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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나를 매료하고 너를 매혹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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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2-12-12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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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과 육체의 결합을 꿈꾸는 입맞춤… 절정의 환희를 만끽하고 싶지 않은가

해가 저물어 어둑해지면 한강 둔치의 공원에서는 서로의 몸을 탐하는 청춘남녀들의 격정적인 키스 장면이 연출되곤 한다. 몇년 전만 하더라도 키스는 매우 내밀한 사랑행위와 같이 취급되어 사람들의 눈에 쉽게 띄는 장소에서는 웬만한 용기를 가진 사람들이라 할지라도 드러내놓고 할 수 없었다. 키스에 대한 사회적 관용은 비단 우리나라가 키스를 다반사로 하는 서구 문화권과 달라 곡해했던 것은 아니었던 것 같다. <시네마천국>으로 우리에게 소개된 영화를 보면 신부님이 검열하여 잘라낸 ‘키스하는 명장면’들의 편집판이 차르르 하고 돌아가는 엔딩을 만날 수 있다. 이 영화에서 드러난 키스행위의 성적 도발성은 신부님으로 상징된 도덕의 잣대와 키스 장면에서 환호하고 박수치는 주민들의 열광적인 개방성으로 대비되어 있다.

사랑의 절정에 이르는 첫번째 관문

사진/ <당신 날 사랑하세요?> (염중호 작, 2002)
물론 키스 그 자체가 늘 성희를 전제하면서 이루어지지는 않는다. 사진에서 보듯이 엄마와 아이가 나누는 입맞춤은 자연스러운 애정표현의 한 예라 하겠다. 물론 키스의 시원을 따지면서 음식물을 입에서 입으로 전하는 행위가 음식의 나눔과 피부의 접촉이라는 두 가지 친밀한 행동으로 인하여 애정의 전달방식으로 점차 독립적인 행동발달을 보였다는 추론은 그럴듯하다. 이 키스의 근원은 아이를 키우는 엄마들이라면 한번쯤 저마다의 경험으로 인해 고개를 끄덕일 만하다. 모성애에서 우러나오는 강렬한 감정은 입맞춤이란 행위에 의해 아이에게도 정확하게 전달되고, 자연스럽게 아이와 부모 사이에서 사랑을 표현하는 이 키스의 용도는 무한하다. 아이들 입장에서는 부모와 나누는 이 애정표현의 방식이 곧 놀이방식과 일치되기도 하는데 이런 유아기의 습관은 성인이 된 뒤에도 키스를 하나의 유희형식으로 기억하고 성희에서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


우리에게 알려진 ‘성적인 키스’는 성교 전희의 일부로서 성행위의 중점에 위치하며 인사방식과 뚜렷이 구별된다. 누군가를 사랑할 때, 그 시작은 대체로 ‘첫눈에 반한 사랑’으로부터 출발하지만 키스를 통해 비로소 서로 간의 사랑을 확신하게 된다. 또한 첫 키스의 시작은 더불어 체험할 성행위의 신호이며 사랑의 절정에까지 이르게 하는 첫 단계가 된다.

키스하는 상대방의 신체 부위에 따라 입맞춤은 사회적 행동양식을 의미하기도 한다. 발등에서 머리까지 신체부위에 의해 키스행위는 때로 애정의 표현이고 존경의 표시가 되기도 하며 굴종의 표시가 되어 다양한 사회적·정치적 성향을 대변하는 눈금이 되는 것이다. 상대방 손등에 키스하는 행동은 상대방 지위를 존경하는 행동양식이며 이마에 입맞춤은 사랑의 순백함을 드러내는 장치로 보아도 무방하다. 물론 같은 신체부위라 할지라도 예외가 있는데, <섹스의 기쁨>이라는 책에서 소개되는 ‘환상에 찬 키스’에서 어떻게 키스를 통해 성적 기쁨을 가질 수 있는지 보여주고 있다. “당신이 최소한 그녀의 입, 어깨, 목덜미, 젖가슴, 손가락, 손바닥, 발가락, 배꼽, 음부, 귓불에 키스하지 않았다면 그것은 실제로 그녀에게 키스하지 않은 것과 다름없다.” 이 키스에 대한 표현은 사실 은밀한 사랑행위에서 통할 수 있는 적나라한 성희 묘사와 같다. 여기서 남성과 여성은 그 위치를 바꾸어 키스함으로써 성교를 통한 절정의 환희를 두 사람이 같이 나누어 가질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경우 키스는 사회적 성차를 이겨내며 어떤 상태를 유지하는 적극적인 사랑행위가 된다.

찰라적 격정 속에도 성적 구분이…

사진/ <당신 날 사랑하세요?> (염중호 작, 2002)
기독교 문화에서 결혼예식의 확고한 구성부분이 된 키스는 두 사람이 서로 사랑하는 관계임을 공표하는 의식으로 받아들인다. 결혼선언 이후 신랑과 신부가 교환하는 키스는 특정 문화권에서 일어나는 풍습임에도 그 행위 안에서 일어나는 남성과 여성의 성적 지위를 극적으로 드러내기도 한다. “신랑은 신부에게 키스하십시오”라는 주례의 선언은 곧 남성이 여성에게 키스를 줌으로써 받아들이는 사람과 주는 사람의 관계를 드러내며 전통적인 키스의 이미지, 즉 능동적 남성과 수동적 여성의 성차를 극명하게 선언하기 때문이다.

키스의 능동과 수동의 극적 표현은 영화와 같은 이미지 생산방식에서 크게 활용된다. 기억될 만한 키스 장면으로 우리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에서 보여주는 한 장면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어떤 가치보다 사랑의 순백함을 믿어버린 꿈 많은 처녀와 그녀를 사랑하는 역동적인 감정과 함께 세상 풍파를 다 알아버린 중년 남성의 찰나적 격정은 이 한번의 키스 장면으로 긴 서사를 깔끔하게 처리한다. 이 키스 장면은 관객으로 하여금 주인공들의 격한 사랑의 감정에 공감하게 할 뿐 아니라 그 감정의 가치에 동조하게 만들기도 한다. 아마도 그런 이미지의 함축적이고 포괄적인 서사 때문에 이 장면이 영화를 대표하는 메타포로 줄곧 사용돼왔는지 모른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키스라는 행위에서 상대적으로 동적이고 재촉하는 입장의 남성을 쉽게 상상할 수 있다. 반대로 키스할 때 여성은 정적이며 허용하는 위치에 놓여 있음을 본다. 물론 키스 그 자체에서 남성과 여성은 능동성과 수동성으로 확연히 구분되지 않는다. 오히려 키스 자체를 통해 여성과 남성은 성적 차별이 없는 상태를 유지한다. 그럼에도 키스하는 행위에 대한 일반적 묘사는 늘 남성의 성적 우월성을 드러내는 장치에 충실하다. 키스 행위에서 남성은 여성의 몸 전체를 덮는 행동을 보이며 여성은 남성의 품안으로 들어오는 형국이 된다. 이런 도식적 행동은 남성이 성희에서 리드하는 입장을 취하게 됨으로써 성차를 확인하게 하는 행동양식으로까지 확대 해석될 수 있다.

성적 환상 속에서 사랑이 익는다

사진/ <당신 날 사랑하세요?> (염중호 작, 2002)
사람들은 키스를 통해 솜사탕처럼 달콤하고 부드러운 사랑의 애무를 상상한다. 경이롭고 환상적이며 모험적이고 열광적인 키스는 사랑하는 사람 사이에서 충분히 기대되는 낭만적 감정을 의미한다. 사실 키스를 통해 우리는 ‘정신적 애정과 육체적 매혹’에 완벽한 결합을 꿈꾸게 된다. 그래서 우리는 키스를 나눌 때, 눈을 감고 스스로 격리되어 혼자만()의 완전한 세상의 주인이 되는 환상을 마다하지 않는다. 강렬한 감정으로 충만된 키스는 다양한 감성을 상대에게 전달할 수 있다. 사랑의 농밀함은 물론이고 상대에 대한 배려와 친밀감 그리고 격정적인 감정의 상태까지 고스란히 전달 가능하다. 이 감정의 벌거벗음은 키스라는 행위가 두 사람에게 완전한 이해를 도모하게 한다. 따라서 상대방의 미묘한 감정적 이탈을 느끼지 못한 상태에서 키스란 결국 자신에게도 상처가 될 수 있다. 성적 환상 없이 행동하는 키스는 인사 그 이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어느 누구도 격정적인 감정으로 인사하지 않기 때문이다. 매혹하는 행위로서 키스는 그래서 스스로에게 매료되는 행위가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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