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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홍시] 시리디시린 기다림의 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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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4-01-08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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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마을 ‘따배이감’이 곶감으로 홍시로 익어가기까지, 오! 그 기다림의 향이여

어느 해인가, 다리를 다쳐서 거동이 불편할 때였으니 대여섯해 전이지 싶다. 벗들을 따라 산행에 나섰다가 다리 성한 벗들은 산 위로 가고 나 혼자 산 아래의 차 속에서 기다리게 되었다. 그때 차에서 빤히 바라다보이는 언덕바지에 감나무 한 그루가 홍시를 주렁주렁 매달고 서 있는 것이었다. 목발을 짚고 언덕까지 올라간 나는 힘겹게 가지를 휘어 홍시를 땄다. 차로 돌아오면서 그 감 가운데 하나를 입에 넣었는데 문득 목이 메어오는 것이었다. 차고 달고 향긋한 맛 때문만은 아니었다. 이렇게 되기까지는 몇 가지 연유가 있다.

내가 태어나서 자란 곳은 곶감으로 유명한 경상북도 상주다. 상주에서도 곶감이 많이 나는 곳은 가을 시제를 지내러 가본, 집안의 선산이 있는 내서면인데 그곳에서는 과수나무 하면 감나무였다. 곶감을 만드는 감은 ‘따배이감’이 대표적이었는데 ‘따배이’는 똬리의 사투리다. 이 감은 생김새가 똬리처럼, 소똥처럼 넓적하고 떫은맛이 강했다. 떫은맛을 내는 타닌이 몸에 좋다는 걸 알았건 몰랐건, 그 감은 곶감이나 홍시가 되기 전에는 아무리 배고픈 아이라도 그냥 먹기는 어려웠다.

내서면 면소재지에서 동남쪽으로 30여리, 읍내에서 서남쪽으로 10리가량 떨어져 있는 우리 동네에도 감은 많았다. 5, 6월에 감꽃이 피면 아침 식전부터 감밭으로 달려가 감꽃을 주워먹었다. 남은 감꽃은 실에 꿰어 목에다 걸고 하나씩 빼먹으며 집으로 돌아왔다. 한여름 불볕에 감의 알이 굵어지면 떨어진 땡감을 냇가 얕은 곳 모래에 파묻었다. 사나흘 뒤에 꺼내보면 신기하게도 떫은맛이 가셔서 먹을 만했다.

‘따배이감’은 가을에 다 익어도 곧바로 먹을 수는 없다. 여전히 떫기 때문이다. 소금물이 든 항아리에 감을 담그고 뜨뜻한 아랫목에 이불을 덮어씌워 놔두면 하루이틀 뒤에는 떫은맛이 가셔서 먹을 만했고 이런 감이 소풍이나 운동회에 오는 아이들 목에 실로 꿰어져 나오기도 했다. 벌레 먹어 홍시가 된 감이 떨어지기도 하지만 운반성, 저장성이 떨어져서 감나무 아래를 지나가던 아이들의 횡재에 지나지 않았다.

추수가 끝나고 감나무 잎이 떨어지면 감나무는 붉은 감만 매달게 된다. 이때 감을 따서 껍질을 깎아 햇볕에 널어 말린다. 며칠 지나면 감은 겉이 꾸덕꾸덕해지면서 속이 물러지고 부드러워져서 일단 먹을 수는 있게 된다. 그런 감의 꼭지를 철사나 실 등속으로 줄줄이 매어 처마에 매달면 겨울이 오고 겨울에 얼었다 풀렸다 하면서 곶감 전체에 눈처럼 분이 곱게 내린다. 단것이 모자란 아이들은 감을 널어놓은 지붕 위를 도둑고양이처럼 오르락내리락하고 까치발에 높이뛰기를 해가며 처마의 감을 노리게 마련이었다. 어찌어찌 곶감을 만들어 팔아서 자식 입에 들어갈 비린 고등어 한손이라도 사려는 어른들은 그런 제 자식 등짝을 후려패는 게 일이었다. 그 대신 부산물인 감껍질은 먹어도 그냥 두었다. 상품성도 환금성도 없으니까. 그런데 ‘따배이감’으로 한겨울에 먹을 홍시를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감을 딴다. 방 윗목에 있는 옷장 서랍을 하나 비워서 바닥에 왕겨를 깔고 감을 늘어놓는다. 옷장 서랍이 세개일 경우는 방바닥에서 두 번째가 적당하다. 너무 바닥에 가까이 있으면 겨울이 오기 전에 방바닥의 온기로 익어버리고 너무 높은 곳에 두면 채 익지 않는 수가 있다.

젊어서 청상이 되어 자식도 없이 혼자 사시는 집안 어른이 계셨다. 설날 새벽, 여럿이 어울려 동네를 돌며 세배를 드리는데 그 댁은 서열로 보아 세 번째였다. 혼자 사시는 분이라 열명이 넘는 아이들에게 세뱃돈을 주기도 만만찮았으려니와 요즘처럼 세뱃돈을 주는 일이 드물었다. 그 어른은 세배가 끝나면 옷장 서랍에 넣어두었던 홍시를 ‘개봉’해서 정갈한 접시에 하나둘씩 나눠주셨다. 더 이상 얇을 수 없는 껍질이되 온전히 모양을 갖추고 있는, 꼭 알맞게 익은 홍시였다. 아, 그 시리게 달디단 맛이라니. 오, 그 기다림과 은일(隱逸)의 향이라니.

감이 흔해지고 일손은 귀해져서 산골짜기에 한두 그루 서 있는 ‘따배이감’ 따위는 따지도 않는 시절이 되었는지 산천 곳곳에 버려진 감들이 눈 속에 매달린다. 새하얀 눈 속을 다리 다친 멧돼지처럼 돌아다니다가 꽃을 피운 듯, 등불을 켜둔 듯한 감나무를 보았다. 그 홍시의 황홀한 맛을 보았다.

성석제 |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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