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급 문화 상징하는 코드로 자리 잡은 목욕의 사회학… 몸의 가치를 화폐가치로 맞교환하려고 상상력 동원
사람은 청결을 위해 몸을 씻는다. 밖에 나갔다 오면, 바깥이 집 안보다 더러웠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손발을 깨끗이 씻는다. 육체 노동을 끝내고 나면 온몸의 먼지를 털어내려고 온몸을 씻는다. 이렇듯 청결을 유지하기 위해 몸을 씻는 행위를 우리는 너무나 당연하게 생각한다. 하지만 온몸을 씻어내는 목욕이 우리에게 그렇게 매일 해야 하는 일이 된 것은 최근이다. 물론 조선 시대에도 몸을 정갈하게 하기 위해 사대부 또는 권문세가의 큰 집에는 정방이라 하여 목욕 시설을 갖춘 별채를 두고 있기도 하였다. 정방에서 흔하게 사용되었던 목욕법은 난탕, 청포탕, 복숭아잎탕 등으로 단순하게 몸을 깨끗이 씻는 일만을 위한 것은 아니었다. 어찌 되었건 지금의 목욕 시설처럼 개인의 집 안에 몸을 씻을 수 있는 시설을 갖추었다는 것은 확실히 청결 문제가 계급 문제였던 시절이 있었다는 얘기가 된다. 목욕을 다반사로 할 수 있다는 것은 역사에서 사회 내 계급간의 갈등을 은유적으로 말하는 경우로 꼽히기도 한다. 로마제국이 목욕에 집착해 제국의 멸망을 초래했다는 과장된 상식이 널리 알려져 있지 않은가.
우리는 청결만을 위해 몸을 씻지 않는다
거의 모든 집에서 볼 수 있는, 수도꼭지가 달린 욕조가 대량 생산되고 보급돼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1920년대 미국에서부터다. 아직도 유럽에 가보면 이 욕조를 사용해 목욕하는 문화가 흔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온몸을 물에 담그고 목욕하는 습관은 우리에게 친숙하게 느껴지지만 사실은 아직도 낯선 문화가 아닐까. 최근에야 널리 애용되는 이 목욕 문화는 그 낯섦 때문에 쉽게 과장되기도 한다. 그래서 이제 우리는 청결만을 위해 몸을 씻지 않는다. 목욕은 오래전부터 청결 유지보다 치유의 방법으로 널리 애용되었다. 온천욕이 가장 대표적인 예가 될 것이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도 빠르게 퍼지고 있는 목욕 요법은 이 온천 요법의 변용이자 차별성을 강조하는 계급 문화의 화려한 잣대 구실을 하기도 한다. 또한 목욕 방법에 따라 건강을 지키고 아름다움을 가꾸며 스트레스까지 날려버리는 기막힌 생활의 지혜로까지 취급되고 있다. 목욕을 해서 깨끗한 몸을 유지하는 것을 반대하거나 비아냥거리기 위해 이 장황설을 늘어놓는 것은 아니다. 단지 우리가 목욕에 이러쿵저러쿵 말을 만들어가며, 차별성을 강조하면서까지 왜 매달리는지 궁금해서다. 거의 모든 집에 목욕 시설을 다 갖추어놓고서도 말이다.
이라크 침공전을 보도하는 기사에서 물이 귀해 더러운 웅덩이에 모여들어 식수로 사용할 물을 퍼 담아 가는 이라크 주민들의 이야기를 접할 수 있었다. 한편으로는 종군기자의 기사에서 배급된 물이 부족해 겨우 고양이 세수나 찔끔하고 하루를 버텨야 하는 고단한 생활을 묘사한 대목을 발견하기도 한다. 그 기자의 작은 소망은 뜨거운 물에 몸을 푹 담그고 목욕을 하는 것이라고도 한다. 전쟁이라는 특수하고도 처절한 상황에서까지 몸을 씻기 위해 물은 필요하다. 그리고 목욕은 하나의 그리움처럼 그 긴박한 상황에서도 우리 몸을 자극한다. 여기서 우리는 목욕의 의미가 갖는 실체를 곁눈질로 알 수 있다. 목욕을 하고 싶을 때 언제나 할 수 있다는 것은 사회 계급의 차별성을 드러내는 코드에 다름 아니다. 당연히 엄청난 물을 이용하여 온몸을 적셔가며 하는 목욕 방법은 이 계급간의 차이를 강화한다. 계급의 차별성 드러내는 다양한 방식
목욕 시설의 화려함은 당연히 더 큰 차이를 보장하는 방식이 된다. 그리고 따뜻한 물에 몸을 담그던 기억을 항상 되살릴 수 있는 몸은 고귀한 신분이 되어버린 것이다. 고귀한 신분이 선택할 수 있는 목욕법은 좀 특별하거나, 그 과정에서 조금은 특수해야 할 필요가 있다. 물을 담고 있는 용기도 그래야 하고, 옷을 벗고 씻고 물기를 닦아내는 과정 또한 차별을 해주어야 한다. 물에 집어넣을 수 있는 귀한 약재가 있다면― 조선 시대처럼 난탕으로 만들거나 하얀 피부를 얻기 위해 복숭아잎을 넣어도 좋다. 아니, 그런 걸 꼭 집어넣어야 한다. 물이 귀해지더라도 이 목욕법은 꼭 지켜야 한다. 마실 물이 모자라거나 귀한 것은 목욕을 즐기는 것과 아예 다른 상황인 것이다.
로마 시대에는 목욕탕(대목욕탕으로 지금의 대중탕처럼 여러 사람들이 한꺼번에 사용하는)에서 정치·사회의 중요한 화제를 이야기하고 의논하기도 하면서 기꺼이 귀족 계급이 향락을 즐겼다고 한다. 그들은 열탕, 미지근한 온탕, 냉탕, 그리고 건조한 공기에 피부를 자극케 하는 지금의 사우나 같은 건욕법까지 하나의 목욕탕에서 느긋하게 시간을 보내며 인생의 한 부분을 즐겼다고 한다. 그리고 이런 목욕탕은 로마 안에서도 여럿이 있었지만 그들이 침략하고 지배했던 지역마다 가장 웅장한 자태로 건설되었다(우리가 유럽 이곳저곳을 여행할 때 볼 수 있는 로마 유적의 상당 부분이 이 대중탕의 흔적들이다). 지금도 이런 목욕의 사치는 엇비슷해 사우나에서(물론 사우나 방식이 보다 대중적인 위치까지 보급되었지만) 시간을 보내며 비슷한 부류의 모임을 여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어떤 거래가 그곳에서 이루어지는지는 알 바 아니다. 시간이 지나서도 이 유사한 목욕 방식을 공유할 수 있는 것은 계급간의 동질성 때문이다. 그들은 용도보다 넓은 장소와 많은 양의 물을 소비하면서(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긴 시간을 그렇게 쓰면서) 일체감을 형성하고 유대감을 의식하는 것이다. 노동자들이 사용하는 목욕 방식은 대체로 샤워기에 일렬로 서서 가능한 빠른 시간 내에 몸의 먼지를 닦아내는 일이다. 그들은 효용성 높은 공간에서 절약 정신을 일깨우며 물을 사용한다. 한 부류는 목욕을 통해 사회 속의 몸의 위치를 확인하고, 또 한 부류는 몸속의 피로를 푼다. 목욕을 통해 한 부류는 엄청난 물을 이용해 늘어진 시간을 메우고, 다른 부류는 엄청난 먼지를 나른한 몸에서 떼어낸다. 우리 시대의 목욕탕은 두 계급이 만나지 못하도록 나뉘어 있다.
아름다운 몸을 위한 과도한 상상력
목욕법이 오늘 우리를 당황하게 만드는 것은 미용법, 즉 아름다운 몸을 가꾸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는 점 때문이다. 몸 전체를 부위별로 어떻게 세척해내야 하는가 하는 방법과 순서, 그리고 요령을 알려주고 습득한다. 물의 온도가 어느 정도일 때 탱탱한 피부를 유지하는 데 적당한지에 대한 메모를 강요한다. 목욕법에 대한 이 과도한 상상력의 기원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목욕법이 몸의 가치를 지속적으로 높여야 하는 계급의 문제에 귀착되고, 우리는 그 계급을 선망하기 때문이다. 이제 아주 특별한 목욕법을 익혀 가꾼 몸은 화폐의 교환가치에 적합해진 것이다. 물신(神)은 어느 덧 우리 몸에 달라붙어 있으며 청결을 뛰어넘어 몸의 가치를 화폐가치와 맞교환하도록 부추긴다. 우리가 알고 있듯이 청결을 위해 우리는 그리 많은 물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이섭 ㅣ 전시기획자·아트컨설팅서울 큐레이터 soplee60@hanmail.net

사진/ <수정할까요#16> 염중호 작, 2003
이라크 침공전을 보도하는 기사에서 물이 귀해 더러운 웅덩이에 모여들어 식수로 사용할 물을 퍼 담아 가는 이라크 주민들의 이야기를 접할 수 있었다. 한편으로는 종군기자의 기사에서 배급된 물이 부족해 겨우 고양이 세수나 찔끔하고 하루를 버텨야 하는 고단한 생활을 묘사한 대목을 발견하기도 한다. 그 기자의 작은 소망은 뜨거운 물에 몸을 푹 담그고 목욕을 하는 것이라고도 한다. 전쟁이라는 특수하고도 처절한 상황에서까지 몸을 씻기 위해 물은 필요하다. 그리고 목욕은 하나의 그리움처럼 그 긴박한 상황에서도 우리 몸을 자극한다. 여기서 우리는 목욕의 의미가 갖는 실체를 곁눈질로 알 수 있다. 목욕을 하고 싶을 때 언제나 할 수 있다는 것은 사회 계급의 차별성을 드러내는 코드에 다름 아니다. 당연히 엄청난 물을 이용하여 온몸을 적셔가며 하는 목욕 방법은 이 계급간의 차이를 강화한다. 계급의 차별성 드러내는 다양한 방식

사진/ <수정할까요#16> 염중호 작, 2003

사진/ <수정할까요#16> 염중호 작, 200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