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2021년 11월 전남 목포시 김대중 노벨평화상기념관을 방문해 김대중 전 대통령 흉상에 고개를 숙이고 있다. 연합뉴스

반대자를 껴안으라
“자기를 찍지 않은 사람들, 그들이 왜 자기를 그렇게 싫어하는지 돌아보지 않으면 그들의 대통령이 되기가 굉장히 어렵다. 자신을 지지하는 사람들만 보는 정치를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박원호 서울대 교수(정치외교학)의 조언이다. 문재인 대통령의 지지율이 ‘콘크리트 방어선’이라 믿었던 40%를 깨고 30%대로 추락한 시기는 추미애 당시 법무부 장관의 윤석열 검찰총장 직무배제 조처 등이 이뤄진 2020년 12월이다. ‘편가르기 정치’의 위험을 방증한다. 가장 가까운 반대자인 야당과의 관계 설정이 중요하다. 문 대통령은 2017년 5월10일 당선 뒤 자유한국당(현 국민의힘) 지도부를 만나 “남북관계, 안보 문제, 한-미 동맹 등 이런 부분은 한국당에서 조금 협력해준다면 잘 풀어나갈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한다. 말로만 하는 게 아니라 안보에 관한 중요한 사안들은 야당에도 늘 브리핑할 수 있도록 안보 관련 중요 정보를 공유하면서 지혜를 모으겠다”고 약속했지만 이는 지켜지지 않았다. 김형준 명지대 교수(정치학)는 “정보 공유는 야당에 대한 배려와 존중의 첫걸음이다. 공유하되 비밀 유지가 안 될 경우 야당에 책임을 물으면 되는 일이었다. 아무리 힘 있는 정권도 ‘독주’하면 역풍을 맞게 된다”며 “배려의 리더십을 보여달라”고 당부했다. 양극화가 극심한 한국 정치 상황에서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은 “반대자를 껴안는 통합의 리더십”이다. 문우진 아주대 교수(정치외교학)는 “갈등 조정 능력과 다른 의견을 수용하는 능력 면에서 김대중 전 대통령만 한 리더십을 국내에서 찾아보기 어렵다. 지금 필요한 건 그런 리더십”이라고 말했다. 이준한 인천대 교수(정치외교학)도 “가장 중요한 대통령의 자질은 김대중 전 대통령이나 김영삼 전 대통령처럼 반대자를 껴안고 만나고 이야기하는 소통 능력”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5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방한을 기점으로 남북관계, 미국과 러시아, 중국 관계 등 취임 직후부터 변화의 기류가 거셀 텐데 야당의 협조는 필수적이다”라고 말했다. 야당을 기용하라
172석 야당과의 협치는 쉽지 않다. 더불어민주당이 비토(거부)하면 대통령은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차기 총선까진 2년이 남았다. 일각에서 야당 의원들을 장관 등으로 기용하라고 조언하는 이유다. 김준석 동국대 교수(정치외교학)는 경쟁자를 기용한 에이브러햄 링컨 미국 대통령을 예로 들었다. 남북전쟁 막바지, 링컨은 노예해방이 전쟁의 주목적이라는 급진 공화당원과 연방의 복원을 위해서만 싸워야 한다는 보수 민주당원 사이에 끼어 있었다. 절체절명의 위기에 그는 당내 경쟁자들을 국무, 재무, 법무 장관에 과감하게 기용해 당내 화합을 이룬 것으로 알려졌다. 김준석 교수는 “당선자가 통합의 리더십을 보여주는 대통령으로서 내각에 자신과 척을 두었던 인물, 자신과 의견을 달리하던 (유능한) 경쟁자를 등용하는 과감성을 보여줄 수 있다면 사회 전반에 통합에 대한 긍정적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을 것”이라고 짚었다. 김형준 교수도 “한국적 현실에서 통합정부는 실제로 불가능하다”며 “의원 빼오기를 못하는 상황에서 통 큰 포용의 리더십을 발휘할 방법은 인선뿐이다”라고 강조했다. 윤 당선자가 2월 유세 중 “민주당에도 훌륭한 분이 많다. 민주당의 양심 있고 훌륭한 정치인들과 멋진 협치로 국민통합을 이루고 경제 번영을 만들어가겠다”고 말한 대목을 염두에 둔 것이다. 김 교수는 “인위적 정계 개편을 하긴 어려울 텐데 이런 탕평 인사를 할 수 있느냐가 협치의 시험대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왼쪽부터) 전 미국 대통령들인 조지 부시 가족과 버락 오바마 가족이 함께하고 있다. 전 미국 대통령인 프랭클린 루스벨트와 로널드 레이건, 전 독일 총리 앙겔라 메르켈. EPA 연합뉴스. 연합뉴스
느리고 신중하게 가라
코로나19 확산과 국제 정세, 고물가·고금리·고환율의 ‘신3고현상’ 등을 고려하면 새 정부는 출범 전부터 이미 위기 상황에 놓여 있다. 그러나 김윤철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는 “차기 정권은 역설적으로 ‘신속한 대응’보다 (느리지만 차분하고) ‘신중한 대응’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며 “독선·독단·독주를 금기시해야 한다”고 짚었다. 그러면서 집권 초 새 대통령의 주요 과제는 “경청”이라고 강조했다. “민주당이 지난 총선에서 케이(K)-방역에 힘입어 과반 의석을 훌쩍 넘기는 역대 최다 의석을 차지한 것도 그런 선상에서 이해해야 한다. 당시 K-방역 성과는 방역 주체를 비롯한 정부 대응의 신중한 접근과 위기감을 느낀 시민들의 자발적 동의(사회적 합의) 때문에 가능했다.” 의제를 재정비하라
선거 과정에서 제시했던 정책적 우선순위나 정책적 추진방안에 대한 동의, 재동의가 필요하다는 데도 전문가들의 의견이 모였다. 후보들의 도덕성 검증 등에 함몰된 탓에 미래 비전이나 사회적 의제를 제대로 논의하지 못한 선거인 만큼 대선 뒤에라도 정책과 이슈를 재정비해야 한다는 것이다. 박원호 교수는 “차별금지법 등 우리가 이번 대선에서 놓쳤던 이야기들이 있다. 특히 개인적으론 지방 문제가 심각하다고 본다. 청년 문제를 말하는데 진짜 심각한 건 지방의 청년 문제이고, 저출산 중에서도 심각한 건 지방의 저출산 문제다. 대선이 그런 이슈를 토론할 기회였는데 제대로 토론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김형준 교수도 “오미크론 확산에 따른 코로나19 대응체제를 두고 신방역체계를 어떻게 만들 건지가 당선자의 첫 과제”라며 “방역은 여야가 따로 없다”고 조언했다. 엄지원 기자 umkija@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