접시 오른쪽부터 에그마스터로 만든 달걀 핫바, 달걀봉, 널브러진 달걀두부(왼쪽). 달걀두부봉이 에그마스터 위로 솟아오르는 모습.
깜짝 놀랄 만큼 음란한 ‘달걀봉’ 달걀은 흰자, 노른자, 흰자, 노른자가 줄을 서 있다. 어쨌든 반숙이다. 괜찮다. 결론은 ‘달걀을 길게 삶아보았습니다’. 성인의 하루 달걀 권장량은 1개. 더 이상은 먹어도 흡수되지 않는다. 이미 2개다. 계속해서 달걀말이로 돌입했다. ② 달걀봉: 양파·당근·오이고추를 다지고 달걀을 하나 풀고, 소금도 풀어(먹게 만들어보자) 섞은 뒤 파란불이 들어온 에그마스터에 넣었다. 5분이 채 안 돼 속에서 쑤욱쑥 올라오기 시작했다. 조금 올라온 걸 꼬챙이로 잡아빼야지 하는 생각으로 다가갔는데 달걀말이는 쑤욱쑤욱 계속 올라온다. 깜짝 놀랄 만큼 음란하다. 18cm 몽땅 거의 다 올라와서는 그 긴 것이 꼬부라져 넘어가려 한다. 빼내서 올려놓고 보니 맛볼 생각은 나지 않고 자신감이 붙는다. 이 음란한 것에도 잘 어울리기도 하려니와 ‘달걀봉’이라 이름 붙인다. ③ 두부채소봉: 두부를 꺼내서 아까 다져놓은 채소들과 섞는다. 재료를 넣고 음식물을 다지는 봉으로 몇 번 눌러준 뒤 기다린다. 파란불·빨간불이 왔다갔다 하지만 7분이 지나도 소식이 없다. 두부에 끈기가 없으니 봉이 만들어질 리 없다, 라는 생각이 떠오르지 않는 봉을 기다리는 새 떠오른다. 이미 해가 진 지는 오래고 음란한 것도 보았고 이성이 마비된 것 같다. 통을 뒤집어 엎어놓는다. 두부·채소들은 넣었던 그대로 흩어져 쏟아져내린다. 밀가루를 좀 넣고 달걀을 1개 까넣고는 그걸 섞어서 다시 도전한다. 좀더 바삭하게 하려면 다 된 것을 다시 집어넣어서 두 번 구우라고 해설서에 나와 있다. 다 된 것을 집어넣으려니 밀어내는 힘이 장난이 아니다. 안 안기려는 고양이랑 싸우는 것 같다. 이 힘은 어디서 오는 거지? 공기의 열에 의한 팽창력? 아, ‘무엇이든’에 물어볼 수도 없고. 두 번을 굽자 노란 것이 누래지면서 좀더 먹음직스러워 보인다. 소시지를 넣는다든지, 치즈를 넣는다든지 하는 응용을 하고 싶지만, 아까 말했다시피 이미 밤이 늦었다. 시식에 나선다. 광고에선 “담백하고 쫄깃쫄깃하다”고 했다. 첫 번째로 만든 달걀은 퍽퍽하다. 달걀프라이를 했으면 좋았을걸. 집에는 마침 물이 없다. 달걀봉과 두부채소봉은 프라이팬에서 만든 달걀말이보다 특별히 쫄깃쫄깃한 식감이 느껴지진 않는다. 간이 잘 맞느냐가 중요하다. 싱겁다. 이것도 요리 실력이 있어야 한다. 에그마스터 두고 달걀프라이 할걸 에그마스터는 지난 4월 미국 시카고 가전박람회에 나온 ‘롤리 에그마스터’가 시초다. 110V로 만들어져 한국에선 변압기와 함께 판매됐다. 정식 수입한 회사에서 220V로 제품을 개발하고 특허 등록을 신청한 사이, 비슷한 제품이 쏟아져나왔다. 온·오프 장치가 없어서 사용할 때마다 전선을 꽂아야 하는 불편함도 똑같이 물려받았다. TV에서 광고하고 내가 구입한 상품은 이 유사품 중 하나다. 누가 에그마스터는 ‘미국이 쏟아내는 게으른 사람들을 위한 이상한 조리기구 중의 하나’라고 평해놓았다. 에그마스터는, 달걀을 삶기 좋게 만들어진 국자, 전기로 달걀 삶는 포트, 삶은 달걀을 자르는 칼 등 달걀만을 위한 도구들 중 하나다. 근데 이게 다 있다고 하더라도 프라이팬으로 달걀프라이를 할 것 같다. 설거지하기 편하다는데, 채소를 써느라 두부와 뭉쳐 달걀과 섞느라 내놓은 조리도구들을 닦지 않은 에그마스터 옆에 두고 출근했다. 세상에 습관을 바꾸는 도구는 없다. 글·사진 구둘래 기자 anyon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