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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자연산 풍천장어? 꿈 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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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3-01-08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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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에 쓰려 해도 구하기 힘든 풍천장어… 제대로 된 양식장어 파는 ‘만민정’에서 섭섭함 달래보자

만민정 주인은 자연산 이야기는 아예 꺼내지도 않고 솔직하게 이 집에서 재료로 쓰는 양식장어의 특징과 품질, 맛을 자랑한다.
“자연산 풍천장어 매일 항공 직송.”

몇해 전 통일로를 따라 문산 가는 길에 벽제 부근 한 장어구이집에 걸린 플래카드 문구를 보고 나는 실소를 금치 못했다. 풍천장어란 전라북도 고창군 심원면에 소재한 선운사 부근 개천에서 나는 특산 뱀장어를 말한다. 그러나 그간 환경의 변화와 남획으로 자연산 풍천장어는 이제 약에 쓰고 싶어도 구하기가 힘들 정도인데, 궁벽한 벽제 부근 장어집에 무슨 풍천장어란 말인가 또 매일 항공으로 직송한다니, 국민 모두가 모르는 새에 고창군에 비행장이라도 건설된 것일까

우리나라의 강이나 큰 하천들은 백두대간을 경계로 동쪽 지방에서는 서에서 발원해 동으로 흐르고(西出東流), 서쪽 지방에서는 동에서 발원해 서로 흐른다(東出西流). 그러나 고창군 심원면 선운산 도솔암 서쪽에서 발원해 동백꽃으로 유명한 선운사 앞을 거쳐 서해로 빠지는 하천은 서에서 발원해 북향했다가 다시 서해로 흐르는 서출동류 현상을 보인다. 이렇게 동출서류의 자연현상을 거역하고 서출동류로 역류하는 하천을 풍수학에서는 ‘풍천’(風川)이라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유일하게 선운사 앞 하천만이 그러하기 때문에 풍천은 풍수학의 일반명사이면서 곧 선운사 앞 하천을 일컫는 고유명사로 굳어져버렸다.

곧 풍천은 선운산에서 발원해 선운사 입구 삼거리에서 북향했다가 서해로 빠지는 하천의 이름이기도 하지만, 정확히는 선운사 입구 삼거리 부근의 북향(역류)하는 지점을 말하는 것이다. 여기에서 건너편 산을 바라보면, 산 정상은 한 일(一)자로 평평하면서 길게 보이는 풍수학상의 이른바 일문성(一門城) 모양인데, 풍천과 일문성 사이에 천하의 명당이 있다 한다.

“풍천장어에 복분자(산딸기) 술을 먹으면 요강이 깨진다”는 우스개 속설이 전해질 정도로 풍천장어는 고단백 강장식품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풍천처럼 강물과 바닷물이 길게 어울리는 곳에서 잡히며, 산란기가 되면 서해바다를 거쳐 태평양 깊숙한 곳에까지 가 새끼를 낳는다. 이 새끼 장어들은 회귀성이 있어서 무리를 지어 다시 이곳으로 돌아온다. 그러나 근래에는 자연산 풍천장어는 아주 드물고, 선운사 부근에는 그 흔한 장어양식장조차 별로 없으니, 풍천장어 운운하며 선전하는 장어구이집은 일단 신뢰성을 의심받아 마땅하다.


요즘 장어구이집에서 쓰는 장어는 대부분 수입산이다. 중국·대만·뉴질랜드 등에서 양식장어를 수입해오는데, 자연산에는 아예 비할 바가 못 되지만, 국내산 양식장어에 비교해봐도 살이 푸석푸석하면서 질기고 때깔도 거무튀튀한 것이 영 그렇다. 그러므로 장어구이를 즐기는 분이라면 허구한 날 자연산을 찾는 ‘허망한 꿈’ 은 버리고 깔끔하게 국내에서 양식된 장어라도 맛볼 수 있는 집을 찾는 것이 훨씬 낫다.

난개발로 인해 교통지옥의 대명사로 꼽히는 용인시 풍덕천 삼거리 부근에는 풍덕천이라는 이름이 그럴듯해서인지 제법 맛있는 장어집들이 여럿 있다. 삼거리 부근에 있는 풍덕천장어구이집이 많이 알려져 있지만, 나는 삼거리에서 경부고속도로를 따라 좁게 난 길을 고즈넉하게 3km 정도 가면 있는 참숯장어구이집 ‘만민정’(031-282-3400)을 즐겨 찾는다.

이 집 주인은 원래 전북 익산 용지수산에서 양식한 장어를 경기도 지역 장어구이집에 유통시키던 중간상인데, 간혹 전문 장어구이집인 줄 알고 찾아오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장어를 구워 팔다가 1년 전부터는 본격적으로 장어구이집을 겸하여 열게 되었다. 자연산 이야기는 아예 꺼내지도 않고 솔직하게 이 집에서 재료로 쓰는 양식장어의 특징과 품질, 맛을 자랑하는 주인 김순동(39)씨 부부의 순박함이 쫄깃쫄깃한 장어맛을 더욱 감칠나게 한다. 양념구이·소금구이 모두 1kg에 2만9천원인데, 1kg이면 두 사람이 먹기에 충분하다.

김학민ㅣ학민사 대표·음식칼럼니스트 hakmin8@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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