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원에 기운 차리세요
천안시 동남구 큰시장길의 ‘기운차림’ 식당
등록 : 2021-11-26 19:51 수정 : 2021-11-27 12:35
한 끼에 1천원을 받고 식사를 제공하는 충남 천안시 동남구 큰시장길 ‘기운차림’ 식당에서 2021년 11월19일 어르신들이 점심을 들고 있다. 박계순 기운차림 천안지부 실장(앞줄 오른쪽)이 자리를 돌며 밥 위에 짜장소스를 부어주고 있다.
단돈 1천원으로 돼지불고기에 상추겉절이, 갓김치, 짜장덮밥, 열무된장국까지 잘 차린 점심 한 끼를 먹을 수 있는 식당이 있다. 식사하고 나설 때, 빵 한 봉지와 마스크까지 챙겨준다. 터무니없어 보이는 이 거래는 충남 천안시 동남구 큰시장길에 있는 ‘기운차림’이란 식당에서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점심시간마다 이뤄진다.
이곳을 즐겨 찾는 이는 주로 주변 지역에 사는 어르신들이다. 문을 여는 시간인 오전 11시30분보다 먼저 식당을 찾은 이들은 방역명부에 이름을 적고 줄지어 앉아 기다린다. 2010년 문을 연 이 식당은 2020년 5월 지금 자리로 옮겼다. 장소를 옮긴 뒤 단골이 조금 줄어 하루 평균 60~70명이 식사한다. ‘천원의 오찬’을 가능케 하는 것은 180명에 이르는 후원자다. 이들은 일시불로 후원하거나 매달 정액을 온라인 계좌로 보내준다. 음식을 만들어 배식하고, 설거지에 식재료 수급, 방역관리와 마스크 배포까지 품이 드는 일은 모두 봉사자들 몫이다. 봉사자 10명이 정기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기운차림봉사단은 이런 형태의 식당을 2009년 부산에서 열기 시작해 현재 서울 도봉점까지 17곳에서 운영하고 있다.
식당에 김치와 쌀 등 물품을 후원하는 이들도 있다. 천안 동남구에 이웃한 단국대 천안캠퍼스 사회봉사단과 총학생회는 2021년 11월19일 직접 담근 김장김치 20㎏들이 10상자와 쌀 10포대를 이곳에 전달했다. 이날 오전 9시부터 70여 명의 학생과 교직원이 800포기의 절임배추에 소를 넣어 이 식당과 장애인종합복지관, 사랑의집, 제일요양원 등으로 실어날랐다. 학교 누리집에서 ‘사랑의 김장’ 참가모집 공고를 보고 참여한 김의진(미생물학과 3년)씨는 “태어나서 처음 김치를 담가본다. 이 김치를 먹는 분들이 힘을 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식사를 마치고 설거지대에 식판을 반납하고 나서는 이현순(80) 할머니께 이 식당을 즐겨 찾는 이유를 물었다. “몇 해 전 아파서 음식을 할 수 없어 처음 이 식당에 왔지. 한데 먹다보니 입맛이 ‘잡혀서’ 다른 곳에선 먹을 수가 없어.” 입맛이 잡힌 게 무슨 뜻이냐 되물으니 할머니는 “입에 맞아서 길들었다”며 수줍게 웃으신다.
기운차림 식당이 문을 열기 전 이곳을 찾은 어르신들이 방역명부를 적은 뒤 기다리고 있다.
식당 문을 열기에 앞서 봉사자들이 돼지불고기를 볶는 등 식사 준비를 하고 있다.
식사를 먼저 끝내고 자리를 일어선 어르신에게 자원봉사자가 빵과 마스크를 건네고 있다.
식사를 마친 이현순 할머니(맨 앞)가 식판을 설거지대에 갖다놓고 있다. 요일별로 참여하는 자원봉사자들이 설거지를 한다.
김장을 마친 손승훈 단국대 천안캠퍼스 총학생회장(맨 오른쪽)과 학생, 교직원들이 기운차림 식당 창고로 김치상자를 옮기고 있다.
단국대 천안캠퍼스 학생과 교직원들이 11월19일 충남 천안시 동남구 단대로 학생회관 로비에서 이웃에게 나눠줄 김장김치에 소를 넣고 있다.
천안=사진·글 이정우 선임기자 woo@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