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석제의 음식이야기]
억대 부자와 파산 농민들을 낳는 가격폭등… ‘천연 살충제’와 농약 사이의 선택
지난 늦여름, 산에 갔다가 비가 너무 많이 오는 바람에 차에서 밤을 새운 보람도 없이 등산을 포기하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새벽의 국도는 폭우로 군데군데 물이 넘쳐흘렀다. 자칫하면 차가 물에 빠질 수도 있는 상황인데 자꾸만 잠이 왔다. 비는 여전히 폭포처럼 퍼붓고 있어 차를 길가에 세우는 것도 마땅치 않아 계속 길을 재촉할 수밖에 없었다. 졸음을 쫓을 양으로 라디오를 틀었더니 마침 농민을 대상으로 하는 ‘밝아오는 새 아침’인가 하는 제목의 프로그램이 흘러나왔다. 유난히 비가 잦은 근래의 날씨 이야기에 이어 어느 식품공학과 교수의 칼럼이 들려왔다. 그 대략의 내용은 이랬다.
“우리가 먹는 대부분의 야채와 곡물은 자체적인 생체방어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이를테면 잎을 갉아먹는 애벌레에 대해 배추가 천연의 농약을 내뿜는 경우가 있다. 애벌레는 한곳에서 조금만 갉아먹고는 이동해서 다른 곳을 갉아먹는 행태를 보이는데, 이는 바로 배추가 자신을 갉아먹는 애벌레를 인지하고 내뿜는 농약 때문이다. 이런 종류의 천연 농약의 독성 유무나 인체 유해 여부는 연구된 게 거의 없다. 고구마의 천연 살충제가 벌레에게는 물론 인체에도 독성이 있다는 사실이 밝혀진 정도이다.
그렇다면 농약을 전혀 쓰지 않고 짓는 농사의 결과물인, 곳곳에 벌레 먹은 자국이 있는 무공해 야채가 최상의 선택이 될 것인가. 무공해란 말의 적합성 여부는 차치하고라도 무약해(無藥害)는 아니다. 오늘날 대부분의 농약은 농약의 잔류 기간, 농약을 치는 시기, 양에 대한 지침이 나와 있다. 공장에서 생산된 농약은 일정 시간이 지나면 바람이나 햇빛에 의해 분해되어 인체에 무해한 상태가 된다. 농약의 약해나 독성에 관해서 우리는 비교적 잘 알고 있고 조절이 가능하다. 하지만 천연 농약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는 게 정답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잘 알고 조절 가능한 농약을 쓸 것인가, 잘 모르는 상태로 자연의 섭리에 맡길 것인가.”
이 이론을, 배추를 유기농으로 재배하는 농부에게 이야기해본 바 그의 대답은 이랬다. “농사짓는 사람들도 농약이 몸에 나쁘다는 건 잘 알고 있다. 농약도 돈이고 농약 치는 일도 힘들다. 누가 좋아서 농약을 치겠는가. 소비자가 모양이 예쁜 작물을 원하고 벌레만 보면 기겁을 하니 농약을 친다. 나는 농약을 치지 않는데, 그러려면 배추의 경우에는 손으로(바늘이나 젓가락, 집게로) 일일이 벌레를 잡아주어야 한다. 올해도 세번이나 벌레를 잡았다. 올해 배추값이 엄청나게 올랐다고 하는데 우리 식구가 먹을 것 빼고 배추 농사로 손에 쥘 돈은 80만원쯤 될 것이다. 경제성이 있도록 농사를 지으려면 규모가 커져야 하고, 그러면 결국 농약과 일손의 힘을 안 빌릴 수 없다.” 강원도에서 농사를 짓는 후배가 전하는 말에 따르면 그가 사는 지역에서 배추로 억대 부자가 된 사람이 두엇 있다고 한다. 이들은 강원도 산골짜기의 밭을 수천∼수만평까지 빌리고 장비와 전문 인력(인력 운송 전문 차량을 타고 전문 도시락집에서 마련한 도시락을 받은 뒤 일당을 받고 출동하는 40·50대 아주머니들이라고 한다)을 써서 배추 모종을 해둔다. 여기까지 드는 돈은 수백만원에 불과하다. 이따금 가뭄이 들면 한두번 가볼 뿐 배추 수확철이 될 때까지 가만히 내버려둔다. 시장에서 배추값이 폭락하면 그 배추는 그대로 버려진다. 가격이 올라가면 그 배추를 시장에 내어 이득을 취한다. 올해처럼 폭등을 한다면, 배추 한 포기당 산지 가격이 1천원 이상이 되며 다시 억대 부자가 두엇 나올 것이라고 한다. 그런데 이런 부자가 나오려면 다른 사람들이 지은 농사는 다 망하고 자기가 지은 농사만 잘되어야 한다. 배추 농사조차 망친 가난한 농부들의 한숨이 모이고 모여 억대 부자 두엇을 만드는 형국이다. 얼마 전 충남 홍성의 어느 농가에서 밭에서 골라온 배추를 툭 갈라 잎을 대강 씻은 뒤 그 집의 잘 익은 된장에 찍어먹으며 나눈 이야기들이다. 성석제 | 소설가
사진/ 강재훈 기자

이 이론을, 배추를 유기농으로 재배하는 농부에게 이야기해본 바 그의 대답은 이랬다. “농사짓는 사람들도 농약이 몸에 나쁘다는 건 잘 알고 있다. 농약도 돈이고 농약 치는 일도 힘들다. 누가 좋아서 농약을 치겠는가. 소비자가 모양이 예쁜 작물을 원하고 벌레만 보면 기겁을 하니 농약을 친다. 나는 농약을 치지 않는데, 그러려면 배추의 경우에는 손으로(바늘이나 젓가락, 집게로) 일일이 벌레를 잡아주어야 한다. 올해도 세번이나 벌레를 잡았다. 올해 배추값이 엄청나게 올랐다고 하는데 우리 식구가 먹을 것 빼고 배추 농사로 손에 쥘 돈은 80만원쯤 될 것이다. 경제성이 있도록 농사를 지으려면 규모가 커져야 하고, 그러면 결국 농약과 일손의 힘을 안 빌릴 수 없다.” 강원도에서 농사를 짓는 후배가 전하는 말에 따르면 그가 사는 지역에서 배추로 억대 부자가 된 사람이 두엇 있다고 한다. 이들은 강원도 산골짜기의 밭을 수천∼수만평까지 빌리고 장비와 전문 인력(인력 운송 전문 차량을 타고 전문 도시락집에서 마련한 도시락을 받은 뒤 일당을 받고 출동하는 40·50대 아주머니들이라고 한다)을 써서 배추 모종을 해둔다. 여기까지 드는 돈은 수백만원에 불과하다. 이따금 가뭄이 들면 한두번 가볼 뿐 배추 수확철이 될 때까지 가만히 내버려둔다. 시장에서 배추값이 폭락하면 그 배추는 그대로 버려진다. 가격이 올라가면 그 배추를 시장에 내어 이득을 취한다. 올해처럼 폭등을 한다면, 배추 한 포기당 산지 가격이 1천원 이상이 되며 다시 억대 부자가 두엇 나올 것이라고 한다. 그런데 이런 부자가 나오려면 다른 사람들이 지은 농사는 다 망하고 자기가 지은 농사만 잘되어야 한다. 배추 농사조차 망친 가난한 농부들의 한숨이 모이고 모여 억대 부자 두엇을 만드는 형국이다. 얼마 전 충남 홍성의 어느 농가에서 밭에서 골라온 배추를 툭 갈라 잎을 대강 씻은 뒤 그 집의 잘 익은 된장에 찍어먹으며 나눈 이야기들이다. 성석제 | 소설가
사진/ 강재훈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