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계인이 매달 두세 번 비빔밥을 먹는 날을 꿈꾸는 CJ 푸드빌 한식셰프들이 미국·중국·영국 등 6개국 14개 매장에서 선보이는 비비고 메뉴를 보여주고 있다.김명진
<별그대> 열풍 타고 ‘치맥’으로 중국 입성 새로운 매장을 오픈하고도 파견 한식셰프에겐 남은 미션이 있다. 현지 요리사에게 한식 요리법을 전수하는 일이다. 이때 ‘표준화’와 ‘규격화’가 필수다. 요리를 잘 만드는 사람이나 그렇지 못한 사람이나 똑같은 맛을 내야 메뉴가 장수할 수 있기 때문이다. 비비고 메뉴는 한식에 익숙지 않은 현지 요리사가 만들어야 한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CJ제일제당의 햇반, 각종 양념장 제품 제조 노하우를 바탕으로 비비고는 비빔밥의 핵심인 밥과 소스를 표준화했다. 다만 밥은 외국인의 입맛에 맞게 곡물 함유량을 변화시켰다. 종류도 백미밥·현미밥·흑미밥·찰보리밥 4가지로 선보인다. 비빔밥 소스는 선택해 먹을 수 있도록 단맛을 더한 고추장과 참깨, 쌈장, 레몬간장 등 4종을 개발했다. 그렇다고 탄탄대로만 달린 것은 아니다. 미국과 중국, 영국에 처음 진출했을 때의 일이다. 비비고는 미국에선 샐러드형 비빔밥이, 중국에선 돌솥비빔밥이 인기가 좋을 것으로 예상했다. 그래서 관련 음식 재료와 그릇을 넉넉히 준비해 비비고 매장을 열었다. 하지만 결과는 뜻밖이었다. 중국인은 기름지지 않고 신선한 샐러드형 비빔밥에, 미국인은 직접 요리하는 기쁨을 맛볼 수 있는 돌솥비빔밥에 매료됐다. 맵지 않은 레몬간장을 영국인이 선호할 것이라고 여겼지만 이 또한 보기 좋게 빗나갔다. 고추장을 선택한 고객이 압도적(80%)으로 많았다. 삼계탕도 비슷했다. 유럽인이 국물을 좋아하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지만 틀렸다. 김병필 외식연구소장은 “아시아 나라는 한국을 아니까 퓨전 음식을 좋아하지만 미국 쪽은 잘 모르니까 전통적인 음식을 원하더라”고 설명했다. 여전히 세계인에게 한식은 낯설지만 변화의 조짐이 꿈틀거린다. 영국 런던 시내 중심부에 자리한 비비고 소호점은 지난해 10월 세계적인 레스토랑 평가서 ‘미슐랭가이드(런던편)’에 이름을 올렸다. 스타 셰프가 없는, 기업형 레스토랑이 이 평가서에 등재된 것은 처음 있는 일이다. 270m² 규모(좌석 94석)의 소호점은 고객이 가득하고 매장 입구에는 대기자가 줄을 선다. 하루 평균 250명이 찾는데 80%가 영국인이다. 김치를 나이프로 썰거나, 라면에 와인을 마시는 ‘낯선 풍경’이 자연스럽게 펼쳐진다. 양은냄비에 담아내는 라면에는 ‘한국인이 1년에 3억 개 이상 소비하는 1등 간식’이라는 설명이 붙어 있다. 소호점에서 인기 있는 ‘강남 통닭’ 메뉴는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 열풍을 타고 지난 3월 중국 비비고 매장에 입성했다. 메뉴명은 ‘한국 강남에서 온 치맥 세트’다. 드라마에서 여주인공 천송이(전지현)는 치맥(치킨과 맥주를 합쳐서 부르는 말)을 즐긴다. 비비고 쪽은 “한국 대중매체의 인기로 한식에 대한 외국인의 선호도가 높아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속이 꽉 찬 만두’ 우리의 전략식품 기업형 레스토랑의 성공이 한국 식당을 운영하는 동포들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권우중 셰프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현재 비비고는 미국·중국·영국 등 국외 6개국에서 14개 매장을 운영하는데 현지인이 주로 찾는다. 한국인이 주로 찾는 한국 식당과는 고객층이 완전히 다르다. 오히려 비비고에서 한식을 경험한 현지인들이 한국 식당의 새로운 고객층이 될 수 있다.” 권우중 셰프는 이탈리아 ICIF(Italian Culinary Institute for Foreigners)에서 한식을 대표하는 오너 셰프로 일했고 일본 도쿄 롯폰기의 한식 레스토랑 ‘오미’, 뉴욕 한식 레스토랑 ‘조디스 프렌즈’(Jodie’s Friends) 책임셰프를 거쳤다. 비비고의 포부는 담대하다. CJ(주) 이관훈 대표는 지난해 8월 미국 로스앤젤레스(LA) 하이엇호텔에서 ‘CJ그룹 식품 글로벌 비전’을 발표하며 이렇게 말했다. “미국의 맥도널드처럼 비비고가 한식과 한국 문화의 세계화에 앞장서겠다.” 구체적인 숫자도 내놓았다. “2020년까지 식품 부문 국외 매출을 국내 매출(7조원)보다 많은 8조원까지 늘릴 것이다.” 7년 내에 국외 매출을 14배 확대한다는 얘기다. 전략식품으로는 만두를 꼽았다. 비비고 만두는 지난해 미국에서만 800억원어치가 팔렸다. 국내 만두 판매 금액보다 많은 매출이다. 불고기·김치·잡채 등을 넣어 중국 만두와 차별화한 게 성공 요인이다. 속이 비칠 정도로 얇은 만두피를 내세워 ‘속이 꽉 찼다’는 호평을 얻었다. 지난해 12월 CJ는 LA 인근 지역에 연간 2만t의 만두를 생산할 수 있는 공장을 세웠다. 이 사장은 “전세계인이 매달 2~3편의 한국 영화를 보고 매달 두세 번 비빔밥을 먹고, 매주 한국 드라마를 보고 매일 케이팝을 들으며 일상에서 한류를 즐기도록 하는 게 꿈”이라고 말했다. 꿈은 계속된다. 정은주 기자 eju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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