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요리에 간장소스?
등록 : 2000-09-20 00:00 수정 :
우리 음식문화사상 음식에 대한 관심이 요즘처럼 고조된 적이 없다. 가려져 있던 고유의 전통음식들이 활발하게 제모습을 되찾아 전문음식점으로 등장하고 있고, 세계 곳곳의 음식들까지 다양하게 밀려 들어와 먹을거리의 전성시대를 맞고 있다. 우리의 입맛도 혁신적으로 변해, 맛의 세계화를 주창하면서 음식가 1번지로 불리는 강남에는 퓨전레스토랑들이 중심권을 이뤄가고 있다.
퓨전요리(Fusion Cuisine)는 이제 제3의 음식문화 내지는 제3의 맛으로 굳건히 자리잡았고, 다양한 맛을 추구하는 젊은 세대들에서 중·노년층의 미식가들과 주부들에 이르기까지 폭넓게 고객층을 형성하고 있다.
그러나 아직은 대부분의 퓨전레스토랑의 이용자들이 조리사의 구상을 명확하게 이해하고 요리를 제대로 즐기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따라서 맛의 구상이 뚜렷하고 고객층이 두터운 퓨전레스토랑의 조리장들을 직접 찾아 그들이 추구하는 퓨전의 세계를 탐색해보는 것은 새로운 맛의 세계를 올바로 인식하고 먹는 즐거움을 더해주는 지름길이 아닐까 싶다.
퓨전레스토랑의 선두주자로 지목받고 있는 씨안(Xian/西安, 02-512-1998)은 퓨전 음식의 진원지인 미국 캘리포니아지역의 유명 퓨전레스토랑들과 호흡을 같이하며 고객들로부터 세계적인 수준의 퓨전레스토랑으로 인정받고 있다. 정통 프랑스요리에 동양적인 맛의 조화를 이룬 프랜치 아시안(French-Asian) 조리법을 개발해 서양요리의 기틀 위에 동양의 신비로운 향신료와 신선한 야채들을 절묘하게 조화시켜 새로운 맛을 만들어낸다는 것이다.
애피타이저와 메인요리, 사이드디시 등으로 구별해 취향에 따라 선택할 수 있도록 짜인 메뉴는 어느 것이나 눈맛 만으로는 정통 푸랜치스타일을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다만 샐러드에 얹은 드레싱에 마늘과 고추, 겨자 등을 첨가해 맛이 새콤 매콤하게 입 안에 감돌면서 기존 서양요리가 풍기는 우아한 맛과 절묘하게 조화를 이룬다. 또 메인요리에 얹는 소스도 기존의 크림소스 대신 된장이 가미된 간장소스로 담백한 맛을 살려내고 마무리는 버터로 해 서양적인 향미를 얹어내는 등, 단순한 혼합의 한계를 넘어 섬세한 맛의 세계를 보여준다. 따라서 모든 요리의 하나하나가 준비과정부터 조리에 이르기까지 기존의 방법에 비해 손이 몇 갑절 더 간다고 한다.
제대로 된 퓨전요리는 서로의 특성을 최대한 살려내면서 전혀 어설픈 데가 없는 새로운 맛이어야 하고, 동서양인이 한자리에서 음식을 나누어도 꼭같이 매료될 수 있어야 한다. 이같은 맛을 내기 위해 경영자는 물론 주방인력도 모두 그 분야의 탁월한 전문가들이다. 주인 이상민(31)씨는 미국 코넬대학에서 호텔경영학을 전공했고, 신라호텔에 몸담아 경력을 쌓았다고 한다. 주방의 조리부장 토드 니시모토(30)와 조리과장 윤정진(33)씨는 미국 현지에서 명성을 얻고 있는 퓨전레스토랑에서 익힌 솜씨로 한국에 프랜치 아시안 조리법을 처음으로 소개한 당사자들이다. 서양요리에 입문해 11년차를 맞고 있는 윤씨는 고객이 퓨전요리를 제대로 즐기기 위해서는 조리사 이상의 지식을 요한다고 말한다. 따라서 씨안에서는 요리를 주문하는 손님에게 홀 서빙 직원이 상세한 설명을 해주는 것을 원칙으로 하며, 더 자세한 설명을 원할 때는 윤씨가 직접 테이블로 찾아가 조리과정을 설명해 준다.
식당의 규모도 만만치 않다. 청담동 고급 주택가에 들어앉은 130석 규모의 조용하게 가려진 공간은 현대적인 감각의 세련된 인테리어가 제3의 공간 감각과 제3의 맛을 표현하는 퓨전요리를 즐기는 장소로 손색이 없다. 가격은 일반 레스토랑에 비해 다소 높은 편이다. 점심은 1인 1만5천∼2만원, 저녁은 3만∼4만원 정도이다.
<나도 주방장>
저녁식탁을 위한 간단한 퓨전요리
윤정진씨는 집에서도 해먹을 수 있는 퓨전요리를 추천해주며 “부부가 함께 맛있고 즐겁게 저녁식사를 마친 뒤 잠자리에 드는 것만큼 행복한 일은 없다”는 프랑스의 미식가 사바랭의 명언도 함께 들려준다.
이 요리는 늦게 퇴근한 남편과 함께 잠자리에 들기 전 저녁을 겸한 가벼운 안주요리다. 마요네즈에 다진 마늘과 된장을 알맞게 풀어 된장마요네즈를 만들어 놓고, 냉장고 속에 들어 있는 양배추와 싱싱한 야채를 있는 대로 꺼내 알맞게 썰어 놓는다. 다음으로 오징어를 먹기 좋게 썰어 데치거나 튀겨서 야채와 곁들이면 맛이 절묘하게 어우러진다. 오징어 대신 쇠고기를 프라이팬에 로스식으로 구워 곁들여도 좋다고 한다. 여기에 맥주 한병이면 두 사람의 저녁식사로 멋있는 식탁이 되고도 남는다.
좀더 멋을 낼 수 있는 것으로, 근처 백화점이나 대형매장에서 한두 가지 재료만 미리 준비해 놓으면 큰돈 안 들이고 가능한 것도 있다. 그 재료란 진공포장된 칡냉면이나 2인분으로 알맞은 양의 참치회다. 그 밖의 것은 역시 냉장고 속에 있는 것과 집의 양념류면 된다.
모든 요리는 소스를 만드는 것부터 시작된다. 간장, 맛술, 식초를 같은 비율로 넣고 겨자를 약간 풀어 폰즈소스를 만든다. 여기에 야채류를 알맞게 썰어 소스를 얹어 놓고 볶은 깨를 보기 좋게 뿌려도 좋다. 그리고 참치회를 곁들이거나 칡냉면을 삶아 차게 건져 소스에 무쳐 야채 밑에 깔면 되는데, 칡냉면 한 가지만으로도 충분히 안주와 가벼운 저녁식사를 대신할 수 있다. 유의할 점 한 가지. 새로운 요리의 맛에 반해 맥주를 취하도록 마셔서는 안 된다. 적당량의 술은 요리의 풍미를 더해주지만, 술에 취하면 섬세한 맛을 즐길 수 없기 때문이다. |
글·사진 김순경/ 음식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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