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1984>의 한 장면. Film school rejects 누리집 갈무리
권력집중만이 목적인 빅 브러더
〈1984〉의 빅 브러더는 권력집중만이 목적이다. 늘 전쟁 상태라 선전하는 일을 지배 수단으로 삼고, 사상 통제를 위해 역사를 뒤바꾸며 새로운 말(新語)을 만든다. 프랑수아 트뤼포의 영화 <화씨 451>에는 ‘방화수’가 등장해 책과 그림을 태우며 인류의 문화예술이 형성한 사람들의 사고를 모두 함께 불사른다. 심지어 장 뤼크 고다르의 영화 〈알파빌〉에서는 금지된 단어를 사용하면 사형에 처하기도 한다. <1984>는 알려져 있듯 사회주의 나라만을 염두에 두지 않는다. 에리히 프롬은 1961년판 〈1984〉 후기에서 “만약 독자가 〈1984〉를 야만적인 스탈린 시대를 묘사한 많은 작품 중 하나로 잘난 척 해석해버리고 이 작품이 우리에게도 의미가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다면, 그야말로 불행한 일이다”라고 말했다. 지금 야금야금 역사 바꾸기, 새로운 말 만들기가 벌어지는 듯해 아주 불쾌하다. 책꽂이에서 다시 〈1984〉를 꺼내든 까닭이다.
2023년 8월29일 윤석열 정부의 2024년 예산안 발표가 있었는데, 지역서점 활성화 예산과 ‘국민독서문화증진 지원’ 예산이 전액 삭감됐다. ‘국민독서문화증진 지원’ 예산은 예산 코드까지 폐지했다. 앞으로 아예 하지 않겠다는 선언이다. 문화체육관광부 예산 6조9796억원 가운데 이래저래 독서 관련 예산을 찾아보면 독서대전, 독서진흥유공자 포상 관련 대충 12억원이다. 2023년 114억원 가운데(이것도 부족하다) 10분의 1만 남았다. 책은 국민이 알아서 읽든지, 아무튼 독서 진흥 따위에는 신경 쓰지 않겠다는 것이다. 아직 국회라는 산을 넘어야 하지만, 정부 예산안만으로도 충분히 전체주의 냄새가 난다. 국민과 책 사이를 벌려놓으려는 것은 삶의 가치를 스스로 찾는 일, 자각하는 일, 성찰하는 일을 방해하려는 심사다. 이러다가 〈화씨 451〉의 결말처럼 책을 통째로 외워 후대에 전하는 일이 벌어지지 말라는 법도 없다.

1931년 5월 평양 대동강가 을밀대 지붕 위에서 평원고무공장 여성 노동자 강주룡이 임금 삭감에 항의하는 농성을 하고 있다. 한겨레 자료
전체주의를 분석하는 순간 공산주의자로
신어의 목적에는 영사(영국 사회주의)의 신봉자들에게 적절한 세계관과 정신적 습관을 표현할 수 있는 수단을 제공해주는 것뿐만 아니라, 다른 모든 형태의 사고방식을 불가능하게 만드는 것도 포함되었다. (…) 부차적인 의미 또한 최대한 제거했다. 예를 하나 들어보자. ‘자유롭다’라는 단어는 신어에 여전히 존재했다. 그러나 이 단어는 (…) ‘이 들판은 잡초에서 자유롭다’라는 문장에만 쓰일 수 있었다. 과거처럼 ‘정치적인 자유’나 ‘지적인 자유’라는 의미로는 쓰일 수 없다. 정치적 자유와 지적인 자유는 이제 개념의 형태로도 존재하지 않아서 어떤 말로도 지칭할 수 없기 때문이다. 분명히 이단적인 단어들을 금지시키는 것과는 별도로, 어휘를 줄이는 것이 그 자체로서 목적으로 간주되었다. 따라서 필수불가결하지 않은 단어는 하나도 살아남지 못했다. 신어는 사고의 폭을 넓히기 위해서가 아니라 좁히기 위해 고안된 언어다. - 조지 오웰, 〈1984〉, ‘신어(新語)의 원칙’
공산전체주의는 공산주의에 전체주의를 붙임으로써 전체주의를 공산주의가 아닌 체제에서는 사용하지 못하게 가로막고 있다. 우리 사회를 전체주의로 분석하면 그 순간 공산주의자가 된다. 두 어휘를 하나로 줄이면서 우리 ‘사고의 폭’은 극적으로 좁아지고, 윤석열 정부 지지자들에겐 ‘적절한 세계관’을 형성할 수 있게 해줬다. 오웰이 말한 신어의 목적에 잘 부합돼 보이는 탓에 더 끔찍하다.

독립운동가를 지우고 민주화·인권운동가를 지우고
여성들은 가부장제와 사회적・경제적 불평등으로 이중삼중의 차별을 당하면서도 불굴의 의지로 독립운동에 뛰어들었습니다. 평양 평원고무공장 여성 노동자였던 강주룡은 1931년 일제의 일방적인 임금 삭감에 반대해 높이 12m의 을밀대 지붕에 올라 농성하며 여성해방・노동해방을 외쳤습니다. 당시 조선의 남성 노동자 임금은 일본 노동자의 절반에도 못 미쳤고, 조선 여성 노동자는 그의 절반도 되지 않았습니다. 죽음을 각오한 저항으로 지사는 출감 두 달 만에 숨을 거두고 말았지만 2007년 건국훈장애국장을 받았습니다. (…) 정부는 지난 광복절 이후 1년간 여성독립운동가 이백두분을 찾아 광복의 역사에 당당하게 이름을 올렸습니다. (…) 정부는 여성과 남성, 역할을 떠나 어떤 차별도 없이 독립운동의 역사를 발굴해낼 것입니다. 묻혀진 독립운동사와 독립운동가의 완전한 발굴이야말로 또 하나의 광복의 완성이라고 믿습니다. - 문재인, ‘제73주년 광복절 및 정부수립 70주년 경축식’, 2018년 8월15일
기억만이 전체주의를 이길 수 있는 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