좁은 공간에서 한 방향으로 미술작품을 본다는 것
팬데믹 기간 못 봤던, 관객 밀집 ‘진풍경’을 포함한 전시회들 ‘최우람-작은 방주’ ‘춤추는 낱말’ ‘필드 기억’
등록 : 2022-10-08 00:22 수정 : 2022-10-09 01:40
‘MMCA 현대차 시리즈 2022: 최우람-작은 방주’에서 관람객들이 작품 <원탁>을 둘러싸고 보고 있다. <원탁>은 SNS 등에서 ‘직장인의 운명을 반영했다’ 등 광적인 반응을 이끌어낸다. 현시원
팬데믹 이후 ‘오프라인’ 미술관은 종종 관람객으로 가득 차 있다. 2년 만이다. 못 보던 진풍경이다. 사람 풍경도 전시회를 보는 경험에 한몫했다. 관객이 압도적으로 많은 전시를 찾아가봤다. ‘MMCA 현대차 시리즈 2022: 최우람-작은 방주’(이하 ‘최우람-작은 방주’,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2023년 2월26일까지), ‘춤추는 낱말’(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 본관, 2022년 11월20일까지), ‘필드 기억’(백남준아트센터 랜덤 액세스홀, 2022년 11월20일까지) 등을 경유했다. 덧붙여 전시 정보를 감칠맛 나게 다루는 매체 두 곳을 소개한다.
위쪽의 <검은 새>와 아래의 <원탁>.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밈이 된 ‘이미지’, 20분마다 한 번씩 움직이는
‘최우람-작은 방주’전은 코로나19 유행 이후 내가 본 전시회 가운데 관객 밀집도가 최고였다. 명절날 차량정체처럼 딱 ‘거기’에서 무언가를 ‘기다리는’ 모습이 펼쳐졌다. 정확히 말해 장치로 움직이게 고안된 작품의 ‘작동’을 배웅하는 것이었다. 작품 <원탁>은 20분에 한 번씩 5분 동안 움직이게 돼 있다. 어두운 공간에 설치된 7m에 이르는 <작은 방주>도 30분에 한 번씩 20여 분간 움직였다. 관객 수백 명이 한 방향을 보고 있었다. 다르게 각자 보기보다 똑같이 한곳을 보게 하는, 자본의 힘이 없으면 구현하기 불가능한 대규모 장관이었다.
물리적으로 압도되는 규모의 작품이 움직이기까지 하니, 작동 시간의 ‘기다림’은 작품의 후광을 강화했다. 다양한 관객은 스마트폰 카메라를 들고 있었다. 나 또한 그랬다. 전시 관람의 스포일러가 될지 모르지만, 인스타그램에서 이미 하나의 밈(Meme·유행하는 문화 요소)이 된 이 전시의 주요 장면을 꼽아본다.
먼저 <원탁>과 천장에 매달린 <검은 새>. 미술관 1층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내려오면 있는 <원탁>은 인스타그램과 트위터 등에서 ‘직장인의 운명을 반영했다’는 등 광적인 관객 반응을 이끌어낸다. 기울기가 변하는 상판 위로 동그란 공이 움직인다. 그 아래 18개 지푸라기로 된 몸체들이 상하운동을 한다. 허벅지가 얇고 허리는 굽고 눈코입이 없는 이 지푸라기 몸체들은 ‘시시포스의 신화’에 단체로 출연하거나 전쟁영화에서 몇 초 만에 사라질 것 같은 엑스트라 군단인데, 표정이 없는데도 슬픔이 느껴진다. 이토록 슬픈 몸의 ‘자세’라니. 상판이 움직이기에 공은 떨어질 듯 갸우뚱거리고, 머리 없는 지푸라기는 단체로 원탁을 밀었다 내렸다 한다. 안내책자에 명기된 알루미늄, 인조 밀짚, 기계장치, 동작 인식 카메라, 전자장치가 작품의 재료인데 여기에 하나 추가한다면 ‘작동 시간’이다. 20분에 한 번씩 작동하기 때문에 관객은 동그랗게 모여 ‘기다린다’.
전시명과 같은 이름의 작품인 <작은 방주>가 있는 공간 역시 관객이 좌우로 바닥에 등을 대고 도열해 기다리고 있었다. 전시 안내자에게 물으니 지금 관객은 작품이 움직이는 때를 기다리는 거라고 알려줬다. 전시 설명문에 따르면 <작은 방주>는 세로축 12m, 닫힌 상태의 높이가 2.1m에 이른다. “노의 장대한 군무를 통해 항해의 추진력과 웅장한 위엄을 드러내는”(안내책자) <작은 방주>는 동시대 파편적으로 쪼개진 다양한 감각을 한데 묶는 응집된 에너지를 가진 ‘일방향적’ 작품이었다. 폐종이상자로 만든 배의 날개가 기계 작동으로 느리면서 육중한 움직임을 보였다.
타이 작가 출라얀논 시리폰의 작품 <조금만 더 시간을 주세요>. 현시원
매스게임 같은 관람 vs 시간을 조절하는 관람
최우람 작가는 전시장에 이렇게 많은 관객이 오리라는 걸 계산했을까. 작품에는 철저한 계산 아래 협업이 있었다. 전시장에 함께 전시된 작가의 설계 드로잉에서 이를 엿볼 수 있다. “상상 속 움직임을 구현하는 설계 도면”이라는 설명과 달리 설계 드로잉은 ‘작품의 탄생’을 보여주기 위함인데, ‘제품의 탄생’을 목격한 듯했다. 제작 과정에서 작가는 (주)에이로봇, 오성테크, 클릭트, 한양대 로봇공학과 등과 기술협력을 했다. 현대자동차그룹 로보틱스랩의 기술자문을 받고 현대자동차의 후원을 받았다. 관객 밀집도 같은 예상치 못한 돌발변수와 함께 현대 설치작품이 걸쳐 있는 풍경이다.
같은 공간에 모두가 좁게 모여 앉아 한 방향을 본다는 것은 코로나19로 느껴보지 못한 감각을 불러일으켰다. <작은 방주>는 전시 소개글에 적힌 ‘팬데믹 시대의 동시대 아픔에 작가가 건네는 헌화’라기보다는, 흡사 진귀한 마술을 기다리는 관객의 호응으로 ‘접속자 수’가 많은 전시가 됐다.
코로나19 이후 관객의 밀집을 반드시 트위터와 인스타그램 때문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작품이나 작가의 의도와는 무관하게 밈이 되어 퍼져나가는 것은 제이피지(JPG) 파일 이미지와 태깅(#tag)이다. 전시장에서 우연히 만난 한 미술 인사는 “관객 수와 전시 평가가 같이 갈 수는 없는데 이렇게 관객이 많은 전시가 좋은 전시라는 인식이 생길까 걱정”이라고 말했다.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열리는 ‘춤추는 낱말’전은 ‘시’(Poetry)를 모티브로 한 기획전이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의 전시 ‘관람’이 흡사 1980년대 매스게임 같은 군무 태세를 갖췄다면, ‘춤추는 낱말’전은 작품 하나하나가 다른 기운을 뿜어내며 이를 묶어낸 큐레이터(박가희)의 의도와 시선을 파악하는 데 관객이 시간을 쏟게 한다. ‘춤추는 낱말’에도 관객은 많았지만, 이 전시는 혼자 시간을 설정해가며 보기에 적합하다.
전시는 “아시아적인 사유와 성찰이 무엇인지 유추”(안내책자)해보자는 도전 과제를 던진다. 관객은 이 질문들이 다른 각도로 숨어 있거나 드러나 있는 작가들의 작업을 따라가보게 된다. ‘춤추는 낱말’의 관람은 여러 작가와 기획자 공동의, 또 각자의 연구 결과를 보는 배움의 시간이다. 예를 들어 타이 작가 출라얀논 시리폰은 작품 <조금만 더 시간을 주세요>에서 4년 동안 매일 신문 속 사진을 오려 붙인 작품을 보여준다. 2014년 5월 타이 군대가 벌인 쿠데타 이후 발행된 신문을 재료로 했다. “2019년 이후 발생한 전세계 군중운동과 초국가적인 사회운동에 관한 논의를 담은”(안내책자) 헤라 찬과 에드윈 나스르의 <만들어가는 역사>는 라디오방송으로 송출됐던 에피소드와 이번 전시에서 새롭게 제작된 에피소드로 구성됐다.
백남준아트센터에서 열리는 ‘필드 기억’. 백남준아트센터 제공
코로나19 이후의 전시회를 경험하고 싶다면 백남준아트센터의 두 전시도 적극적으로 권하고 싶다. 미술가 김희천과 음악가 이옥경의 협업을 제안한 백남준아트센터(큐레이터 이수영)는 ‘청각적 몰입을 요청하는’ ‘필드 기억’전으로, 사람 사이에 있지만 혼자 있는 것 같은 어떤 명료함을 선사한다. 곧 오픈을 앞둔 전시 ‘백남준의 보고서 1968-1979’는 타자기 앞에 있는 백남준의 이미지를 누리집 화면에 띄우고 있다. 피아노가 아니라 타자기를 두 손으로 치는 백남준의 손에서 철저히 계산된 실험적 제안이 나왔다. 전시는 백남준을 ‘정책가’로 본다고 한다.
현시원 독립큐레이터·시청각 랩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