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터로 찾아갔을 때 영탁씨가 한 말이었다. 14층 건물에서 겅중겅중 뛰듯 줄을 타고 내려온 직후였다. 공중에 매달린 그가 일하는 모습을 한동안 지켜봤다. 의자에 앉듯 안장 위에 다소곳이 앉아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막상 보니 엉덩이를 작은 안장에 걸치고 벽에 다리를 붙이고 선 듯한 자세였다. 그 상태로 좌우를 오간다.
“초보랑 일 좀 하는 사람의 차이가 뭐냐면, 베테랑은 로프 타는 데 힘을 쓰지 않고 오로지 일할 때만 힘을 쓴다는 거예요. 초보는 줄을 타는 데 힘이 다 들어가요. 등이 뻣뻣하고 배에 힘이 들어가고. 경직돼 있어요.”
팔에 들어가야 할 힘이 긴장해서 배로 가면 안 된다. 외벽 창틀에 붙은 실리콘은 생각보다 단단하다. 오랜 시간 비바람에 노출된 탓에 어떤 것은 돌덩이 같다. 힘을 꽉 주고 한 번에 칼로 그어 잘라내야 한다. 팔에 쥐가 날 정도다. 어깨 통증은 고질병이다. 발을 땅에 딛고 하는 작업이 아니다. 잡을 곳도 마땅치 않다. 힘의 반동을 온전히 내 몸이 감당해야 한다. 그러니 불필요한 힘을 빼야 한다. 그게 자기 마음대로 되나?
“확신이 생기면 되는 거죠. 이건 절대 안 끊어진다.”
이 말을 이해한 건 건물 옥상에 오르고서다. 그를 따라간 옥상에는 색색의 로프가 여기저기 묶여 있었다. 구조물을 기둥 삼아 반듯하게 삼각형 모양을 한 것도 있고 엉킨 듯 동선이 복잡한 로프도 있었다. 무엇이건 초보자가 보기에도 단단하게 매듭지어져 있다. 영탁씨는 옥상 난간을 넘고 지붕을 올라타 로프를 수거했다. 어떤 곳은 난간조차 없이 낭떠러지다. 거기 서서 단단하게 묶인 매듭을 풀고 줄을 모은다. 나는 그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 조마조마한데 그는 “오늘 날이 참 맑네요”란다. 그의 등 뒤로 펼쳐진 하늘이 푸르다 못해 하얗다.
옥상 풍경은 내 상상과 달랐다. 평평할 거라는 예상과 달리 구조물이 꽤 많다. 솟아오르고, 튀어나오고, 기울어지고. 생각보다 표면이 거친 곳도 있다.
“이런 데 로프가 다 쓸려요. 돌출된 면에 줄이 쓸리면서 끊어질 수 있고. 위험하죠. 또 고정물이라 생각해서 묶었는데 생각보다 약할 수도 있고. 기둥이라든지 로프 걸 곳이 아예 없는 옥상도 있어요. 그러면 앙카(볼트)를 박아야 해요. 그걸 어디에 박을지, 그런 판단이 다 경험이죠. 건물마다 지형이 다르니까. 3년 정도 해야 눈에 보여요. 구조물을 어떻게 이용해야 한다, 이런 게.”
‘내가 로프공이구나’라는 확신이 들던 때, 몸에 로프공 타투를 새겨넣었다. 벽에 쓸리고 긁힌 상처도 그려넣은 듯 붉다.
현장에는 수많은 경우의 수가 있다. 겪지 않으면 모르는 일이다. 숱한 현장 경험을 몸에 붙여놓았다. 그러니 자신을 믿는다. 매듭 묶는 것만 봐도 이 사람이 줄 좀 타는구나, 알 수 있다고 했다. 심지어 얼굴만 봐도 안다.
“줄 타는 사람끼리는 딱 보면 알아요. 안 매달려 있어도 진짜 얼굴만 봐도 알아요. 줄을 얼마나 타겠구나. 선수들은 옥상에서 표정이 달라요. 불안함이 없는 거죠.”
오랜 경험이 확신을 만들고, 확신이 표정이 된다.
매듭을 풀어 옥상으로 끌어온 줄이 꽤 길다. 영탁씨는 줄을 짧게 잡고 원을 그리듯 팔을 움직인다. 그때마다 로프가 그의 목에 얹힌다. 저거 근골격계, 라고 생각하는데 어느새 긴 로프는 포개져 타래가 되어 있다. 일손이라도 거든다고 한 덩어리 받아 들었는데, 무겁다. “어? 이거 (지름) 11㎜라 가벼운 편인데.” 로프만 무겁나. 몸에 주렁주렁 찬 모든 것이 쇠붙이다. 쇠에 부딪혀 몸 곳곳이 아프진 않을까? 그런 ‘사소한’ 걱정을 하기에 그의 일터는 너무 높다.
“전신 벨트(하네스) 가운데 있는 쇳덩이, 이게 디(D)링인데 여기에 모든 무게가 실리고. 이건 아삽락(휴대용 추락 방지 장비). 요 톱니가 있어서 원줄(메인로프)이 끊어져도 쑥 내려가지 않고, 착착착, 속도를 줄여 떨어질 수 있죠.”
경험과 믿음만으로 안전할 수는 없다. 보조장치가 필요하다. “이건 똥판, 아니 안장.” 달비계, 젠다이라고도 부른다. 안장과 로프는 틈틈이 상태를 확인해야 한다. 삭아서 끊어지면 추락이다 “칼, 실리콘, 이런 것마다 안전고리를 다 걸어야 하거든요. 원칙상. 떨어지면 큰일이니까. 그런데 그러면 너무 많아져서.” 보조장치가 동선을 해쳐 오히려 안전에 방해될 때가 있다고 했다. 외부 안전망 없이 장비로 안전을 지키려고 하니 작업자들 짐만 무거워진다. 공사 현장 풍경이 생각나 그물망 설치에 관해 물으니, “어떤 건물주가 허락해주겠어요?” 한다. 일하다가 아래층 방충망만 건드려도 그날은 한 소리 듣는 날이라 했다. 그는 현실을 이야기한다.
하루 작업량에 따라 버는 돈이 달라진다. 비가 오면 맞으며 일하고, 벌이 날아오면 쏘이며 일한다. “옥상에서 있다보면 벌이 한두 마리 날아다녀요. 건물 어디에 벌집이 있나보다. 오늘 누군가 쏘이겠구나.” 쏘였다고 줄 타고 올라와 약 바르는 작업자는 없다. 아파하며 일한다. 화장실 가는 일도 참아야 하는 하늘 위다. 그런 시간 싸움 앞에 건물 관리자와 협의해 안전장치를 설치하는 일이 들어갈 틈은 없다.
몇 년 전 아파트 주민이 줄을 끊어버려 로프공이 추락사한 사건이 있었다. 잠을 방해했다는 이유였다. 영탁씨는 몇 시간을 혼자 허공에서 일한다. 고즈넉하지만 외롭다. 라디오나 음악을 많이 듣는다. 그 라디오 소리가 죽어야 하는 이유가 됐을까. 영탁씨도 주민 항의를 종종 받는다.
“고생 많습니다. 조심하세요. 이런 인사는 남의 건물 할 때나 하는 이야기고요. 일하다보면 아래에서 막 불러요. 우리 집 방충망 밟지 마세요. 실리콘 떨어지게 하지 마세요. 화내는 거죠.”
아래층 사람들이야 당연한 요구라 생각하겠지만 끈 하나 매달아놓고 하는 작업이라 예상한 동선에서 벗어나면 사고가 생긴다. 자칫 보지 못한 돌출 부위에 로프가 쓸리기도 한다. 내 안전은 내가 지키는 것. 이 말에는 자신의 안전이 타인의 관심 영역이 아니라는 씁쓸한 인식도 들어 있었다.
그가 옆에 끼고 일하는 가방이 있다. 검정 가방인데 하얀 실리콘액이 잔뜩 묻어 원래 색깔을 알아보지 못할 정도다. 만져보니 가죽이 딴딴하다. “튼튼하죠?” 처음 일할 때부터 가지고 다닌 가방이라고 했다. 인상에 남은 것은 가방이 아니라, 그의 말투에서 드러난 뿌듯함이었다. 수많은 시간을 일터에서 보내며 단단해진 가죽이다. 마치 자신처럼. 하지만 사람들 눈에 보이는 것은 덕지덕지 묻은 실리콘. 낡은 가방과 얼룩덜룩한 작업복에서 오랜 시간 쌓아올린 숙련을 읽어내는 사람은 별로 없다.
외벽 청소와 실리콘 보수 작업을 둘 다 해본 영탁씨는, 솔직히 말해 청소가 더 많은 기술을 필요로 한다고 했다. 건물 벽면 재질에 따라 사용해야 하는 약품과 도구가 다르다. 건물 전체를 작업해야 하기에 일도 더 고되다. 약품 대다수가 산 성질이기에(예전엔 불산도 많이 썼다) 화상은 물론이고 줄이 녹을 가능성도 있다. 알아야 할 것도 많고, 일도 힘들고, 위험은 더 크다. “그런데 청소가 단가가 더 낮아요.” 이유는, 청소니까. “청소일은 단순하다는 편견 때문이죠. 아무리 해도 단가를 못 올려요.”
실리콘 창틀 보수로 일을 바꾼 이후 그는 거의 혼자 일한다.
“일하다보면 빨라지잖아요. 속도를 내다보면 미친 듯이 심장이 뛰어요. 바쁘고 정신이 팔려 있으면 내 의도가 아니어도 속도가 막 나는 거예요.” 그럴 때는 심호흡한다. “천천히 하자. 속으로, 집에 빨리 가봐야 할 것 없다.” 사고 날까 염려해서만 속도를 늦추는 것은 아니다. 빨리 한다는 건 대충 한다는 말과 같다. 이 일의 큰 장점이 간섭할 사람이 없다는 것인데, 동시에 보는 사람이 없으니 대충 하려는 유혹에 빠지기도 쉽다.
이 욕심을 막는 것은 숙련자의 자부심이기도 하지만, 자기 사업체를 쥐고 있다는 책임감도 있었다. 3개월짜리 신입이 독립해서 사장님이 됐을 때, 막막했던 것은 하늘 위에서만이 아니다. 고객을 확보할 수 있을까. “이게 줄만 탄다고 되는 일이 아니니까요.” 이것도 17년이 지난 이야기. 그 세월 동안 혈기 왕성한 청년은 ‘아프면 안 된다’를 머릿속에 각인한 자영업자가 됐다. 업무 외엔 힘이 들어가는 일을 하지 않는다고 했다. 몸 쓰는 취미도 없앴다. 등산, 암벽 등반은 당연히 안 한다. 아프면 일을 못하니까. 고객들과 약속된 날이 일정표에 가득하다. “성실하지 않으면 선수 못하죠. 자영업도 못해요.”
고소 작업의 특성상, 기술과 숙련을 묻는 사이사이 안전을 생각했다. 이 글을 쓰는 동안, 50대 로프공의 추락사 소식을 들었다.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여부를 조사한다고 했다. 사람은 이미 죽었는데. 보조로프 사용, 전신 안전벨트 착용, 2인1조 작업, 안전그물망 설치 등 의무화. 추락이 곧 죽음이 아닐 수 있는 대책이지만 법에 적힌 바 없다. “법에 우리(로프공)는 없어요.” 실제 산업안전보건법에는 고소 로프 작업(일명 달비계 작업)에 관한 세부 규정이 없다.
“로프 탈 때가 제일 좋아요. 걸리적거리는 게 없어요. 그래서 알았죠. 나는 로프공이구나.” 왜 자기 일을 좋아하는 사람이 죽음을 염두에 두며 일해야 할까.
“늘 추락을 머리에 넣고 다니죠. 또 그렇지만 생각 안 해요. 안 죽을 거니까. 돈 벌려고 하지, 죽으려고 하는 건 아니니까.”
그렇다. 일은 좋아서 하고, 인정받고 싶어 하고, 잘살고 싶어 한다. 이 성실하고 재주 많은 로프공이 ‘내 안전은 내가 지키는 것’을 베테랑의 덕목으로 여기지 않는 세상을 바란다.
글 희정 기록노동자·<두 번째 글쓰기> 저자, 사진 최형락*베테랑의 몸: 기록노동자인 희정이 자신의 분야에서 숙련공(베테랑)으로 일해온 이들을 만나, 그들의 몸과 숙련노동에 대한 이야기를 적습니다. 4주마다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