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헹이 떠난 비닐하우스에 남은 동료들
경기도 포천 채소농장의 열악한 숙소에서 한파를 견디는 이주노동자들
등록 : 2021-02-01 21:49 수정 : 2021-02-03 09:25
스물다섯 살의 네팔 출신 여성 이주노동자가 1월17일 경기도 포천의 한 채소농장 비닐하우스 안에 조립식 패널로 지은 숙소에서 전기히터 앞에 쪼그려 앉아 있다. 그는 영하의 추위에 비닐하우스 밖에 있는 간이화장실에 가는 일이 너무 힘들다고 했다.
사람들이 다니는 길 옆에 나무판자 몇 개 걸쳐놓은 고무통. 그 주변을 엉성하게 둘러싼 검은 차양막. 2021년 1월17일 경기도 포천의 한 채소농장에 있는 이주노동자 숙소의 화장실 모습이다. 20대 여성 노동자도 이 화장실을 쓴다. 여기 농장주는 비닐하우스 안에 조립식 패널로 지은 숙소와 이런 화장실을 이주노동자에게 제공한 대가로 매달 15만원을 받는다. 고용노동부가 마련한 ‘외국인 근로자 숙식정보 제공 및 비용징수 관련 업무지침’에 따른 것이다.
이 지역의 기온이 영하 18도까지 떨어져 한파 경보가 내려진 2020년 12월20일, 이웃한 비닐하우스 숙소에서 캄보디아 출신 서른 살 여성 이주노동자 누온 속헹이 숨진 채 발견됐다. 이 기사가 보도된 뒤 이주노동자의 열악한 숙소는 잠시 세간의 주목을 받았지만, 달라진 건 없다. 포천이주노동자센터 대표인 김달성 평안교회 목사는 “비닐하우스 숙소는 바닥이 지나치게 얇아 단열이 안 되고 웃풍이 세다. 난방시설이라곤 전기장판이나 전기히터가 전부”라고 실상을 전했다. 김 목사는 “조립식 패널이라 화재에 약한데, 화재감지기나 소화기는 찾아보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베트남에서 온 꾸엔(가명)은 두 아이의 아빠다. 취업비자로 2년 전 들어온 그는 포천의 다른 채소농장 비닐하우스에서 일한다. 밀폐된 비닐하우스 안에서 농약을 치고 열무나 쑥갓 따위를 수확한다. 두 캄보디아 여성 노동자와 함께 50여 개 비닐하우스를 맡아 농사짓는다. 그는 요즘 아침 7시30분부터 오후 5시30분까지 일한다. 겨울이 아닌 때는 아침 6시부터 오후 6시까지 일한다. 대다수 채소농장 노동자가 그렇듯, 그의 한 해 노동시간은 3천 시간이 넘는다. 꾸엔은 일터를 옮기고 싶다. 하지만 농장주가 동의서를 써주지 않는다. 고용허가제에 따라 이직을 원하는 이주노동자는 직전 고용주로부터 계약 해지 확인서를 받아야 한다.
채소농장 비닐하우스 숙소 방문 앞 고무대야에 받아놓은 물이 꽁꽁 얼었다. 이주노동자들은 이곳에서 매일 씻고 빨래한다.
네팔 출신 이주노동자들이 포천의 채소농장에서 일하고 있다.
포천 채소농장 숙소 안 냉장고 모습. 농장주는 식사를 제공하지 않는다. 과일과 먹다 남은 빵은 며칠 전 이주노동자 인권운동단체에서 준 것이다.
채소농장 비닐하우스 밖 화장실. 고무통 위에 걸친 나뭇조각이 발판이다.
경기도 고양의 이주노동자 숙소에 붙은 안내문. 노동자가 지켜야 할 사항을 타이어로 번역해놓았다.
타이 출신 노동자들이 일요일인 1월24일 점심을 먹은 뒤 가족과 화상통화를 하고 있다.
고양·포천=사진·글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