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등급제 부양의무제 폐지 공동행동’ 회원들이 지난 7월11일 서울 명동성당 앞 거리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의 꽃동네 방문에 반대하는 퍼포먼스를 벌였다. 비마이너 제공
나는 대신에 이번 프란치스코 교황의 방한 일정을 짠 한국천주교주교회의에 묻고 싶다. ‘가난한 자를 위한 교회’를 강조하는 베르고글리오(현 프란치스코 교황의 본명)와 아시시의 성인 프란치스코의 이름이 꽃동네 같은 거대 장애인 ‘수용’시설과 어울린다고 생각하는가? 또한 당신들의 신앙 속에서 장애인은 어떤 존재인지, 성서의 입장에서 답해주길 바란다. 비가톨릭 신자로서 주제넘는 줄 알지만, 나는 베르고글리오와 프란치스코가 추구한 것이 ‘가난한 자를 위한 교회’였다면, 꽃동네 설립자 오웅진 신부가 추구한 것은 ‘가난을 먹고사는 교회’라고 말하고 싶다. 당신들의 신앙 속에 장애인은 어떤 존재인가? 아시시의 성인 프란치스코는 “자신의 재산을 가난한 사람들과 나누지 않는 것은 결국 그들에게서 재산을 훔친 셈이 되는 것이다. 우리가 가진 재산은 내 것이 아니라 그들의 것이다”라고 말하며 가난한 삶을 자처했고, 가난한 자와 함께 살았다.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 교구장으로 있을 때 베르고글리오 추기경 역시, 마약·인신매매 등으로 악명 높은 빈민촌을 대동하는 수행원 한 명 없이 수시로 방문해 그들의 말을 경청하고 복음을 전하는 데 게을리하지 않았다고 한다. 분명한 건 두 ‘프란치스코’는 가난한 자들 ‘곁으로’ 나아가 복음을 전하고, 그들이 자기 삶의 현장에서 인간답게 살도록 하는 데 자신의 신앙을 바쳤다는 것이다. 반면 오웅진 신부의 꽃동네는 가난한 자들 덕분에 부자가 되었다. 더 정확히 말하면, 장애인 같은 사회적 약자를 오갈 데 없이 가난하게 만들어 시설로 내모는 이 사회의 구조 덕분에 부자가 되었다. 한국은 1980년대부터 장애인과 부랑자를 ‘사회악’으로 낙인찍고 노동능력이 있는 이들은 삼청교육대로, 노동능력이 없는 ‘심신장애자’는 “종류별로 분리하여 각기 전문 재활시설에 수용”(보건사회부, <부랑인시설생활지도원반>, 1989년)하는 정책을 폈다. 이 때문에 국가의 장애인 복지 예산은 장애인이 지역사회에서 시민적 삶을 누리도록 하는 것이 아니라 거대 수용시설을 키우는 데 쓰였다. 덕분에 꽃동네는 가난한 이들 ‘곁으로’ 나아가 그들과 함께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이 쌓아올린 성채에 수천 명의 오갈 데 없는 이들을 끌어들여 한 해 예산만 380억원을 지원받는 거대 ‘시설 재벌’로 성장할 수 있었다. 항상 어린아이들을 만나길 좋아하는 교황은 꽃동네에서도 장애아동의 손을 잡고 그들에게 입을 맞춰주었다. 그런데 프란치스코 교황과 이 나라 가톨릭 사제들은 혹시 이런 의문을 품어본 적이 있는가? 저 아이들은 자기 부모와 함께 살며 집 근처에 있는 학교에 다니지 않고 왜 저곳에서 살아야 할까? 이 나라의 ‘장애인 등에 대한 특수교육법’은 분명히 장애아동도 지역사회에서 살며 학교에 다닐 권리가 있다고 명시하고 있는데, 저 아이들을 산골짜기 시설에 살도록 한 것은 대체 누구의 의사에 따른 것인가? 혹시 한국 가톨릭교회에 장애인이란 존재는 온전한 인간 존엄을 실현해야 하는 존재가 아니라 그저 당신들 신앙의 숭고함과 자비로움을 하느님께 증명하기 위해 바치는 제물에 불과한 것 아니냐고 묻는다면 지나치게 경망스러운 질문일까? 교황의 방문을 돈벌이로 이용하는 하지만 나의 이런 경망스러운 의문은 점차 확신으로 변해간다. 교황이 로마로 떠나자마자 교황이 꽃동네에서 걸었던 길과 머무른 방이 성지화돼서 관광상품으로 개발된다고 한다. 한국에 도착하자마자 “물질주의의 유혹에 맞서라”고 호소했던 교황을 돈벌이의 도구로 쓰겠다는 발상도 참으로 도발적이고 창의적이다. 이들에게 한낱 장애인을 돈벌이 도구로만 보지 말라고 하는 게 얼마나 아둔한 요구였는지 새삼 한탄스러운 감정을 느끼게 할 뿐이다. 하금철 장애인언론 <비마이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