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합뉴스
법조계 “법원 결정은 납득 가능한 결론”
통상 징계 무효 사건에서 가장 중요한 건 절차적 정당성이다. 당사자 입장에서 징계는 불이익한 처분이기 때문에 징계 절차나 내용은 원칙적으로, 좁게 해석한다. 이 원칙에 비춰보면, 징계위원회가 의사 정족수(재적위원 7명의 과반수 4명)를 채우지 못한 채 기피신청을 의결하고, 윤 총장의 언행이 정치적 중립 의무를 위반했다고 정치권에선 해석할 수 있어도 이를 법적 효과가 있는 처분의 사유로 삼을 수 없다는 게 법원 판단이다. 법원 결정에 관해 법조계 이견은 많지 않다. 양홍석 변호사(전 참여연대 공익법센터 소장)는 “법리적으로 당연한 결정으로 보인다. ‘의심할 수 있다’ ‘해석할 수 있다’는 추측과 추정에 따라 징계하는 건 공무원 제도 자체를 뒤흔드는 것이다. 그런 법 운용으로는 법원 관문을 통과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서울 지역 법원의 한 판사도 “법조 윤리 위반 행위라 해도 모두 징계 사유가 되는 게 아니고, 징계 사유로 넘어왔더라도 이를 충분히 입증하지 못했다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이번 법원 결정은 윤 총장에 대한 징계 처분 효력을 일단 중지한다는 결정에 불과하다. 하지만 윤 총장의 임기(2021년 7월24일)가 6개월여밖에 남지 않은 상황이라 ‘징계를 취소해달라’는 행정소송(본안 소송)을 임기 내에 끝내기 어려운 탓에 재판부는 본안 소송에서 다퉈야 할 징계 사유까지 이례적으로 살펴봤다. 징계위원회 판단을 앞둔 상태에서 윤 총장에 대한 ‘직무 배제’의 효력을 중지하라는 12월1일 법원 결정과는 정치적 파급력이 다르다. 법적·정치적 의미가 큰 이번 법원 결정을 앞두고 윤 총장과 추 장관 쪽이 두 번의 심문기일(12월22일과 24일)에서 사활을 걸고 싸웠을 텐데, 본안 소송에서 또다시 다툰다 한들 추가 논리나 증거를 내세울 수 있을지, 그리하여 다른 결론을 이끌어낼 수 있을지 회의적이라는 의견이 나오는 이유다. 여권에서 제기되는 윤 총장 탄핵도 마찬가지다. 서울 서초동의 한 변호사는 “더불어민주당 일부 의원의 주장대로 윤 총장 탄핵을 시도한다 해도, (법원에서) 정직 2개월도 넘지 못했는데 (헌법재판소에서) 검찰총장직을 날리는 탄핵이 가능하겠냐”고 했다. “정치 문제의 사법화는 분열 심화”
추 장관은 11월24일 윤 총장에 대한 징계를 청구하며 ‘검찰 개혁’을 명분으로 삼았다. “제도와 법령만으로는 검찰 개혁이 이뤄질 수 없다는 사실도 절실히 다시 한번 깨닫게 됐다.” 하지만 검찰 개혁의 초점이 정책이 아니라 인물에 맞춰져 있다는 고백으로도 읽힌다. 당시는 실제로 ‘추미애 대 윤석열’이라는 인물 간 갈등이 정점으로 치닫고 있었다. 추 장관은 취임 뒤 두 차례의 수사지휘권, 채널A 사건 관련 감찰권, 인사권 등을 동원해 전방위로 윤 총장에게 사퇴 압력을 가했다. 그러나 윤 총장이 버티자 헌정 사상 처음으로 직무집행 정지와 징계 청구를 결정했다. ‘정치의 사법화’ 길을 선택한 것이다.정치의 사법화란 국가의 주요한 정책 결정이 정치 과정이 아니라, 사법 과정으로 이뤄지는 현상을 말한다. 직무집행 정지와 징계 청구라는 초강수에 윤 총장의 징계 불복 행정소송은 예상 가능했다. 그 수순대로 직무 정지에 이어 징계위원회에서 의결한 정직 2개월 처분까지 즉각 법정으로 갔다. 대통령의 인사 운용 문제인 ‘검찰총장 진퇴’의 정당성을 법원이 따질 상황으로 치달았다. 박명림 연세대 정치학 교수는 “검찰총장은 헌법에 의해 대통령이 정무적으로 임명한 사람이다. 입법부와 대통령이 대화와 타협으로 민주주의 영역에서 풀어야 할 문제를 법원으로 내쳤다. 더욱이 징계는 사법주의면서 관료주의적이어서 더 문제적”이라고 지적했다. 이철우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조국 전 장관 사건 초기 여권은 윤 총장을 적이라 상정했고 그 스탠스(관점)에서 벗어난 적이 없다. 정치력을 발휘해 진지하게 소통하려는 노력이 없었다. 직무정지와 징계를 통해 ‘법대로 하자’ 하니 ‘법대로 하자’ 할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결국 법원이 정국의 키를 쥐게 됐다”고 말했다. 정치 이슈를 넘겨받은 법원은 징계 처분의 적법 여부, 즉 ‘모 아니면 도’의 결론을 남길 수밖에 없다.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정치의 요체는 합의인 반면, 사법은 철저한 승자독식 구조로, 승자와 패자가 갈리고 패자는 내쳐지게 된다. 정치 문제가 사법화하면 사회 분열, 진영 논리가 더 심화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더구나 사법 불신이 켜켜이 누적된 상황에서, 법원이 내린 결론에 승복하지 못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여론조사 전문기관 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가 12월26일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법원 결정이 합당하다’는 응답이 53.7%로 많았지만, ‘부당하다’는 응답도 39.3%나 나왔다. 법원 판단이 나와도 추-윤 대립으로 인한 사회적 갈등은 끝나지 않았다는 뜻이다. 추 장관은 12월29일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징계위원회의 기피 의결이 의사정족수를 채우지 못했다는 법원 판단은 법적으로, 상식적으로 받아들이기 힘들다고 밝혔다. 징계 사유 놓고 구체적으로 논쟁해야
추 장관이 물러나면서 추-윤 갈등은 마무리되는 것일까. 다시, 법원 결정문을 들여다봐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김남근 변호사(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개혁입법추진특위 위원장)는 “인물 간 갈등 구도로 몰고 가니, 차분하게 비판하거나 분석할 여지가 사라졌다. 정치적으로 누가 승리했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징계위 절차적 흠결, 판사 사찰 문건, 측근에 대한 감찰 방해 등 징계 사유를 내용적으로 하나하나 파고들어서 논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사태의 ‘내용’을 살펴봐야만, 그나마 갈등을 생산적으로 소화할 수 있다는 얘기다. 법원은 결정문에서 기피 의결 과정에서의 절차적 흠결을 지적하면서, 동시에 검찰의 판사 분석 문건은 ‘매우’ 부적절하고, 감찰 방해 행위도 소명됐다고 판단했다. 무엇보다, 법무부 장관과 검찰총장의 전례 없는 갈등으로 형사사법 권력과 법무행정 권력 간 ‘원칙의 부재’가 드러났다. 천정배 당시 법무부 장관이 김종빈 검찰총장에게 수사지휘권을 발동한 2005년을 제외하면, 법무부 장관과 검찰총장의 관계를 어떻게 조율해야 하는지의 문제가 진지하게 논의 테이블에 올라온 적이 없다. 하태훈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검찰의 권한과 권력을 분산하려 한다면 그 권한을 어떻게 나누고 통제해야 하는지 그 원칙을 정비해야 한다. 이는 곧 출범하는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에도 적용되는 얘기”라고 지적했다. 고한솔 기자 sol@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