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원, ‘문재인 정부 수사’ 위해 포렌식 절차 줄였나
[감사원을 감사하라②]
국책연구기관의 선임연구위원들 컴퓨터 포렌식 등 이례적 감사,
감사방해죄 규정한 감사원법 제51조 ‘전가의 보도’처럼 휘둘러
등록 : 2022-10-21 17:15 수정 : 2022-10-26 01:26
최재해 감사원장이 2022년 10월6일 오전 감사원으로 출근하고 있다. 한겨레 김명진 기자
*[감사원을 감사하라] 문재인 정부 겨누는 감사원, 이번엔 ‘소득주도성장’ 표적감사 기사에서 이어집니다.https://h21.hani.co.kr/arti/politics/politics_general/52755.html이처럼 감사원이 ‘국가통계시스템 감사’를 진행하는 방식은 ‘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 감사’와 비슷하게 이례적이다. 감사원이 통계청 감사에서 디지털 포렌식을 한 것은 처음 있는 일이다.
10월14일 서훈 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 박지원 전 국가정보원장, 서욱 전 국방부 장관 등 20명을 검찰에 수사요청한다는 내용을 밝힌 감사원의 발표 방식도 매우 이례적이었다. 감사원은 서해 피살 사건에 특별조사국 인원 18명을 투입해 국방부·해양경찰청 등 9개 기관을 57일간 감사했다. 감사위원회의 의결을 거쳐야 하는 감사보고서를 내는 대신 실지(현장)감사가 끝나자마자 공개적으로 검찰 수사요청을 밝혔다. 검찰 수사요청 보도자료는 A4용지 18쪽에 걸쳐 감사 결과를 상세히 담았다.
감사원 내부 사정에 밝은 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해보면, 앞서 감사원 최고의사결정기구인 감사위원회 위원들이 10월12일 모였다. 전날 국회 국정감사장에서 서해 피살 사건 감사 내용을 중간감사 결과 형태로 공개하겠다고 밝힌 최재해 감사원장과 유병호 사무총장의 입장에 이들은 우려를 표했다. 국가 안보적으로 중요한 사안인 만큼 실무자 보고서를 검토 없이 그대로 발표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는 게 위원 다수 의견이었다. 보고서를 빨리 작성한 뒤 정상적으로 감사위원회 의결을 받아 공식발표를 해야 한다는 쪽으로 의견을 모았다.
그러나 최재해 원장과 유병호 사무총장은 이런 감사위원들의 분위기를 감지하고 중간감사 결과 발표 대신 검찰 수사요청을 공개적으로 밝히는 방식으로 바꿔 이를 강행했다. 감사원 사무규칙 제19조에 있는 “고발은 감사위원회 의결을 거쳐야 한다. 다만, 증거인멸이나 도피의 우려가 있다고 인정할 때에는 감사단장은 감사위원회 의결을 거치지 아니하고 수사기관에 수사를 요청할 수 있다”는 조항을 따랐다는 이유를 들었다. 검찰이 이미 수사 중인 사안이어서 증거인멸이 어렵고, 수사요청 대상자들의 도피 우려가 높지 않다는 점은 고려되지 않았다.
더불어민주당 윤석열정권정치탄압대책위원회 박범계 위원장과 소속 국회의원들이 2022년 9월26일 오전 감사원 앞에서 문재인 정부에 대한 표적감사 중단을 촉구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은 “(감사위) 의결도 되지 않은 사건에 대해 대대적으로 중간발표라는 것이 이뤄지는 것은 그간 감사원 운용 방식에 비춰 비상식적이고 위법하다”며 “감사원은 최고의결기구를 ‘패싱’하며 감사위 의결도 거치지 않은 내용을 언론에 흘리는 정치행위를 하지 말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영배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감사위원들이 중간발표를 하기에 부적절하다고 입장을 모았는데도 보도자료라는 핑계로 사실상 전체 내용을 담아서 발표했다. 이건 명백하게 (감사위원회 의결을 거쳐서 고발해야 한다는) 감사원법 위반”이라고 말했다.
감사원이 수사요청한 지 나흘 만인 10월18일, 관련한 수사를 진행하는 서울중앙지검 공공수사1부는 기다렸다는 듯이 직권남용 혐의 등으로 서욱 전 국방부 장관과 김홍회 전 해양경찰청장의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박지원 전 국정원장은 이를 ‘힘사찰’이라고 표현했다. 박 전 원장은 <한겨레21>과의 전화통화에서 “국민의‘힘’이 문제를 제기하면, 감‘사’원이 감사하고, 검‘찰’이 조사하는 순서다. 일체적으로 움직이고 있다”며 “감사원의 중립성이 실종된 거 아니냐”고 말했다. 감사원은 서해 피살 사건과 관련해 박 전 원장에게 보낸 출석답변요구서에 “출석답변 요구에 불응할 경우 감사원법 제51조의 (처벌) 규정에 해당할 수 있음을 알려드린다”고 못박았다.
유병호 사무총장 지휘한 ‘월성원전 감사’와 비슷
감사원의 이런 행태는 유병호 사무총장이 2020년 공공기관감사국장으로 있으면서 감사를 지휘했던 ‘월성원전 1호기 경제성 감사’ 과정과 유사하다. 당시 감사원은 감사 결과 발표 뒤 7천 쪽 분량의 수사참고자료를 검찰에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산업통상자원부 공무원들이 삭제한 자료도 포렌식으로 복구해 검찰로 이첩했다. 이 자료를 검찰이 활용해 2021년 백운규 전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채희봉 전 청와대 산업정책비서관 등을 직권남용 혐의 등으로 기소했다.
2022년 6월 유병호 국장은 사무총장이 된 뒤 바로 조직개편을 해 디지털감사지원관을 두는 등 포렌식 관련 인력을 보강했다. 7월에는 감사원의 ‘디지털 자료 수집 및 관리 규정’을 대폭 개정해 포렌식 실시 기준을 완화했다. 직무 수행과 관련한 디지털 자료만 선별해 추출한다는 규정과 수집된 디지털 자료를 감사 목적 외 용도로 이용하거나 디지털 자료에 포함된 개인정보나 비밀 등을 누설해선 안 된다는 규정을 삭제했다. 관리 규정은 A4용지 7쪽에서 2쪽으로 대폭 축소됐다.
그 뒤 감사원은 7월14일 바로 방송통신위원회에 ‘디지털 포렌식 실시 통지서’를 보냈다. 포렌식을 통해 방통위가 티브이(TV)조선 등 종합편성채널(종편) 재승인 심사 관련 점수를 조정한 정황을 발견해 검찰에 수사 참고자료로 넘겼다.
민주당은 감사원이 ‘문재인 정부 수사’ 사전 작업을 위해 포렌식 관련 규정을 개정한 것으로 의심한다. 박주민 민주당 의원은 법제사법위원회 국정감사에서 “감사원이 수집한 광범위한 포렌식 자료가 수사기관으로 제출된다면 수사기관은 영장 등 복잡한 절차를 생략하고도 해당 자료를 습득할 수 있게 돼 악용될 여지가 있다”고 지적했다. 검찰 등 수사기관은 포렌식을 하려면 반드시 법원에서 영장을 발부받아야 하지만, 감사원은 영장 없이도 퇴직 공무원 등을 무차별 감사하고 포렌식으로 자료를 추출해낼 수 있기 때문이다.
감사원 감사위원을 지낸 ㄱ씨는 “과거에는 감사원법 제50조, 51조 조항이 있어도 이걸로 문제 삼는 것을 굉장히 자제했다. 감사원 내부에서도 이 조항이 갖는 위험성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은 이것을 ‘전가의 보도’처럼 사용하는 모양”이라고 말했다. 감사원법 제50조에는 ‘감사 대상 기관 이외의 자에 대하여 자료를 제출하거나 출석하여 답변할 것을 요구할 수 있다’고, 제51조에는 ‘(감사를 거부하거나 방해하면)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돼 있다. ㄱ씨는 “이번 서해 피살 사건처럼 형사사건 수사가 동시에 진행될 경우, 검찰에서 피의자는 진술을 거부할 수 있고 참고인은 출석을 거부할 수 있다. 그런데 감사원은 조사에 응하지 않으면 ‘감사방해죄’로 처벌하겠다고 사실상 진술을 강요한다”고 지적했다.
감사원이 포렌식 등을 동원해 무차별적으로 제출받은 감사 자료는 최근 검찰 수사에 적극 활용되고 있다. 한 법조인은 유병호가 사무총장에 임명되기 전에 윤석열 정부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 들어간 사실을 주목해야 한다며 “인수위에서 자기들끼리 (전 정부를 수사할 때) 어디를 활용할 거냐 하는 논의가 있었을 것이다. (지금 여러 사건이) 착착 진행되는 것을 보면 ‘감사원을 이용해야겠다’고 처음부터 계획을 세웠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