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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현지 문화 더하고 ‘K-푸드’ 비비고

한식 브랜드 ‘비비고’ 앞세워 세계 속 ‘식문화 한류’ 꿈꾸는 CJ푸드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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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4-04-25 17:53 수정 : 2014-04-28 1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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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계인이 매달 두세 번 비빔밥을 먹는 날을 꿈꾸는 CJ 푸드빌 한식셰프들이 미국·중국·영국 등 6개국 14개 매장에서 선보이는 비비고 메뉴를 보여주고 있다.김명진
한입 크기의 스테이크가 돌솥비빔밥에서 지글지글 소리를 내며 구워진다. 윤기가 흐르는 흰밥 위에 알록달록한 나물이 놓이고 그 주변을 스테이크 예닐곱 개가 부채꼴 모양으로 감싸고 있다. 고추장을 넣어 밥과 나물을 비비는 사이 붉은빛이 선명했던 스테이크는 ‘미디엄’(medium)으로 변한다. CJ푸드빌이 2012년 4월 미국에서 선보인 ‘스테이크비빔밥’이다. 조용재 한식셰프는 “미국인이 즐겨 먹는 스테이크를 돌솥비빔밥과 접목했는데 출시 직후 미국 비비고 매장에서 매출 상위권에 들었고 꾸준히 인기를 얻고 있다”고 말했다.

한식 브랜드인 비비고를 앞세워 ‘식문화 한류화’를 꿈꾸는 CJ푸드빌은 현지화로 세계인의 입맛을 사로잡는 꿈을 꾸고 있다. 각 나라의 식문화, 음식 재료에 맞춘 한식 메뉴를 개발함으로써 말이다. 예를 들어 미국의 비빔밥에는 브로콜리가 나물처럼 쓰인다. 현지인에게 친숙한 브로콜리를 활용해 한식의 문턱을 낮추겠다는 전략이다. 권우중 한식총괄셰프는 “한식의 특징을 유지하면서도 현지 음식 재료를 충분히 활용해야 한다. 시금치·숙주나물은 공통으로 넣고 다른 것은 현지인의 입맛에 맞추는 식이다. 고추장·간장은 우리나라 것을 쓰지만 식초는 적합한 것을 현지에서 찾아낸다”고 말했다.

지역주민 공청회 열고 사전조사

국외를 공략할 한식 메뉴를 개발할 때는 음식 재료뿐만 아니라 현지 문화도 고려한다. 지난해 진출한 인도네시아에서는 이슬람 정월인 라마단을 고려한 비비고 메뉴를 선보였다. 라마단 기간에는 이슬람인들이 해가 떠 있을 때는 식사를 하지 않고 해가 진 뒤 많은 양의 음식을 먹는 풍습이 있는데, 해 진 뒤 풍성한 식사를 할 수 있도록 맞춤형 메뉴를 개발했다. 또 라마단 직후 보름간 인도네시아인들이 휴가를 떠나 음식 재료 구입처도 문을 닫는다는 것을 미리 알고 대비했다. 휴무를 원하는 비비고 매장의 현지 직원을 대체할 인력도 확보했다. 홍연경 CJ푸드빌 홍보팀 직원은 “비비고는 단순히 한식을 판매하는 데 그치지 않고 현지 소비자의 생활과 문화 속에 한식이 스며들도록 노력한다”고 설명했다.

특정 국가에 진출할 때 비비고는 한식셰프 등을 현지로 파견해 사전조사 과정을 거친다. 현지 문화와 음식 재료를 점검해 어떤 한식 메뉴를 선보일지 결정하는 과정이다. CJ푸드빌 외식연구소가 개발한 한식 메뉴 100여 가지 가운데 현지 특성에 맞는 20~40가지를 파견 셰프가 선택한다. 메뉴를 결정하고도 매장을 오픈하는 데는 짧게는 몇 개월, 길게는 몇 년이 더 걸린다. 크고 작은 장벽 탓이다. 2010년 미국에 비비고가 처음 진출할 때는 매장 밖에 테라스를 설치하는 데 주민 동의를 얻어야 했다. 지역주민 공청회를 두 차례 진행하고 찬반 투표를 거치고 나서야 매장을 개장할 수 있었다.

하지만 현지 음식문화를 사전에 꼼꼼히 연구하면 그만큼 성공할 확률이 높아진다. 싱가포르에서 그랬다. 닭고기를 즐겨 먹고 얼큰하고 뜨끈한 음식을 좋아하는 싱가포르인의 성향을 파악한 셰프가 ‘닭개장’을 제안했고 결국 뜨거운 반응을 끌었다. 영국에서 선보인 순대도 마찬가지다. 돼지·소·양·오리·염소 등의 피로 만든 소시지인 ‘블랙푸딩’과 닮아 순대에 거부감을 느끼지 않을 것으로 판단했다. 비비고 매장에선 순대를 브런치 메뉴로 즐기는 영국인을 이제 만날 수 있다.


<별그대> 열풍 타고 ‘치맥’으로 중국 입성

새로운 매장을 오픈하고도 파견 한식셰프에겐 남은 미션이 있다. 현지 요리사에게 한식 요리법을 전수하는 일이다. 이때 ‘표준화’와 ‘규격화’가 필수다. 요리를 잘 만드는 사람이나 그렇지 못한 사람이나 똑같은 맛을 내야 메뉴가 장수할 수 있기 때문이다. 비비고 메뉴는 한식에 익숙지 않은 현지 요리사가 만들어야 한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CJ제일제당의 햇반, 각종 양념장 제품 제조 노하우를 바탕으로 비비고는 비빔밥의 핵심인 밥과 소스를 표준화했다. 다만 밥은 외국인의 입맛에 맞게 곡물 함유량을 변화시켰다. 종류도 백미밥·현미밥·흑미밥·찰보리밥 4가지로 선보인다. 비빔밥 소스는 선택해 먹을 수 있도록 단맛을 더한 고추장과 참깨, 쌈장, 레몬간장 등 4종을 개발했다.

그렇다고 탄탄대로만 달린 것은 아니다. 미국과 중국, 영국에 처음 진출했을 때의 일이다. 비비고는 미국에선 샐러드형 비빔밥이, 중국에선 돌솥비빔밥이 인기가 좋을 것으로 예상했다. 그래서 관련 음식 재료와 그릇을 넉넉히 준비해 비비고 매장을 열었다. 하지만 결과는 뜻밖이었다. 중국인은 기름지지 않고 신선한 샐러드형 비빔밥에, 미국인은 직접 요리하는 기쁨을 맛볼 수 있는 돌솥비빔밥에 매료됐다. 맵지 않은 레몬간장을 영국인이 선호할 것이라고 여겼지만 이 또한 보기 좋게 빗나갔다. 고추장을 선택한 고객이 압도적(80%)으로 많았다. 삼계탕도 비슷했다. 유럽인이 국물을 좋아하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지만 틀렸다. 김병필 외식연구소장은 “아시아 나라는 한국을 아니까 퓨전 음식을 좋아하지만 미국 쪽은 잘 모르니까 전통적인 음식을 원하더라”고 설명했다.

여전히 세계인에게 한식은 낯설지만 변화의 조짐이 꿈틀거린다. 영국 런던 시내 중심부에 자리한 비비고 소호점은 지난해 10월 세계적인 레스토랑 평가서 ‘미슐랭가이드(런던편)’에 이름을 올렸다. 스타 셰프가 없는, 기업형 레스토랑이 이 평가서에 등재된 것은 처음 있는 일이다. 270m² 규모(좌석 94석)의 소호점은 고객이 가득하고 매장 입구에는 대기자가 줄을 선다. 하루 평균 250명이 찾는데 80%가 영국인이다. 김치를 나이프로 썰거나, 라면에 와인을 마시는 ‘낯선 풍경’이 자연스럽게 펼쳐진다. 양은냄비에 담아내는 라면에는 ‘한국인이 1년에 3억 개 이상 소비하는 1등 간식’이라는 설명이 붙어 있다.

소호점에서 인기 있는 ‘강남 통닭’ 메뉴는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 열풍을 타고 지난 3월 중국 비비고 매장에 입성했다. 메뉴명은 ‘한국 강남에서 온 치맥 세트’다. 드라마에서 여주인공 천송이(전지현)는 치맥(치킨과 맥주를 합쳐서 부르는 말)을 즐긴다. 비비고 쪽은 “한국 대중매체의 인기로 한식에 대한 외국인의 선호도가 높아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속이 꽉 찬 만두’ 우리의 전략식품

기업형 레스토랑의 성공이 한국 식당을 운영하는 동포들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권우중 셰프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현재 비비고는 미국·중국·영국 등 국외 6개국에서 14개 매장을 운영하는데 현지인이 주로 찾는다. 한국인이 주로 찾는 한국 식당과는 고객층이 완전히 다르다. 오히려 비비고에서 한식을 경험한 현지인들이 한국 식당의 새로운 고객층이 될 수 있다.” 권우중 셰프는 이탈리아 ICIF(Italian Culinary Institute for Foreigners)에서 한식을 대표하는 오너 셰프로 일했고 일본 도쿄 롯폰기의 한식 레스토랑 ‘오미’, 뉴욕 한식 레스토랑 ‘조디스 프렌즈’(Jodie’s Friends) 책임셰프를 거쳤다.

비비고의 포부는 담대하다. CJ(주) 이관훈 대표는 지난해 8월 미국 로스앤젤레스(LA) 하이엇호텔에서 ‘CJ그룹 식품 글로벌 비전’을 발표하며 이렇게 말했다. “미국의 맥도널드처럼 비비고가 한식과 한국 문화의 세계화에 앞장서겠다.” 구체적인 숫자도 내놓았다. “2020년까지 식품 부문 국외 매출을 국내 매출(7조원)보다 많은 8조원까지 늘릴 것이다.” 7년 내에 국외 매출을 14배 확대한다는 얘기다.

전략식품으로는 만두를 꼽았다. 비비고 만두는 지난해 미국에서만 800억원어치가 팔렸다. 국내 만두 판매 금액보다 많은 매출이다. 불고기·김치·잡채 등을 넣어 중국 만두와 차별화한 게 성공 요인이다. 속이 비칠 정도로 얇은 만두피를 내세워 ‘속이 꽉 찼다’는 호평을 얻었다. 지난해 12월 CJ는 LA 인근 지역에 연간 2만t의 만두를 생산할 수 있는 공장을 세웠다. 이 사장은 “전세계인이 매달 2~3편의 한국 영화를 보고 매달 두세 번 비빔밥을 먹고, 매주 한국 드라마를 보고 매일 케이팝을 들으며 일상에서 한류를 즐기도록 하는 게 꿈”이라고 말했다. 꿈은 계속된다.

정은주 기자 eju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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