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우구스토 몬테로소 소설을 작품화한 모습. ⓒ남기용 https://www.sulki-min.com/
가라앉은 무언가를 일으키는
아랫집 아주머니가 병원으로 실려 갈 때마다형 지훈이는 어머니, 어머니 하며 울고동생 지호는 엄마, 엄마 하고 운다그런데 그날은 형 지훈이가 엄마, 엄마 울었고지호는 옆에서 형아, 형아 하고 울었다- 박준, ‘연년생’
꼭꼭 숨어라 머리카락 보일라
그가 깨어났을 때, 공룡이 여전히 거기에 있었다.(Cuando despertó, el dinosaurio todavía estaba allí.)

한 일러스트 작가가 해석한 아우구스토 몬테로소 소설의 장면.

만화가 포(FO)가 몬테로소를 추모하는 만화. https://www.gazeta.gt/ 이미지 갈무리
아버지가 돌아가실 것 같아 형에게 연락을 취했다. 아랫목에 누운 아버지가 두 번 시간을 물었다. 형이 왜 안 오느냐고 했다. 목이 마르다고 해 전기밥솥을 열고 데운 베지밀 병을 꺼내 따드렸다. 힘들게 앉은 아버지가 베지밀 병을 내려놓고 시계 반대 방향으로 쓰러졌다. 아버지가 좌탈입멸하고 십 분쯤 지난 후 형이 왔고 이상하게도 시계가 멈춰 있었다. 그 후 오 년간 베지밀을 먹지 않았고 지금도 시계가 멈추면 불길한 생각이 앞선다.
주제를 못 잡는 당신에게
남자친구는 항상 나를 집에 데려다줬다. 처음엔 엄마, 아빠가 동네 산책을 자주 한다고 거짓말을 하며 큰길에서 헤어지자고 했다. 가까워질수록 집을 숨기기가 어려웠다. 늦은 시간엔 여자친구 혼자 깜깜한 골목길을 가게 할 수 없었는지 오빠는 집 앞까지 데려다주겠다고 했다. 그걸 어떻게 거절할 수 있을까. 우리 빌라를 오빠에게 보여주었다. “어디가 너네 집이야?” 올 것이 왔구나. 대충 불이 켜져 있는 4층 베란다를 가리켰다. 또 거짓말을 하게 된 것이다. 그 후로 오빠가 집에 데려다줄 때는 4층까지 올라가는 척했다. 계단 중간중간에 창문이 있어서 오빠는 올라가는 내 모습을 끝까지 바라봐 주었다. 4층 창문에서 환하게 손을 흔들며 얼른 가라고 손짓했다. 진심으로 얼른 갔으면 했다. 창문에서 보이지 않는 계단에 털썩 주저앉아서 센서등이 꺼지길 기다렸다. 집으로 들어간 척을 하며. 남의 집 복도에서 그러고 있는 내 모습이 너무 초라했다. … 데이트 비용이 부담되면서도 아닌 척하며 잘 놀러다녔지만, 속으로는 돈 걱정뿐이었다. 어느 순간부터 만남이 기다려지지 않았고 이유를 말하지 못한 채 헤어졌다.
상대가 의도를 알아채지 못하게
‘그립다’를 한 번 참아보세요지난번 주제는 ‘흉터’였는데, 아홉 분이 글을 보내주셨습니다. 흉터는 두고두고 한 사람을 들었다 놨다 합니다. 오만 가지 생각을 하게 되죠. 사연에 따라 후회나 의문, 억울함, 아쉬움과 같은 마음이 일렁거립니다.툭하면 넘어져서 생긴 오른쪽 무릎의 흉터(혜욱님), 흉하고 가려운 켈로이드 흉터(서영님), 꼬리뼈에 난 종기 자국(세연님), 자전거 타는 모습을 아빠에게 보여주려다 보기 좋게 도랑에 처박혀 생긴 흉터(은광님), 양말 공장 자수 기계 바늘에 찍혀 생긴 왼손 검지의 흉터(일남님), 각기 다른 사연으로 생긴 손등과 손바닥에 난 흉터(해숙님), 헤어질 때마다 비가 와서 비 오는 날 자체가 흉터인 사연(도희님), 자연분만을 하려 했는데, 아이가 자궁에 자리를 잘못 잡고 있어 제왕절개로 낳아 생긴 수술 자국(정선님), 날카로운 그릇에 찍혀 없어진 인중(선옥님).흉터와 얽힌 사람 얘기가 많았습니다. 흉터는 결국 사람을 불러옵니다. 당연한 일이죠. 그런데 제가 약간 정색하고 말씀드립니다. 자기 이야기를 윤리로 치환하지 말기 바랍니다. 윤리는 보편성을 추구하기 때문입니다. 글 마지막에 ‘그 시절이 그립다’ ‘서로를 위로하며 마음이 따뜻해진다’ ‘그리움이 되었다’ 같은 말을 ‘참아’보세요. 다친 자식을 바라보는 부모의 마음을 글로 담으려 하지 마세요. 글이 진부해집니다. 그 마음을 몰라서가 아닙니다. 그 보편타당한 얘기를 굳이 글로 쓰지 마시라는 겁니다.글은 보편성을 추구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글을 쓰는 이유는 우리의 삶과 경험이 갖는 유일성 때문입니다. 유일성을 옹호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런데 윤리는 우리 경험의 유일성을 마치 거기서 거기인 걸로 만들어버립니다. 저는 ‘어머니의 사랑’에 대해선 모릅니다. 제 어머니 ‘이의기의 사랑’에 대해서만 압니다. 그것만 쓰면 됩니다.

무적의글쓰기 공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