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에게 중요한 건 어쩌면 ‘꺾일 줄 아는 마음’
담장 위 걷는 듯한 식물 대표…민주당 낮은 지지율 기대 그만큼 없단 뜻
등록 : 2023-08-10 20:27 수정 : 2023-08-12 00:57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8월7일 국회 최고위원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강창광 한겨레 선임기자 chang@hani.co.kr
휴가 마치고 쓱 복귀한 만년 부장님 느낌이다. 아무도 나에게 무슨 일이 있는지 몰랐으면 하는 표정을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에게서 읽는다. 돌아오면 뭔 말이 있겠지, 했으나 난망이다. 당 공식 회의에서 민생을 염려하고 잼버리 대회 파행을 지탄한 정도가 다였다. 김은경 혁신위원장의 노인 비하 논란에 대해서도 공식 회의 뒤 기자들 앞에서 유감을 밝힌 게 고작이었다. 휴가지에서 뭔가 특출난 구상을 하고 돌아오지 못했다면, 최소한 잘 쉬다 온 기운이라도 내보여야 할 게 아닌가. 그런데 언행에서 별다른 의지도 힘도 느껴지지 않는다.
그러고 보니 여당 사람들은 점점 동물이, 야당 사람들은 점점 식물이 되어가는 것 같다. 각 진영의 ‘우두머리’를 닮은 꼴이랄까. 대통령실과 국민의힘 인사들은 뭐든 걸리면 사정없이 물어뜯으며 누군가에게 잘 보이기 위한 페로몬 대방출에 여념이 없다. 잼버리 파행마저 전 정권 탓을 하더니, 급기야 ‘반대한민국 카르텔’이 튀어나오고, 아이돌 그룹 공연을 연병장 집합 병사들 장기자랑 수준으로 여기는 망언마저 등장했다. 귀를 씻고 싶다.
반면 민주당 인사들은 도통 존재감이 없다. 정부·여당과 말싸움만 벌일 뿐이다. 당의 진로를 두고서도 몇몇 입찬 이들의 단발성 발언 말고는 조직적으로 뭔가 도모하는 기색이 없다. 10월 당대표 사퇴설이 슬쩍 간 보듯 나왔다가 사라진 게 전부이다. 혁신위는 뒷말만 남긴 채 ‘조기 종료’로 어정쩡하게 마무리됐다. 민주당 당원과 지지자들에게 동료 시민으로서 연민을 갖는다. 그 많은 무리수를 무릅쓰고 그렇게 편들어주고 기다려줬는데 고작 이런 모습이라니.
이재명 대표는 민주당을 계속 이끌어갈 수 있을까. 시간을 벌어주고 욕도 ‘흡수’해주던 혁신위도 끝났으니 이제 온전히 자기 실력으로 앞장서 돌파해야 한다. 그런데 비전은커녕 기세조차 안 느껴진다. 이게 다 사법 리스크 때문일까. 무도한 검찰 탓일까. 혹시 이재명의 그릇이 이것밖에 안 되는 건 아닐까.
성남시장과 경기도지사 때 시장님 지시, 지사님 말씀 받아적어가며 주변 모두가 ‘옹립’해주는 분위기에서는 거리낌 없이 힘과 권한을 행사했으리라. 당시 그가 보인 순발력과 재치는 ‘그 조건’ 안에서만 작동한 게 아니었을까. 비록 실적보다 홍보에 더 열을 낸다는 비판과 친근함으로 포장한 가벼움을 지적하는 소리도 많았지만, 그 기세로 대권 후보까지 올랐다. 이런 성정과 경험이 설득과 조율, 타협과 결단이 끊임없이 변주되는 의회 정치에 꼭 어울리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그는 이미 충분히 보여줬다.
정치는 실제 그게 무엇인지가 아니라 사람들이 그걸 무엇이라 여기는지로 결정 나는 세상이다. 무도하고 무능하기까지 한 정권이 아무리 죽을 쒀도 민주당 지지율이 오르지 않는 이유가 무엇이겠나. 대안이라 기대하는 사람이 그만큼 없다는 뜻이다. 물론 멀쩡한 사람도 그렇게 쑤시고 흔들어대면 얼이 빠지겠지. 그렇다고 당이 대표의 법률지원단도 아닌데 대표의 이전 행위에 대한 송사 때문에 당 전체가 셧다운 되다시피 한 상황을 감수해야 하나. 담장 위를 걷듯 제 한 몸 건사하기 힘든 식물 대표가 얼굴인 상황에서는 민주당 모두가 덩달아 불안하고 초조해 보인다.
자기 정당성과 가치를 스스로 증명하지 못한다면, 설사 그가 아무리 억울해도 당과 지지자들이 더는 해줄 게 없다. 자신을 위해서나 당을 위해서나 대표직 내려놓는 게 옳다. 지난 1년간 충분히 버티었다. 지금 이재명에게 중요한 건 ‘꺾일 줄 아는 마음’이다.
김소희 칼럼니스트*김소희의 정치의 품격: ‘격조 높은’ 정치·정치인 관찰 칼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