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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국적없는 중국요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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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0-10-10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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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천홍’(東天紅)은 서울 압구정동 현대아파트 타운에서 음식 맛있기로 소문난 중국음식점이다. 점심이나 저녁시간은 대부분 20∼30분 기다려야 자리가 나기 때문에 ‘기다렸다 먹는 집’으로 알려져 있다. 30석 안팎의 작은 규모 탓도 있겠지만 입구에 마련한 10여명 분의 대기석은 문을 열기 전부터 죽 늘어앉아 기다리는 모습들로 진풍경을 이룬다. 하지만 따끈한 자스민차와 읽을거리들을 마련해놓고 친절하게 차례대로 자리를 잡아주어 누구 하나 불만스러워하는 표정도 없다. 이처럼 인기를 누리는 동안 오픈 7년 만에 9개의 분점을 두게 됐는데, 그 비결은 독특한 음식맛과 정직한 음식내용, 친절한 서비스에 있다는 게 주인의 설명이다. 단골 고객은 음식이 맛있어서 때론 1시간을 기다린 적도 있지만 자주 찾을 수밖에 없다고 이야기한다. 심지어 중국음식을 싫어하는 노인들도 동천홍의 음식만은 먹을 만하다며 음식맛을 칭찬해주고 간다고 한다. 틀림없는 중국음식점인데 음식맛이 칼칼하면서 뒷맛이 시원하고 개운해 맛이 다른 중국집과 다르다는 것이다.

동천홍의 대표적인 메뉴인 사천탕면과 오향삼겹살 등을 자세히 보면 중국음식에 바탕을 두면서 일식과 한식의 요소들이 고루 가미된 제3국의 맛이다. 이같은 음식맛이 그토록 인기를 누리는 데는 우리의 입맛이 고유한 음식맛으로는 만족하지 않을 정도로 많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더욱이 각국의 음식이 없는 것 없이 성업을 이루고 있는 강남지역이나 대도시에서 생활하는 젊은 세대들에게는 더욱 이런 현상이 크게 나타나고 있다.

전문 조리사들도 고객의 입맛에 맞추어가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퓨전의 세계로 들어서게 되고, 전에 사용하지 않던 새로운 기법과 양념류들을 가미한 새로운 맛을 찾아내 고객의 입맛을 즐겁게 해주고 있다.

아무튼 동천홍이 이처럼 성공을 거두는 모습을 보고 음식맛을 탐색하러 왔던 화교 출신 주방장들은 중국요리가 아니라며 난색을 표하지만, 일본인 관광객이나 한국사람들은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맛있다고 극찬한다. 그래서 9개의 점포가 모두 고객으로 넘친다.

포이동점(02-576-4888)은 동천홍의 7번째 점포로 박현준(32)씨가 주방을 맡고 있다. 10대 초반에 주방의 뒷바라지에서부터 시작해 20년 가까운 경력을 쌓아왔다는 30대의 젊은 조리사의 솜씨가 남다른 맛을 만들어낸다.

박씨는 국내에서는 물론 일본과 대만, 홍콩 등지의 이름있는 중식당들과 비교해도 맛이 뒤떨어지지 않기 때문에 나름대로 자부심을 갖고 음식 만들기에 임한다고 한다. 어떤 음식이든 고객이 맛있게 먹고 행복감을 느낄 수 있도록 해야 조리사도 자신의 소임을 다했다고 말할 수 있다는 것이 그의 평소 소신이다. 그래서 요리의 원칙보다는 고객의 취향을 더 중요시하게 되고, 최근에는 그런 추세가 너무 빠르게 진행되는 것 같아 늘 연구하고 새로운 정보에 귀를 기울인다고 한다.

중국음식점의 대표메뉴인 자장면도 진짜 ‘옛날자장’은 내놓지 않는다. 정말 옛날자장면을 그대로 재현해놓으면 대부분 제맛이 아니라며 맛이 없다고 하기 때문이다. 고객의 입맛은 언제나 변한다. 동천홍은 굳이 ‘퓨전’이라는 간판을 내걸지는 않았지만 변화의 흐름에 가장 잘 적응하는 중식당이다.


나도 주방장/ 하얀해물짬뽕

‘맑은’ 짬뽕국물이라고?

준비물 1)육수용 닭(닭요리를 하고 남은 날개와 닭발, 목뼈도 가능).

2)생굴, 생조개(껍질을 깐 것), 빨간 깐새우 말린 것.

3)표고버섯, 모기버섯, 부추, 양파, 당근, 애호박, 배추 속, 매운청량고추.

4)기타 소금과 간장, 참기름, 후춧가루.

자장면 이상으로 인기있는 짬뽕도 원칙대로 만들려면 가정에서 쉽게 손댈 수 없지만 퓨전의 세계에서는 얼마든지 가능하다. 특히 집에서 만든 짬뽕은 빨간 고추기름이 가득 뜨지 않으면서도 담백하고 시원한 맛을 낼 수 있어, 누구든 맛있게 먹을 수 있는 퓨전짬뽕이 될 수 있다.

닭육수는 해물과 야채 어느 것이나 잘 어울린다. 끓는물에 육숫감을 안쳐 한소끔 끓인 뒤 서서히 뜸을 들이며 충분히 우려내 기름을 말끔히 걷어낸다. 야채류는 육수에 넣기 전 알맞게 채쳐 프라이팬에 한번 볶아내는데, 식용유를 2스푼 정도 프라이팬에 둘러 열을 가한 뒤 기름을 말끔히 따라낸 촉촉한 상태에서 볶는다. 알맞게 볶아진 상태에서 간장을 1스푼 정도 끼얹어 향을 돋운다. 이렇게 볶아낸 야채를 육수에 넣고 끓이면서 소금간을 더 하고, 생굴과 조갯살을 넣고 한소끔 더 끓인다. 해물이 다 익었다 싶을 때 후춧가루와 참기름을 몇 방울 떨어뜨려 마무리한다.

이런 과정이 진행되는 동안 국수(생면이 좋음)를 삶아 찬물에 깨끗이 씻어 체에 건져 놓았다가 그릇에 사리를 옮겨놓고 뜨거운 국물을 알맞게 붓는다. 부드러운 육수는 매콤한 맛이 첫입부터 시원한 느낌이고, 해물과 야채에서 우러난 깊은 맛이 계절감을 한껏 살려준다. 지금부터 봄까지 싱싱한 굴과 조개류들이 풍성할 때 가족이 함께 만들어 건강식으로 즐길 만하다.

글·사진 김순경/ 음식 칼럼리스트www.OB-gree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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