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산 뒤 찾곤 했던 허름한 ‘쌍할머니집’… 소주병처럼 버티고 계셨던 할아버지들
약 15년 전, 서울 최남단 동네의 낡은 아파트에 세들어 살 때였다. 그땐 일요일이면 도시락을 싸들고 식구들과 근처 산에 올라갔다 내려오는 게 낙이었다. 도시락은 산에서 좀 움직이다 보면 진작 소화되어버리고 오후 서너시쯤 산에서 내려오다 보면 허기까지는 몰라도 출출한 느낌은 갖게 마련이었다. 그렇다고 아이들처럼 과자를 먹을 수도 없는 노릇이고 길에서 음식을 사먹는 건 극도로 싫어하는 터에 길가에 흔해 빠진 떡볶이니 순대 같은 주전부리를 사먹을 생각은 전혀 없었다.
그렇다면 뭘 먹을까. 정답은 국수였다. 국수라면 금방 조리되어 나오고 양이든 가격이든 부담스럽지 않게 먹을 수 있다. 가까운 데서 국수를 찾으려면 시장 안의 간이식당으로 들어가야 했다. 한창 산에서 맑은 공기와 양양한 햇빛을 만끽하다가 어두컴컴한 시장 안으로 들어가려니 어쩐지 내키지 않는 게 사실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눈에 띈 집이 있었다.
큰길가에 있었지만 포장마차 같은 간이시설이 아닌 엄연한 식당이었다. 간판이 있었는지 없었는지 확실하지 않은데- 있었다 해도 글자가 다 떨어져나갈 정도로 낡아서 옥호를 알아보기가 어려웠을 것이다- 나는 그 집을 ‘쌍할머니집’이라고 불렀다. 식당에 두 할머니가 ‘근무’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언제나 두 할머니 중 한 할머니는 손자인지 손녀인지 몰라도 꽤나 자주 울어대는 녀석을 등에 업고 있었다. 손님이 많아 한 할머니가 ‘전업’으로 주방에서 근무하는 동안 한 할머니는 아이를 업고 ‘홀’- 홀이라고 해야 ‘테이블’ 네개에 그 네배쯤 되는 개수의 의자가 들어 있는 좁아터진 공간이다- 안을 행주와 쟁반을 들고 오가며 ‘서비스’를 하는 ‘시스템’이었다. 메뉴는 두 가지였는데 하나는 냉면, 또 하나는 삶은 닭고기였다.
냉면은 비빔냉면 단 한 가지였다. 그런데 자세히 보면 비빔냉면인지 물냉면인지 구별하기가 쉽지 않았다. 메밀국수를 삶아 건져내고 그릇에 담은 뒤에 양념과 무채, 달걀 반쪽을 얹어 내는 것까지는 여느 비빔냉면과 비슷하다. 냉면의 맨 위쪽에 닭벼슬처럼 자리잡은 것은 바로 할머니가 직접 손으로 쭉쭉 찢어 얹은 닭고기다. 그런데 미리 바닥에 붓는 육수의 양이 꽤 많다. 면이 반쯤 잠길 정도니까. 거기다가 대부분의 비빔냉면에 따라나오는 뜨거운 육수 대신 얼음이 띄워진 찬 육수가 담긴 밥사발이- 물잔이 아니다- 따로 나온다. ‘비빔’과 ‘물’의 구별이 불분명한 막국수에 가까운 형식이라고 할까. 육수는 좀 짰다. 할머니들이니 소금을 많이 넣고도 짠 줄 몰라서 그럴 거라고 우리는 추리했다. 그래도 균형 잡히고 담백하면서도 풍부한 맛이었다. 도대체 어떻게 이런 맛이 났을까.
그 비밀은 닭고기에 있었다. 본디 냉면의 본향인 이북에서는 냉면 육수를 낼 때 꿩고기를 쓰는데 그 잘난 꿩이, 아무리 서울이라 해도 쉽게 구해질 리가 없었다. 서울이라 오히려 구하기 어려웠을 터이다. 그래서 꿩 대신 닭이 불려나온 것이었다. 두 할머니 모두 고향이 이북이라 그런지 냉면을 만드는 법은 제대로여서 닭고기를 쓰되 기름을 깨끗이 걷어내어 느끼한 맛이 전혀 나지 않았다.
남은 닭고기는 두 할머니를 사모하여 찾아드는 주변 할아버지들의 안주로 충당되었다. 할아버지들은 거의 매일 하나 내지는 두개의 탁자를 차지하고 앉아 꽁초를 아무 데나 버린다, 쓸데없이 참견한다, 앉아 있는 새 몰라보게 늙었다 등등의 구박을 받아가면서도 탁자에 세워진 소주병처럼 꿋꿋이 버티고들 계셨다. 그 닭고기 안주가 맛이 있었을까. 나는 먹어보지 않아서 모르지만 그리 맛있을 것 같지는 않았다. 값도 그리 비싸지 않았다. 반면에 냉면 값은 주변 어느 식당과 비교해도 결코 싸지 않았다. 냉면은 두 할머니의 자존심이 걸린 음식이자 그 집의 주 식단, 대표 식단이 틀림없었다. 남는 장사였는지는 모르겠다. 할머니들의 등에 업혀 있던 아이들이 누구의 아이였는지도. 그 할머니들, 살아 계신다면 연세가 여든은 훨씬 넘어 아흔에 육박할 것이다. 물론 그 식당은 없어졌다. 그 냉면은 우리의 인생처럼 ‘잠시’ 지상에 존재했을 뿐이지만 그 냉면의 맛을 본 사람의 기억 속에 ‘영원히’ 남아 있다. 성석제 | 소설가

일러스트레이션 | 이정은
남은 닭고기는 두 할머니를 사모하여 찾아드는 주변 할아버지들의 안주로 충당되었다. 할아버지들은 거의 매일 하나 내지는 두개의 탁자를 차지하고 앉아 꽁초를 아무 데나 버린다, 쓸데없이 참견한다, 앉아 있는 새 몰라보게 늙었다 등등의 구박을 받아가면서도 탁자에 세워진 소주병처럼 꿋꿋이 버티고들 계셨다. 그 닭고기 안주가 맛이 있었을까. 나는 먹어보지 않아서 모르지만 그리 맛있을 것 같지는 않았다. 값도 그리 비싸지 않았다. 반면에 냉면 값은 주변 어느 식당과 비교해도 결코 싸지 않았다. 냉면은 두 할머니의 자존심이 걸린 음식이자 그 집의 주 식단, 대표 식단이 틀림없었다. 남는 장사였는지는 모르겠다. 할머니들의 등에 업혀 있던 아이들이 누구의 아이였는지도. 그 할머니들, 살아 계신다면 연세가 여든은 훨씬 넘어 아흔에 육박할 것이다. 물론 그 식당은 없어졌다. 그 냉면은 우리의 인생처럼 ‘잠시’ 지상에 존재했을 뿐이지만 그 냉면의 맛을 본 사람의 기억 속에 ‘영원히’ 남아 있다. 성석제 | 소설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