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부디, 해야 할 말과 일을 하시라
남은 임기 1년5개월, 입 닫은 문재인 대통령
등록 : 2020-12-13 00:43 수정 : 2020-12-13 09:35
여론조사기관에서 전화가 왔다. 찰나에 마음이 부대꼈다. 대통령이 잘하는지 못하는지 물으면 뭐라고 답해야 하나. 다행히 서울시민 대상 조사라 했다. 한 옥타브 높아진 목소리로 “저 경기도민인데요” 하고 전화를 끊었다. 휴.
나, 나름 민감한 유권자다. (소싯적 1997년 대선에서는 투표 전에 죽도록 고민했는데, 정작 누굴 찍었는지 도무지 기억나지 않는다. 너무 괴로운 시간을 보낸 터라 직후에 심리적으로 일종의 ‘선택적 소거’를 해버린 것 같다. 혹시 나와 비슷한 ‘정치병’을 앓는 분들께는 심심한 위로와 동지애를 표한다.) 그러니까 나는 문재인 대통령이 잘한다고 보지 않지만 그렇다고 잘못한다고 여기는 쪽으로 집계되기는 싫은, 참으로 어정쩡한 포지션인 것 같다. 그 이유를 스스로 모르지 않으니 ‘잘 모르겠다’에 묶이기도 싫고 말이다. 원래도 잘 안 만났지만 거리두기 핑계로 더 안 만나는 오랜 친구들에게 의견을 물었다. 한 친구가 “대통령이 좋은 사람인 건 맞는데…”라고 했다. 다른 친구가 근거를 대라고 했다. 침묵이 이어졌다. 그간 가장 비판적이던 내가 나섰다. “김정숙 여사의 꿀 떨어지는 시선을 여전히 받잖아. 다른 거 다 떠나 그럼 괜찮은 사람인 거지.” 또 다른 친구가 말했다. “정신 차려. 이순자도 전두환 사랑해.” 단톡 대화는 결국 “고구마 백 개의 답답함”으로 마무리됐다.
대통령이 답답하다. 일단, 지나치게 말을 아낀다. 올해 초 새해 기자회견이 국민과의 직접 소통으로는 마지막이었지 싶다. 국회 연설이나 취임 기념 연설 같은 일방적인 ‘의전’이 아니면, 국무회의나 수석보좌관회의에서 ‘옳고 좋은 말씀’만 두루뭉술하게 내놓는 게 사실상 전부다. 정치를 뻘밭으로 만든 추-윤 갈등에 대해서도 기이할 정도로 말을 아끼다 “혼란스러운 정국이 국민들께 걱정을 끼치고 있어 매우 죄송한 마음”이라고만 했다. 이 극렬한 사안의 성격과 진행 과정에 대한 의견과 계획은 없었다. 이걸 사과라고 봐야 할까. 윤석열 검찰총장에 대한 법무부 검사징계위원회를 앞두고 대통령이 법과 절차를 존중하기 때문이라는 해석도 있었으나, 궁색하다. 그럼 그렇다는 얘기라도 스스로 했어야지. 대통령이 모든 일의 해결사는 아니다. 하지만 영점(기준점)을 잡아야 하는 국정 최고 책임자이다.
청와대 밖 행보도 대체로 ‘낯내기용’ 말고는 기억이 없다. 방역 위험을 무릅쓰고 현장을 자주 찾으라는 소리가 아니다. 수능 고사장 사전점검 같은 ‘행차’를 굳이 할 필요가 있었을까. 수험생과 관리자들을 격려하는 뜻이겠지만, 국민이 진짜 보고 싶은 대통령 모습은 ‘입시전쟁’이라는 이 황폐하고도 끔찍한 ‘계급투쟁’에 대해 고심하고 극복하려는 노력이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 더 늦기 전에 과잉 학습과 서열 구도를 없앨 방법을 찾자고 해도 모자랄 판에 다정하게 고사장을 둘러보고 계시니 학부모의 한 명으로서 무릎이 풀썩 꺾이는 기분이었다. 대통령이 국정 홍보 모델은 아니지 않나. 코로나19가 최악의 확산세인 연말에도 아이들은 학교에 간다. 단지 시험을 보기 위해서다. 반 친구 이름은 몰라도 주기율표는 외워야 한다. 한 학기라도 평가를 건너뛰면 나라가 무너지기라도 하나. 시험 없는 세상은 꿈도 못 꾸나. 당국도 학교도 교사도 유연함과 합리성이라고는 눈곱만큼도 발휘하지 못하는 게 지금의 교육 제도이고 현장이다.
검찰 개혁은 대통령과 윤 총장의 대결로까지 치달았다. 피할 수 없다. 임명권자로서 ‘영점 관리’만 해도 되는 시점은 이미 지나버렸다. 혼자서 ‘하드 캐리’ 하라는 얘기가 아니다. 당·정·청의 최고지도자로서 로드맵을 제시하고 적극적으로 소통해 국민을 설득하라는 말이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가 출범한다고 모든 게 정리되지 않으리라는 건 우리 모두 알지 않는가.
부디 건투를 빈다. 당신은 져서는 안 된다. 지지해서가 아니다. 남은 임기 1년5개월은 결코 짧은 시간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겨서 할 일을 하시라.
김소희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