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세계불꽃축제를 비롯한 각종 불꽃축제를 기획하는 (주)한화의 불꽃프로모션팀 직원들이 사무실이 불꽃축제 사진 앞에서 ‘웃음꽃’을 피웠다. 맨 오른쪽 윤두연 매니저는 국내에 몇 안 되는 ‘불꽃디자이너’다.탁기형
소리 파형에 맞춰 모양 입력 지난 11월19일 서울 중구 장교동 한화 본사에서 불꽃축제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일부 맛봤다. ‘불꽃이야 폭죽처럼 그냥 쏘면 되는 거 아닌가?’ 무지함은 한순간에 무너졌다. 불꽃축제는 종합예술이다. 밤하늘이 무대고, 불꽃은 배우였다. 어떤 색깔의, 어떤 형태의 배우를 쓸 것인지, 어떤 배경음악을 깔 것인지를 정하는 사람은 연출가였다. 그 연출가는 ‘불꽃디자이너’ ‘연화사’라고 불린다. 국내에 이런 일을 하는 사람은 손에 꼽을 만큼 적다. 5년째 불꽃디자인을 해온 윤두연 매니저는 대학에서 산업디자인을 전공한 미술가다. 그렇다고 불꽃을 ‘그리는’ 건 아니다. 모든 과정은 치밀하고도 세세한 컴퓨터 입력 작업으로 진행된다. 우선 공연의 밑그림을 짜는 첫 번째 단계는, 배경음악 선정이다. “충남 대천해수욕장에서 열리는 그린그루브페스티벌엔 젊은 관객이 많다. 그래서 유행하는 클럽 음악의 빠른 비트에 맞춰 아기자기한 불꽃으로 꾸몄다. 서울세계불꽃축제에선 <서울의 달> 등 서울을 주제로 한 음악을 많이 쓰는 편이다. 올해 포항불꽃축제에선 영화 <007 스카이폴>의 OST를 쓰고 싶었는데, 캐나다팀이 같은 음악을 선정해서 바꿨다. 불꽃디자이너들이 선호하는 비트의 음악이 있다.” 윤두연 매니저는 설명과 함께, 컴퓨터에 깔린 불꽃놀이용 소프트웨어 프로그램을 열어 보여줬다. 이 프로그램에 배경음악을 입력하면, 소리의 파형이 그래프로 표시된다. 여기에 맞춰, 어떤 불꽃을 쏠 것인지를 결정한다. 불꽃의 종류는 다양하다. 둥근 모란꽃, 꽃잎이 사방으로 흩어지는 국화, 나이아가라 폭포, 곰돌이와 고양이 얼굴, 하트 모양. 각각에 따라 ‘느낌’이 달라진다. 발사포 위치에 따라서도 종류가 나뉜다. 지상이나 강·바다에 띄운 바지선에서 쏘아올려 50~60m 높이에서 아기자기하게 터지는 ‘장치연화’와, 80m 이상의 높은 하늘에서 시원하게 터지는 ‘타상연화’가 있다. 윤 매니저는 초 단위로 어떤 불꽃을 넣을지를 하나하나 기호로 입력했다. 그 기호들은 이를테면 ‘공연 시작 뒤 1분28초10프레임에는 노란 국화 모양의 불꽃을 100m 높이에서 10발 연달아 쏘라’는 명령이다. [%%IMAGE2%%]하늘 위에서 꽃이 얼마나 크게, 어떤 형태로 만개하는지는 ‘연화’에 달려 있다. 연화는 화약과 각종 원료들을 공처럼 만든 것이다. 종이를 몇 장 겹쳐서 동그랗게 싼 연화 안에는 검은 화약을 목화씨나 왕겨, 수수 등과 섞은 구슬 모양의 ‘별’이 100~1천 개씩 들어간다. 이 별이 어떤 방향으로 터지느냐에 따라 불꽃 모양이 달라진다. 불꽃의 색을 결정하는 것은, 검은 화약 속에 어떤 금속물질을 섞어 반죽하느냐다. 리튬은 빨강, 나트륨은 노랑으로 표현되는 식이다. 또 숯가루를 섞으면 불꽃이 꼬리를 끌며 올라가고, 알루미늄가루 등을 첨가하면 ‘천둥’과 같은 강력한 폭발음을 더할 수 있다. 연화의 지름이 커질수록 하늘에서 터지는 불꽃의 크기도 커진다. 이제껏 쏘아올린 최대 크기의 불꽃은 축구장 5개를 이어붙인 500m까지 퍼졌다. 연화 제조 작업은 일일이 사람 손길이 미쳐야 하는데다 위험해서, 대부분 중국 사업장에 주문생산하거나 유럽·일본산을 수입해 쓴다. 윤두연 매니저는 “화약 냄새를 바꾸는 연화 개발도 시도하고 있다. 커피·꽃 냄새 등을 아로마로 넣어서 계속 테스트 중”이라고 귀띔했다. 커피향 불꽃, 전통 문양 불꽃… 보기엔 아름다워도, 언제 터질지 모르는 화약을 다뤄야 하는 이들은 늘 초긴장 상태다. 축제 당일엔 화약 전문 기술자들이 총동원된다. 관객과의 안전거리를 생각해, 물 위에 배를 띄우고 땅 위에는 컨테이너를 설치한다. 이곳엔 수백 대의 컴퓨터와 연화를 넣어 쏘는 발사포가 놓인다. 불꽃축제의 가장 큰 어려움은 ‘리허설이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손무열 상무는 행사를 앞두고 악몽을 많이 꾼다고 했다. “100만 명이 모여 있는데 컴퓨터에 에러가 나서 불꽃을 못 쏘는 거다. 실제로 컴퓨터 에러는 종종 발생한다. 그래서 예비 발사포와 교체 컴퓨터 설치는 필수다.” 요즘 한화는 불꽃축제를 한 단계 끌어올리는 여러 가지 실험을 진행 중이다. 문범석 매니저는 “한국콘텐츠진흥원과 함께 몇 가지 연구·개발을 하고 있다. 태극·연꽃 등 우리나라 전통 문양의 불꽃, 지금까지 국내에 없던 발사 시스템과 프로그램 제작 소프트웨어, 불꽃쇼 3D 시뮬레이터 등을 개발 중”이라고 밝혔다. 불꽃은 완성되는 순간, 소멸하기에 황홀하다. 이제 올해의 축제는 끝났다. 하지만 황홀했던 찰나는 영원으로 기억되고, 기억은 오래 지속된다. ‘왕궁의 불꽃놀이’가 아니라 ‘모두의 축제’라서 다행이다. 황예랑 기자 yrcomm@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