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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머리카락 “내 멋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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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3-05-08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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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형화된 스타일을 단정함의 기준으로 삼아… 언제까지 청소년의 개성을 악압할 건가

서로 닮아가면서 소속감을 확인하려는 태도는 나쁘다. 서로 닮아야지 소속감을 공유한다고 믿는 것은 더욱 나쁜 태도다. 모두가 닮도록 강요하는 것은 폭력이다. 나쁜 태도를 넘어 위험한 발상이다. 사람은 이미 닮아가는 데 익숙한 사회적 동물이기에 굳이 어떤 정형을 들어 닮음을 확인받거나 확인하고자 할 필요가 없다.

우리는 몇 가지 겉모습을 보고 그 사람의 성격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단서로 사용한다. 대체로 이런 외모의 특징들은 영화나 연극에서 등장인물의 성격을 드러내기 위해 적극적인 과장을 통해 얻어낸 것들이다. 가령 미친 사람의 캐릭터를 완성하기 위해 난발한 머리카락을 사용한다든지 점잖은 인물 성격을 모사하기 위해 단정하게 빗어넘긴 머리 형태의 남성이나 단발 커트 머리의 여성 얼굴을 정형화하는 경우를 흔히 보게 된다.

닮은 강요는 폭력… 두발 자유는 정치적 요구


이런 경향을 통해 만들어진 이미지가 하나의 성격까지 아우르는 것은 우리가 얼마나 많은 암묵적 상징을 스스럼없이 받아들이고 수용하는가를 단적으로 드러낸다. ‘옷을 단정하게 입어라!’ ‘무릎을 벌리고 앉지 마라!’ ‘머리를 곱게 빗어라!’ ‘머리를 짧게 잘라라!’ 등등 외모에 대한 어떤 정형에 동의하는 것은 단정함을 알기 위해서나 실천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동의하지 않은 상징체계 안에서 사회적 이미지를 획득하기 위한 작은 소망(점점 더 커지는 욕망의 시작 단계) 때문이다. 소망에서 벗어나기란 결코 쉽지 않다. 그러나 언젠가는 벗어나야 할 굴레다.

이제 우리 사회에서도 다양한 머리 모양과 염색으로 한껏 멋부린 사람들을 쉽게 볼 수 있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서 이런 머리 모양의 변화를 태연하게 받아들이기 시작한 것은 사실 얼마 되지 않았다. 아니, 아직도 낯선 유행으로 보는 사람들이 더 많을지 모른다. 변한 것은 젊은 사람들의 과감한 ‘도발’을 일일이 꾸짖어야 하는 것으로 여기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그럼에도 청소년들에게는 여전히 완고한 머리 형태에 대한 잣대가 엄격하게 규정되어 있다. 그들이 학생신분으로 학교 안에 있을 동안에는 머리 스타일을 엄격하게 관리해야 한다.

이 어처구니없는 발상은 머리염색을 한 청소년을 의심어린 눈으로 바라보거나 탐색하게 만든다. 학교생활을 하기 위해서는 그 나이에 자연스러운 어떠한 멋부림도 용납되지 않는다. 청소년기가 인간의 삶 중 가장 멋을 부리고 싶어할 때인데도 그렇다. 천성적인 인간의 조건은 아예 무시된다. 그러니까 두발 자유는, 청소년 입장에서 보면 대단히 정치적이고 사회적인 요구사항이며 동시에 인간의 권리 요구로까지 확대될 수 있는 사회 권력의 아킬레스건이다.

학생은 왜 머리를 짧게 잘라 단정한 모습으로만 비춰져야 하나 머리가 짧으면 정말 단정한 사람이 되나 단정하게 보이고 싶은 사람만 짧은 머리를 유지하면 되지 않나 무수히 많은 질문들이 아무리 꼬리에 꼬리를 물고 게워져 나와도 이미 짧은 머리를 가진 학생에 대한 이미지는 권력에 의해 정당한 ‘것’으로 결정돼버린 지 오래다. 권력을 행사하는 사람들조차 아무도 짧은 머리와 단정함 그리고 학생의 신분을 꼭 그렇게 연결하는 이유를 알지 못한다. 아마 결코 알 수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청소년들은 어른들이 윽박지르기 좋은 나이에 학교라는 울타리 안에서 힘 한번 제대로 쓸 수 없는 상황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또 그런 이미지가 너무 오래된 관습이 되었고 사람들은 관습의 ‘타당성’으로부터 벗어나는 방법을 모른다.

사진/ 〈수정할까요 #18〉(염중호 작, 2003).

단정함의 기준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

그들에게 청소년은 인간이기 전에 상급학교에 좋은 성적으로 진학해야 할 책무만 있는 사람들이다. 언제나 어른(어른의 의미 규정도 똑같이 애매하지만) 앞에서 단정한 모습으로 있어야 할 사람이기 때문에 머리 형태는 일정할수록 좋게 보인다. 그 머리의 각자 주인공들은 그 이미지에서 벗어날 때 캐스팅에서 떨어져나갈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한번의 기회를 잃은 다음에는 또 다른 캐스팅에서도 제외될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단, 이 모든 것은 학교에 다니는 청소년들에만 국한된다. 학교 밖의 청소년들은 이미 캐스팅 대상에서 제외됐다. 우리나라에서 늘 벌어지는 일이다. 겨우 머리 형태를 가지고서 그렇다.

사람들은 흔히 어떤 기준에 맞추어져 있어야 질서가 있고 정연하다고 여긴다. 이 오랜 관습은 결코 개개인의 합의에 의해 완성된 것이 아니다. 이런 규정과 기준은 권력을 행사하면서 사람 위에 군림하려는 저열한 욕망의 사회화된 껍데기일 뿐이다. 이 껍데기의 중요성을 몰라 바보처럼 그 껍질을 벗어던지는 사람은 없다. 오히려 현명한 사람은 껍질이 각질이 될 때 벗어던질 줄 아는 사람이다. 머리 모양은 대외적인 그 사람의 첫 번째 이미지다. 그 머리에서 가장 개성을 돋보이게 할 수 있는 변화는 머리카락을 이리저리 움직여 모양을 만들어내는 일이다. 헤어스타일은 그래서 상대적인 절대 이미지를 낳기도 한다. 산발한 사람이 제정신을 놓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든지(그 사람과 진정한 이야기를 나눠보고서야 알아낼 수 있겠건만) 반지르르하게 빗어넘긴 머리 스타일을 두고 괜히 그 사람이 깐깐하게 느껴지는 경우(머리 손질만 그렇게 하고는 얼렁뚱땅거리는 사람을 나는 알고 있다)가 그렇다.

이런 판단의 실수를 저지르지 않기 위해, 또는 실수를 줄이기 위해서라도 사람들은 제각각 원하는 스타일의 머리를 하고 살아야 한다. 그래야 우리는 그 사람을 알기 위해 외모로부터 판단하는 버릇을 뒤로 물려놓고 대화를 나누며 그 사람이 진정 어떤 사람인지 알아가는 조심스럽고 배려하는 인간관계를 갖기 시작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 사람을 어느 정도 알게 된 뒤 진짜로 그 머리 스타일이 어울리지 않는다면 개성 없어 보인다고 말해주는 것이 옳다. 그때는 단정하게 짧은 머리도 한번쯤 권해볼 만하게 될 것이다.

외모의 어울림 그것이 진짜 기준이다

머리의 모양은 때로 한 사람의 결의를 내보이는 행위와 중첩되기도 한다. 우리는 맨몸으로 버텨낼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머리를 아주 짧게 깎는 행위를 제의처럼 한다. 그렇다고 짧게 밀어버린 모든 머리 형태가 결연한 의지와 연관되는 것은 아니다. 머리카락은 때로 성적 정체성을 드러내는 것으로 해석되며, 길고 탐스런 여성의 머리카락은 남성을 자극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철저하게 감추어야 한다는 종교적 입장도 있다. 그처럼 구체적인 개인의 어떤 이유로 머리카락은 빨갛게도 될 수 있고 반쪽만 밀어버릴 수도 있는 대상이다. 그 이유를 이해하기 전에 어떤 유형에 따라 머리카락의 모양과 형태가 정해지는 것은 단 한 가지 이유에서만 타당하다. 공중보건을 위해 모두가 머리카락을 밀어내야 할 때가 그렇다.

이섭 ㅣ 전시기획자·아트컨설팅서울 큐레이터 soplee6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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