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에 1천마리도 남지 않은 새, 넓적부리도요를 만나다
등록 : 2022-09-26 00:59 수정 : 2022-09-27 17:40
앙증맞은 티스푼 모양의 부리를 가진 넓적부리도요(왼쪽)를 2022년 9월11일 오후 충남 서천 유부도 갯벌에서 만났다. 비슷한 색에 뾰족한 부리를 가진 새는 좀도요다. 넓적부리도요는 국제자연보존연맹(IUCN)의 ‘적색목록’에서 가장 등급이 높은 ‘위급’ 종으로 분류됐고, 우리나라에서도 멸종위기야생동식물 1급으로 지정됐다.
카메라 뷰파인더 너머로 티스푼처럼 생긴 부리가 선명하게 드러났다. 새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평생 한 번쯤 꼭 보고 싶다는 새, 넓적부리도요를 처음 만났다.
추석 연휴인 2022년 9월11일, 귀성·귀경으로 북적이는 고속도로를 210㎞가량 달린 뒤, 다시 현지 주민의 배를 빌려 타고 충남 서천군 유부도에 도착했다. 밀물이 들자 텅 빈 갯벌은 도요·물떼새 수십만 마리가 서서히 날아들며 장관을 이뤘다. 러시아에서 번식을 마친 뒤 월동지로 이동하는 넓적부리도요도 해마다 이 무리에 섞여 섬에서 잠시 쉬어가는 것으로 알려졌다.
연구자들이 2014년부터 6년 동안 조사한 결과를 2021년 도요·물떼새 연구학술지 <웨이더 스터디>(Wader Study)에 게재한 논문에 따르면, 넓적부리도요는 지구상에 471~922마리 정도 살아 있는 것으로 추정돼 심각한 멸종위기에 처했다. 기후변화에 따른 서식지 파괴와 중간 기착지인 서해안 갯벌 개발 탓에 ‘다음 세대에도 이 새를 볼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들 정도다.
수십만 마리의 도요·물떼새 무리에서 겨우 참새 크기의 넓적부리도요를 찾아내기는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덩치와 깃색이 비슷한 좀도요 무리에 섞이거나, 엄청난 개체가 한데 몰려다니는 민물도요 틈바구니에 끼여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들 무리를 따라 잠시도 가만있지 않고 수시로 날았다가 내려앉기를 반복한다. 밀물에 밀려 근처 갯벌에 내려앉아도 새들은 이리저리 오가며 먹이 찾기에 바쁘다.
매번 기대를 품고 갯벌에 나갔다가 실망만 했다. 주변의 눈 밝은 사람들이 먼저 넓적부리도요를 발견하고 연신 위치를 알려줘도 도무지 내 눈엔 들어오지 않았다. 먼저 발견한 이가 위치를 알려주는 사이 새들은 한꺼번에 후룩 날아올라 흩어지기가 일쑤다. 한번 흩어지면 방금 새를 발견했던 사람도 다시 찾아내기가 쉽지 않다. 물이 불어 한 뼘 크기로 줄어든 갯벌로 비교적 가까이 모여든 새를 관찰할 수 있는 시간도 아주 잠깐이다. 더 앉을 곳이 없을 만큼 갯벌에 물이 차오르거나, 사람들의 기척을 알아챈 새들은 모두 안전한 곳을 찾아 멀리 흩어지고 만다.
하지만 이번엔 달랐다. 수십 마리 좀도요 무리가 바로 코앞 모래 갯벌까지 다가와 한동안 날아가지 않았다. 탐조객들이 연신 셔터를 눌러대는 방향으로 망원렌즈를 돌려 살펴보니, 앙증맞은 부리를 가진 새가 눈에 들어왔다. 주변 좀도요와 혼동될 정도로 몸 윗면에 어두운 갈색을 가진 1년생 어린 넓적부리도요였다. 탐조 버킷 리스트 1번이 눈앞에서 이뤄지는 순간이었다.
민물도요와 왕눈물떼새, 큰왕눈물떼새 틈바구니에 넓적부리도요가 사진에 찍혀 있다. 사진을 찍을 때엔 몰랐지만, 번식깃이 일부 남아 있는 개체다. 독자 여러분도 ‘숨은그림찾기’를 하듯 이 많은 새 중 멋진 부리를 가진 주인공을 찾아보시라. 정답은 본문의 끝에 표시.
유부도 갯벌은 해마다 봄과 가을에 도요·물떼새 수십만 마리가 날아들어 장관을 이룬다.
탐조객들이 바다 건너편 유부도로 가는 배에 오르고 있다.
유부도(서천)=사진·글 김진수 선임기자 jsk@hani.co.kr*숨은그림찾기의 정답: 넓적부리도요는 붉은 바구니 아래 셋째 줄 가운데 서 있다. 목과 가슴에 적갈색 여름깃이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