많은 상위 3개 지역(충남 아산갑, 인천 연수구을, 서울 중구 성동구을)을 꼽았다. 충남 아산, 인천 연수구에선 유권자 좌담회(유권자 10명)를, 서울 중구에선 게릴라 인터뷰(유권자 30명)를 진행했다.

정당 행태, 정책 방향, 후보 개인 하나도 마음에 안 들어서…

“(양당 현수막 싸움이) 원래는 아산도 심했다. 그런데 양당으로 들어온 시민들 피드백이 ‘현수막에 피로감을 느낀다. 문구가 너무 자극적이다’ 등이었다. 자극적인 현수막이 많았는데 이제 문구를 정화해 부드럽게 내보내는 분위기다.”(민주당 명노봉 아산시의회 의원)

문구가 자극적이면 오히려 그 정당을 안 좋게 본다는 피드백이 있었다. 후보자 색깔이 너무 세면 오히려 반감이 든다는 것이다.”(국민의힘 박효진 아산시의회 의원)

2023년 9월5일 충남 아산의 한 카페에서 박효진(국민의힘) 시의원과 명노봉(민주당) 시의원이 유권자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김진수 기자

2023년 9월5일 아산의 한 카페에서 유권자 4명을 양당 시의원과 함께 만났다. 아산갑 지역구는 소극 지지자와 교차투표자가 전국에서 가장 많은 지역(2012~2022년 선거투표데이터·여론조사결과의 메타분석값·통계청 등 인구사회경제 데이터 활용)이다. 최정묵 지방자치데이터연구소장은 ‘소극 지지자와 교차투표자’ 비중이 50% 이상이면서 ‘양당 평균 격차가 2% 이내 접점’인 지역구 12개를 추렸는데(그래픽 참조) 아산이 가장 두드러졌다. 이곳은 본래 지역색이 뚜렷한 경상도·전라도에서 비켜간 전통적 스윙보터 지역 ‘충청도’인데다, ‘국립경찰병원 유치’ 정도가 지역 유권자들의 관심일 정도로 큰 이슈가 없는 지역이다. 관료 출신인 이명수 국민의힘 의원이 해당 지역구에서 4선을 했지만, 정치색이 강하지 않다. 자신을 ‘유튜브 알고리즘 추천에서 정부·여당과 민주당 비판 뉴스가 함께 뜨는 진짜 무당층’이라고 지칭한 아산 지역 청년사업가 김진배씨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내가 생각할 때 아산의 미래는 ‘경제적 발전’에 있음을 부정할 수 없다. 내가 걱정하는 부분은 아산은 제조업 기반 도시인데, 앞으로 제조업은 쇠퇴할 수밖에 없다. 게다가 2022년 하반기나 2023년 상반기에 경제적 위기가 올 수 있다는 얘기도 계속 나온다. 이 시점에선 아산 지역경제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정치인을 국회로 보내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총선에선 아산 경제 정책에 혜안이 있는 후보가 있는가 그걸 봐야 한다.”(김진배, 38·남성·아산)

진배씨는 정당 행태, 정책 방향, 후보 개인 등을 고루 살펴보고 합리적이고 종합적으로 의사결정을 하려고 노력한다. 그는 지난 대선에서도 여러 요소를 살핀 뒤 홍준표 당시 국민의힘 대선 경선 후보와 이재명 민주당 대선 후보 중 누구를 찍어야 할지 고민했다. 홍 후보가 경선에서 탈락하는 걸 보고 이 후보를 찍었지만 현재 양당 모두 지지하지 않는다.

저쪽이 싫어서 투표하는

‘저쪽이 싫어서 투표’하기도 한다. 9월6일 인천 송도구의 한 카페에서 만난 정주연씨가 그렇다.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에 대한 정부 대처를 보고 총선 선택을 미리 결정했다. 현 정부가 예산을 들여서 (오염수가 괜찮다는) 홍보 영상을 만들고 자기들끼리 회 먹는 모습을 보니 혈압이 올랐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도 싫지만 최악을 피하기 위해 민주당을 뽑을 것 같다.”(정주연, 41·여성·연수구)
주연씨는 정당 지지에 열려 있어 투표장 가기 전까지 여러 사항을 고려해 신중하게 선택한다. 그는 마음에 들기만 하면 지난 선거에서 투표한 정당의 반대 정당, 제3당에 투표(교차투표자)할 수 있다.

최 소장은 “오히려 어떤 의미에서 교차투표자와 소극 지지자(지지를 완전히 철회하진 않았지만 투표장에 가지 않을 가능성이 있는 유권자)가 매우 일관적인 유권자라 할 수 있다”고 해석했다. ‘통합·협치·현장을 공통적으로 좋아하고 지나친 공격과 분열·갈등을 싫어한다’는 특성 때문에 특정 정당에 쏠리지 않는 경향도 있지만, 어떤 정당이라 할지라도 자신이 세운 기준에서 벗어나면 표를 주지 않는 ‘일관된’ 유권자들이란 것이다.

“중도 혹은 무당파라고 해서 그 사람들이 가치관이 없는 게 아니다. 가치관은 뚜렷하게 있다. 나 같은 경우는 보수다. 그러나 내가 국민의힘을 보수로 보지 않는 이유는, 그 사람들이 그렇게 행동하지 않기 때문이다.”(오준석, 38·남성·연수구)

“나는 특정 정당을 딱 골라서 뽑지 않는다. 정당보다 그때그때 정책을 보려 노력한다. 예를 들어 청년 정책을 주로 본다. 이전 총선에서도 직접 실생활에 도움을 줄 수 있는 공약을 봤다. 지금 나한테 실생활에 가까운 이슈는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류’ 문제다.”(이아무개, 23·여성·서울 중구)

“공약을 많이 볼 거다. 기후위기가 심각하기 때문에 누가 이쪽에서 현실적인 공약을 내느냐를 볼 것 같다.”(이경연, 21·여성·연수구)

“타워를 지어주겠다, 활성화해주겠다 그런 공약엔 영향받지 않는다. 이 단체, 저 단체 다니면서 듣기 좋은 말 해주는 게 과연 진정성 있겠나. 후보 개인이 얼마나 도덕적 의무를 다하며 살았느냐, 탈세 덜 했나, 국방의 의무를 다했나 이런 살아온 행적을 본다.”(김백규, 42·남성·연수구)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이 9월18일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서 국무총리 해임과 내각 총사퇴를 촉구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한겨레 김봉규 선임기자

“이래서…” 구체성 있게 정치 비판하는 무당층

지지 정당·후보를 변경하는 유권자(교차투표자), 선거 막판까지 망설이는 유권자(소극 지지자)는 규모와 특징을 규정짓기 어렵다는 이야기가 많다. 대체로 여성·젊은층·고학력 유권자(조성대, 한국정치학회보, ‘부동층에 관한 연구’, 2013년)란 분석이 있지만, 부동층의 규모, 인구통계학적 특성, 정치 정향에서의 특성, 선택을 결정하는 변수에 대한 추가 연구는 더 필요(유재성, 동아시아연구원 워킹페이퍼, ‘부동층과 이동 투표자의 특성과 투표 선택’, 2022년)한 상황이다. <한겨레21>이 만난 ‘무당층’ 유권자도 특성을 규정하긴 힘들지만 공통적으로 감지할 수 있는 게 있었다. 정치혐오감이다.

“샤이보수·샤이진보란 말이 있지 않나. 지금은 정치적 지향점이 있더라도 자기가 지지하는 정당이 정의롭고 지지할 만한 정당이라 말하기가 부끄러운 상황이다.”(김진배)

“어느 당을 보나 그 사람이 그 사람 같다. 어떤 사람이 와도 팔이 안으로 굽고 자기 식구 챙기고 서로 물어뜯기만 한다. 한때 민주당 지지자였고 정의당 쪽으로도 관심을 가졌는데, 이제는 정치에서 진보적인 사람이 없다는 생각이 들어 관심을 끊었다.”(김백규, 42·남성·연수구)

서울 중구 성동구을 지역구 골목(교차투표 비율이 가장 높은 약수동, 국민의힘·민주당 지지층 격차가 가장 적은 필동·청구동)에서 9월13일 만난 유권자들의 이야기도 비슷한 내용이 많았다.

“항상 ‘바꿔보자’ 생각해 투표했는데 바꿔봤자 그놈이 그놈이었다. 방송에 비리가 나오는 걸 보면 ‘이거 또 속았네’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정치에 회의적이 된다.”(엄대용, 67·남성·청구동)

“정치인들이 늘 선거 때면 여기 와서 ‘동네 시장을 활성화한다’고 하는데 그건 그냥 하는 말 같다.”(이아무개, 60대·남성·약수동)

“어차피 누가 집권하나 공약을 그대로 신뢰할 수 없는 건 마찬가지다. 범죄를 저지른 정치인들이 사과하지 않고 책임지지 않는 게 더 실망이 크다”(익명 요구, 40대·남성·필동)

유권자들은 혐오의 방향을 분명하게 이야기하고 있었다. 유권자들은 ‘싸움’의 정치에 환멸을, ‘비전보다 비판’을 말하는 정치에 회의를 느끼고 있었다.

“지난 대선 때 이재명 대표에게 투표했다. 그러나 지금은 지지하는 정당이 없다. 공약을 내세워서 ‘뭘 해내겠다’ ‘바꿔나가겠다’는 걸 우선시해야 하는데 ‘이런 문제가 있다’ ‘저런 문제가 있다’ 이렇게 싸우기만 하니 점점 관심이 없어진다. 민주당 당내 성범죄 등 문제 때문에도 지지하지 않게 됐다. 그렇다고 지금 대통령이 잘하고 있다는 생각도 안 든다.”(이경연, 21·여성·연수구)

“방사능 오염수 대처, 잼버리 사태 등 정부가 무능한 게 너무 많다. 이런 상황인데도 민주당 지지율이 이렇게 낮다면 대표가 물러나야 한다고 지인들이 얘기한다.”(김은경, 47·여성·아산)

“상대방 흠집 내기에만 집중하는 후보는 뽑고 싶지 않다. 유세 때 본인들 얘기를 좀 했으면 좋겠는데, 본인들 얘기를 안 하고 너무 남 얘기를 하는 것 같다. 남 얘기를 많이 하는 사람을 선호하지 않을 것 같다.”(류정서, 31·남성·연수구)

우려되는 건 정당 혐오뿐 아니라 정치인 개인 혐오도 커지는 상황이다. 김민하 정치평론가는 “보통은 인물론이라고 말할 때 ‘세력이 아닌 인물, 호남만 보지 말고 인물을 보자’ 이런 맥락으로 썼다. 그런데 최근의 인물론은 ‘지금 그 사람들은 믿을 만한 사람이 아니다’라는 맥락에서 출발한다. 지금의 인물론은 훨씬 불신의 성향이 강하다”고 말했다.

투표하는 무당층의 ‘이탈 충돌’ 양상

무당층에는 여러 결이 있다. 투표로 얻을 혜택이 없다고 생각해 정치에 아예 무관심한 ‘정치 저관여층’이 있는 반면 정치적 견해는 있지만 지지 정당은 없다고 말하는 ‘정치 고관여층’도 있다. 2024년 4월 총선에서 주목해야 할 유권자는 이들 ‘정치 고관여’ 무당층이다. <한겨레21>이 만난 유권자들은 대부분 몰라서 ‘부동’이 아니라 이유가 있는 무당층이었다. 그 이유에는 짙은 ‘혐오’의 색이 있다.

“보통 선거가 가까워오면 유권자들은 지지 결정을 한다. 선거가 가까워지는데도 중도·무당층이 줄어들지 않는다면 정당에 대한 불신감, 정치인에 대한 혐오감이 두터워지고 있다는 의미다.”(이준한 인천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무당층의 성격이 악화한 것 같다. 예전에는 선거가 다가오지 않아서, 정치뉴스를 안 보고 잘 몰라서 무당층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굉장히 구체성 있게 ‘꼴 보기 싫다’고 한다. 예를 들면 정부·여당이 이준석·나경원·안철수 등을 자기편이 아니라고 내친 점을 지적한다든지 민주당이 대선 이후 쇄신 없이 이재명 대표 얘기만 하는 걸 지적한다는 식이다.”(김민하 정치평론가)

정치 고관여 무당층은 양당 모두에서 이탈한 결과로 만들어졌다. ‘이탈 충돌’ 양상까지 벌어진다. 선거가 다가올수록 양당은 ‘보여주기식’ 외연 확장을 일부 보이겠지만, 이런 접근법으론 무당층을 장기간 붙잡기 힘들다. 국민의힘이 승리한 지난 대선 결과,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30%대의 낮은 지지율이 이를 방증한다.

지난 대선 결과는 2016년 촛불시위 이후 민주당으로 유입된 유권자 민주당에서 이탈한 결과였다. 2017년 대선에서 보수 지지층이 분열하고 민주당 우위의 새로운 진보 지지 연합이 등장한 덕에 민주당은 2020년 총선에선 180석이라는 유례없는 승리를 거뒀다. 탄핵 과정에서 이탈한 보수층 중 상당수가 민주당 지지층, 무당층으로 유입됐다.(정한울 한국리서치 전문위원, ‘5년 만의 정권 교체와 탄핵정치연합의 해체 요인 분석’, 2022년) 하지만 ‘부동산 가격 폭등’ ‘조국 사태’ 등을 거치면서 민주당 강성 지지층과 신규 유입된 지지층 사이에 간극이 벌어졌다.

국민의힘도 비슷한 상황이다. 대선에서 승리했음에도 진보 지지 연합에서 이탈한 유권자를 보수 지지 연합으로 붙잡지 못하고 있다. 윤 대통령의 최근 6개월간 직무 수행 평가(한국갤럽)를 보면 ‘잘못하고 있다’는 평가는 지속적으로 ‘54∼65%’가 나온 반면, ‘잘하고 있다’는 평가는 30% 초·중반대에 머물고 있다. 전통적 보수 지지층만이 ‘잘하고 있다’고 평가하는 셈이다. 부정평가의 이유를 보면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16%), 외교(12%), 경제/민생/물가(10%) 등의 순이었다.(9월2주차)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김행 여성가족부·신원식 국방부 장관 후보자가 2023년 9월13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서 브리핑에 참석하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나를 대변하는, 정착할 정치가 없다… 정치부랑자 된 유권자

양당은 정당활동·문자·전화 등을 통해 정치인에게 적극적으로 자기 의사를 표출하는 강성 지지층의 통제는 피부로 느낀다. 하지만 무당층의 존재는 잘 실감하지 못하고, 그들의 목소리를 들으려는 노력도 부족하다. 무당층은 자신들을 대변할 마이크가 없다고 느낀다. 이관후 건국대 상허교양대 교수(정치학 박사)는 “한쪽이 중도층 공략을 먼저 시작하면 다른 쪽도 위기감을 느낄 텐데, 여당에서 봤을 땐 야당도 안 그럴 것 같고 야당에서 보니까 여당도 그럴 것 같지 않고. 그러니까 자기 지지층 중심으로 계속해서 메시지를 낸다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단식 19일 만인 9월18일 병원으로 이송된 이후 극한 정치 갈등은 심화하고 있다. 병원 인근에선 윤석열 정부 내각 사퇴를 요구하는 유권자와 이재명 대표 수사를 촉구하는 유권자가 부딪쳤다. 정치 뉴스에선 거리로 나온 이들 강성 지지층이 주로 기사의 소재가 된다. 미디어, 정치권, 강성 지지층이 함께 극한 대립을 강화한다. 무당층은 소외된 느낌을 받는다. 이런 당파싸움에 피로감을 느끼는 건 유권자뿐만이 아니다.

“중앙당에서 하는 행동이 기초의원들에게 너무나 중요한데, 정치라는 이름 뒤에서 싸우는 모습만 보여주니 안타깝다. 우리가 하는 일이 싸우는 건가? 나도 질문하고 싶어진다.”(국민의힘 이형은 인천 연수구의원)

“사람들이 너 왜 정치하냐 물으면 ‘정치하면 생활을 바꿀 수 있어서’라고 답하는데 가끔 ‘이게 생활을 바꾸는 일인가’ 생각이 들어 조금 자괴감이 든다.”(민주당 윤혜영 연수구의원)

9월19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하이서울유스호스텔에서 열린 ‘새로운선택’ 창당 발기인대회에서 금태섭 전 의원이 내빈들과 함께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청년정의당 김창인 대표, 김종인 국민의힘 전 비상대책위원장, 금태섭 전 의원, \'한국의희망\' 양향자 공동대표, 정의당 \'세번째권력\' 조성주 공동대표. 연합뉴스

“안철수가 다시 해도 제3지대는 싫어”

양당이 자신을 대변하지 못한다고 느끼는 이들은 제3지대의 새 정당이 나오길 바랄까? 현장에서 만난 유권자들은 이미 한 번 겪은 ‘실패의 경험’ 때문에, 무당층 비율을 제3지대가 흡수하는 데 회의감을 느끼고 있었다.

“안철수 신당 때는 (유권자 관심에) 맞았다. 그런데 두 번째 제3지대부턴 혐오다. 당시엔 제3지대에 대한 기대가 있었지만, 이제는 없다. (소속 정당 내 정치적 입지가 좁아진 상황에서) 본인의 정치생명 연장을 위한 게 눈에 보일 땐, 말 그대로 혐오한다.”(김진배)

“안철수씨도 상당한 영향력이 있는 사람이었는데도 정치계에 발을 들이고 나서 자기 색을 드러내지 못했다. 제3당을 만든다고 해서 더 나아지리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나랑 가치관이 비슷한 인물이 제3지대에 등장하면 사표가 되더라도 뽑을 의향은 있다.”(오준석)

“어차피 나중에 합당할 거 같아서, 그런 분들을 유권자도 딱히 신뢰하지 않는다. 그래도 제3지대에 나오는 인물이 누구냐에 따라서 달라질 순 있다. 나는 엄마 유권자라서 예를 들면 교육, 환경에 관심 있는 인물인가를 본다.”(김은경)

정치권의 움직임은 점차 분주해지고 있다. 우선 양향자 의원이 추진하는 신당 ‘한국의희망’(최진석 서강대 철학과 명예교수가 상임대표)은 2023년 8월28일 중앙당 창당대회를 열고 공식 출범했다. 금태섭 전 의원이 추진하는 신당 ‘새로운선택’도 9월19일 창당발기인 대회를 열었다. 여기에는 김종인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 양향자 한국의희망 공동대표, 류호정 정의당 의원, 진중권 시사평론가 등이 참석했다.

금 전 의원은 국민의힘이나 민주당과의 합당 가능성에 대해 “절대 그렇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으나, 유권자는 의심의 시선을 거두지 못한다. 정치권이 강성 지지층 외연에 관심을 갖는 것 자체가 선거철에만 ‘반짝’ 있는 일이라고 생각해서다. 실제로 여당도 선거철이 다가오자 문재인 전 정부 인사, 조정훈 시대전환 의원 등을 영입(9월19일)하는 ‘보여주기식’ 외연 확장을 했다.

골목을 다녀와서

“무당층을 유인할 만한 역할을 정부·여당이나 야당이 일단 못하고 있다. 2024년 총선 투표율은 아마 역대 가장 낮지 않을까 하는 정치학자들의 예측이 나온다. 민주화 이후 최저 투표율이 우려되는 상황이다.”(이관후 건국대 상허교양대 교수)

<한겨레21>이 만난 무당층은 일관된 잣대로 정체성을 규정하기 힘들었다. 이들 유권자를 ‘무당층’이란 정체성으로 묶는 것 자체가 허구이며, 정치권이 공략하기도 복잡하다는 말도 있다. 정당·정치인 처지에선 콘크리트 지지층에 집중하는 것이 편한 선택일지 모른다. 그러나 지지하는 정당이 있든 없든, 투표에 회의를 느끼든 느끼지 않든 <한겨레21>이 만난 무당층은 자기 가치관이 ‘분명히 있다’고 말하고 있었다. 이들은 흔히들 연상하는 ‘줏대 없는 무당층’ 모습과 거리가 멀었고, 오히려 머릿속 이념이나 정당 이름에 얽매이지 않은 채 이성적 판단을 내리려 노력했다.

이들은 그간 한국 정치에 역동성을 불어넣었지만, 정치권에서 제대로 대접받지 못했다. 무당층의 다채로운 이야기에 귀를 기울일지 말지는 이제 극한 대립에 빠진 정치권이 결정할 몫이다.

손고운 기자 songon11@hani.co.kr·류석우 기자 raintin@hani.co.kr·신다은 기자 down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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