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과 검찰, 무능과 무능의 충돌
오죽 마음 둘 곳 없으면 김부겸 ‘동안설’과 한동훈 ‘따돌림설’이 나올까
등록 : 2023-03-02 20:42 수정 : 2023-03-03 09:25
2023년 2월27일 국회 본회의에서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체포동의안 표결을 기다리는 사이,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표결하러 걸어가고 있다. 한겨레 김경호 선임기자
“김부겸 나이 별로 안 많아!” 지난 대선 때 윤석열이 싫어도 너무 싫어 이재명 당선을 바랐던 한 친구는 김부겸 전 총리의 프로필을 검색해보고 안도했다. 검찰의 이재명 구속영장 청구서가 나온 주말 “어떻게 ‘내로남불’이 구속 사유가 되느냐”는 답답증을 안고 서울 서초동을 지났는데 마침 검찰 규탄 집회가 열리고 있었단다. 참가할 마음이 동했으나 “이재명 대표님이 고초를… 이 대표님은… 대표님께서…” 소리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고 한다. 왕년에 익히 들었던 ‘(전대협·한총련) 의장님’이 메아리치는 것 같아서다. 이재명 말고는 대안이 없다는 더불어민주당 일각의 주장에 친구는 김부겸도 구원투수가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급기야 “띠동갑이지만 나보다 젊어 보인다. 잘 꾸미면 천하람 형님 정도로 보일 것이다“라며 ‘김부겸 절대동안설’을 힘주어 말했다.
여기에 맞먹는 신박한 논리가 등장했으니, ‘한동훈 따돌림설’이다. 앞의 친구와는 반대로 이재명이 싫어도 너무 싫어 윤석열 당선을 바랐던 다른 친구가 들고나왔다. 그는 검찰이 1년 넘도록 그 야단법석을 떤 이재명 수사와 구속 사유가 아무리 봐도 초라하다며 “이재명을 싫어할 권리를 박탈당했다”고 무력감을 토로해온 터였다. 국가수사본부장에 임명됐다가 하루 만에 취소된 정순신 전 검사의 아들 학교폭력 사건을 접하고는 괴로운 나머지 ‘자기최면’에 가까운 주장을 펼쳤다. 사건이 터지고 처음 보도될 당시 정 전 검사(당시 인권보호관)와 같이 서울중앙지검에 근무했던 윤석열 당시 지검장과 한동훈 3차장검사가 몰랐을 리 없다는 얘기에 그는 “윤석열은 캐릭터상 몰랐을 수 있고, 한동훈은 술도 안 먹고 보스(윤석열)의 총애를 받으니 은근 미움받아 아무도 말 안 해줬을 것”이란다. 급기야 “내가 회사에서 그런 따돌림 당해봐서 잘 안다”고 우겼다.
딱한 내 친구들. 얼마나 심란하면 이렇게 ‘자기 실존’을 걸고 정치를 논할까. 나와 내 친구들이 유난히 ‘정치병’이 심해서는 아니다. 우리는 호시절 비슷한 견해를 가졌으나 저마다의 경험과 처지에 따라 차츰 정치적 사안을 보는 눈이 달라졌다. 큰 틀에서 바라는 바는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다. 저마다 ‘도저히 참을 수 없는 지점’이 다를 뿐이다.
그건 이재명의 석연치 않음일 수도 있고 윤석열의 거들먹거림일 수도 있다. 이재명의 비겁함이나 윤석열의 거짓말이기도 하다. 만능인 듯 으스댔으나 실제로는 무능한 검찰과, 유능하다고 믿었으나 큰일 앞에서는 무능한 야당 대표를 보면서 지지자들도 마음 둘 곳을 잃은 느낌이다. 둘의 싸움에 끝이 보이지 않으니 소수의 목소리가 더 그악스러워진다.
윤석열 당선을 바랐던 친구는 정권의 ‘수사집착증’과 ‘검찰 독식 인사’가 날로 심해지는 것을 보며 민주당이 밀어붙인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이 맞았던 것 같다고 한다. 더 확실하게 했어야 했나보다 했다. 이대로면 ‘퇴행 국가’가 된다고 했다. 특히 아들 학폭 징계에 부적절하게 관여한 정순신 전 검사 인사 검증 부실에는 “알고도 대수롭지 않게 여겼든 몰라서 구멍이 났든, 둘 다 ‘가드 불가’”라고 말했다. 이재명 쪽에 섰던 친구는, 민주당과 이 대표가 끝까지 성찰도 분발도 없이 “검찰 독재” 타령만 하며 서로를 ‘볼모’로 잡고 있다고 했다. 이재명이 살길은 대표직이든 불체포 권한이든 다 던지고 결백을 증명한 뒤 돌아오는 것이었는데 기회를 놓친 것 같단다. 결백하지 않아서인지 그릇이 그것밖에 안 돼서인지 모르겠단다. 두 친구가 엉겁결에 ‘정치적 크로스’를 이루었다.
김소희 칼럼니스트 *김소희의 정치의 품격: ‘격조 높은’ 정치·정치인 관찰 칼럼입니다. 격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