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끗하게 다듬어 고귀한 신분의 상징으로 여겨… 노동의 기억에서 달아나려는 욕망으로 화려하게 치장
자주 사용하는 말은 아니지만 여러 모로 되새겨 봄직한 고사성어가 하나 있다. 마고소양(麻姑搔痒). 마고라는 아름다운 선녀가 천상에서 내려와 그의 가늘고 뾰족한 손톱을 내보이며 한껏 자태를 뽐내자 어느 사람이 이를 보고 혼자 ‘그 손톱으로 등을 시원하게 긁으면 좋겠네’라고 생각하였다. 그러자 다른 한 선녀가 이 사람의 생각을 읽고선 잔뜩 화가 나 그를 채찍질하며 나무라기를 “너는 어찌 선녀의 고귀한 신체부분(손톱)을 보고 감히 등짝 긁을 생각을 하느냐” 했다. 하여 뒷날, 이 말 뜻은 제 뜻을 펼치기 위해 힘있는 사람의 능력을 빌리거나 도움을 얻어 이뤄내는 경우를 두고 사용되고 있다. 또는 자기 뜻대로 일이 척척 진행될 때의 상황을 두고도 이 고사성어를 속담처럼 사용한다.
손의 순기능을 애써 외면하려는 행위
손톱을 다듬고 아름답게 꾸미는 일은 예나 지금이나, 서양이나 동양이나 아주 오래된 미용습관 가운데 하나다. 그리고 깨끗하게 다듬은 손톱은 이 고사성어에서 알 수 있듯 사회에서 고귀한 신분을 암시하는 상징이었다. 아직 이 습관은 여러 나라에서 같은 의미로 사용돼 패티큐어(손을 관리하는 미용방법)는 신분상승, 부유한 삶의 상징이 되고 있다. 1988년도 서울올림픽 여자 단거리 부문에서 탁월한 기량을 발휘한 여자 육상선수는, 놀라운 기록과 함께 그의 독특한 손톱 패션으로도 유명했다. 그때 그가 사용한 것은 길고 화려한 색깔의 모조손톱을 열손가락 끝에 붙인 것이었다. 이제는 네일아트라고 해 모조손톱에 여러 그림과 무늬를 정교하게 그려넣고 이를 손톱에 붙여 사용하는 것이 널리 퍼져 있다.
손톱을 다듬는 행위는 그만큼 손의 순기능, 즉 노동을 전제로 하는 삶과 유리돼 있다는 뜻이다. 그래서 암시한 바가 다른 사람의 노동력을 통해 살아갈 수 있는 사람, 즉 정치적 힘과 사회적 권위를 강제하는 힘의 주인으로 읽혀지는 것이다. 사실 노동강도가 높은 일에 종사하는 사람일수록 손톱은 단정할 수 있으나 결코 길게 기르거나 꼼꼼하게 매니큐어를 칠할 수는 없다. 관심이 없어서나 귀찮아서가 아니다. 손톱이 그 모양이면 일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옛날 중국 황제들은 인조손톱을 다양한 재료를 사용해 고깔모양으로 만들어 끼고 황제의 권위를 뽐냈다. 이는 자신이 손을 쓰지 않고도 제 손 부리듯 할 수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분명한 의미전달 방식이 되었다. 손톱에 매달리는 습관은 언뜻 여성에게 편중돼 여성 미용법으로만 있는 듯하다. 그러나 남성이 정치적 힘이나 경제적 힘으로 인해 사회적 지위가 오르면 여성들이 대개 자신의 손톱을 자신이 직접 가다듬는 것보다 절차가 복잡한 패티큐어 과정을 통해 손관리를 한다. 손은 다른 사람들과 만나게 될 때 가장 먼저 교신하는 신체부위다. 당연히 손이나 손톱은 타자를 압도할 만한 어떤 상태를 유지하고 있어야 한다. 그래서 땀이 많은 손, 덜덜 떨리는 손, 손가시가 들고일어난 손 등은 건강상태와 관계없이 미용법으로 대처할 만한 상태로 인정되고 바로 교정대상이 되는 것이다. 우리는 손톱 밑이 까만 손을 기꺼이 잡으며 악수할 때 그 손이 보여주는 노동의 흔적을 상기하기보다는 청결을 위해 시간을 쓰지 못한다고 여기며 그 사람을 쉽게 신뢰하지 못한다. 이는 손이 우리에게 말을 거는 일차적 의미를 노동의 의미보다는 신분과 계급에 기대어 이해하는 데 더 익숙하기 때문이다. 아직도 신분은 고귀한 올가미인가
재미있는 사실은 우리가 악벽, 곧 나쁜 습관이라는 것들을 보면 정말로 비도덕적 습관일 수 있지만 동시에 사회계급을 은연중에 상징하고 있는 습관에 반하는 행동들을 함께 묶어놓고 분류한다는 것이다. 예컨대 도둑질하는 습관은 악벽의 하나다. 그런데 손톱을 물어뜯는 습관 역시 악벽 가운데 버젓이 자리 하나를 차지하고 있다. 무릎을 떠는 습관, 자위하는 습관도 악벽으로 분류시켜놓고 어릴 때부터 교육을 받게 된다. ‘하지 마라, 하지 마라.’ 우리는 무릎을 떠는 습관이 왜 도둑질하는 습관과 같은 유의 나쁜 습관으로 분류되는지 선뜻 이해하기 힘들다. 아니, 이해할 수 없다. 손톱을 물어뜯는 습관은 비위생적일 수 있다. 하지만 악벽으로 취급하는 것에 동의하기는 힘들다. 그럼에도 신분이 고귀하다고 믿고 싶은 많은 사람들은 (아직 우리 사회에서는 이 신분의 고귀함에 목매고 사는 사람이 많다. 전근대에서 날아와 21세기에 그냥 얹혀살고 싶은 사람들이 대개 이 부류에 속한다.) 자신과 자신의 자식들에게 이해할 수 없는 악벽을 악벽스럽게 엄격히 교육시키고 있다. 손톱은 그래서 아직 과거와 현재를 잇고 있는 계급분류의 리트머스와 같다.
손은 언어나 문자 다음으로 다른 사람과의 많은 교신을 가능하게 한다. 말을 하지 않아도 손짓으로 우리는 직접적인 의사소통이 가능하다. 다른 사람에게 가장 빈번하게 노출되고 자신을 드러내는 신체부위 가운데 하나가 손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손에 대한 각별한 장식에 관심이 많다. 손이 예쁘다는 칭찬은 얼굴 외모에 대한 칭찬만큼이나 직설적이다. 그래서 손·손가락에 많은 투자를 한다. 밖으로 드러나는 자신이라고 우리는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무도 이 손이야말로 노동을 기록하는 장이라고 격려하지 않는다.
등짝을 긁어주는 손톱을 위하여
우리는 거칠고 커져버린 늙은 어머니의 손을 기억할 수 있다. 손의 누추함은 곧 나의 성장과 직접적으로 닿아 있다. 하지만 우리는 이 사실을 어느 예술작품에서만 설핏 보고 지나칠 뿐이다. 일상생활에서 항시 그 손을 기억해내고 숙연해지지 못한다. 내 손 또한 노동의 기억으로부터 거리를 두려고 여간 애쓰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우리는 사랑할 때 징표로 점점 더 많은 액수의 반지에 자신의 사랑을 자꾸 기대기 시작한다. 손톱은 어물쩍 넘어갈 수 있다. 하지만 그야말로 신분이 상승했다고 생각할 때 우리는 얼른 달려가 손톱에 정성을 쏟는다. 이제 손톱의 완성을 통해 노동의 기억과 계급에서 훌쩍 달아나고픈 제 욕망을 숨기지 않는 것이다.
마고소양. 마고라는 선녀가 농투성이 아낙네였고 그의 손톱이 무뎌 그 손톱으로 등짝을 시원하게 긁어주었다면, 우리는 생각을 빼앗길 필요도 없었고 채찍질당할 필요도 없었으며, 뒷날 제 뜻을 남의 능력이나 힘을 빌려 이루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다. 아마 마고소양의 뜻이 격언처럼 사용되었다면 우리는 악벽에서 최소한 손톱을 물어뜯는 것쯤 하나를 삭제해도 되었을 것이다.
이섭 ㅣ 전시기획자·아트컨설팅서울 큐레이터 soplee60@hanmail.net

사진/ 〈수정할까요#17〉(염중호 작, 2003).

사진/ 〈수정할까요#17〉(염중호 작, 2003).
손톱을 다듬는 행위는 그만큼 손의 순기능, 즉 노동을 전제로 하는 삶과 유리돼 있다는 뜻이다. 그래서 암시한 바가 다른 사람의 노동력을 통해 살아갈 수 있는 사람, 즉 정치적 힘과 사회적 권위를 강제하는 힘의 주인으로 읽혀지는 것이다. 사실 노동강도가 높은 일에 종사하는 사람일수록 손톱은 단정할 수 있으나 결코 길게 기르거나 꼼꼼하게 매니큐어를 칠할 수는 없다. 관심이 없어서나 귀찮아서가 아니다. 손톱이 그 모양이면 일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옛날 중국 황제들은 인조손톱을 다양한 재료를 사용해 고깔모양으로 만들어 끼고 황제의 권위를 뽐냈다. 이는 자신이 손을 쓰지 않고도 제 손 부리듯 할 수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분명한 의미전달 방식이 되었다. 손톱에 매달리는 습관은 언뜻 여성에게 편중돼 여성 미용법으로만 있는 듯하다. 그러나 남성이 정치적 힘이나 경제적 힘으로 인해 사회적 지위가 오르면 여성들이 대개 자신의 손톱을 자신이 직접 가다듬는 것보다 절차가 복잡한 패티큐어 과정을 통해 손관리를 한다. 손은 다른 사람들과 만나게 될 때 가장 먼저 교신하는 신체부위다. 당연히 손이나 손톱은 타자를 압도할 만한 어떤 상태를 유지하고 있어야 한다. 그래서 땀이 많은 손, 덜덜 떨리는 손, 손가시가 들고일어난 손 등은 건강상태와 관계없이 미용법으로 대처할 만한 상태로 인정되고 바로 교정대상이 되는 것이다. 우리는 손톱 밑이 까만 손을 기꺼이 잡으며 악수할 때 그 손이 보여주는 노동의 흔적을 상기하기보다는 청결을 위해 시간을 쓰지 못한다고 여기며 그 사람을 쉽게 신뢰하지 못한다. 이는 손이 우리에게 말을 거는 일차적 의미를 노동의 의미보다는 신분과 계급에 기대어 이해하는 데 더 익숙하기 때문이다. 아직도 신분은 고귀한 올가미인가

사진/ 〈수정할까요#17〉(염중호 작, 200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