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박승화 기자
“벤치의 할머니 좀 찍어주세요”
-50만 권을 판 베스트셀러 작가가 된 소감은?“얼떨떨하다. 내 커리어(경력)에서 이런 일을 할 줄 몰랐다. 학교 때는 일기도 안 썼다. 글을 잘 쓴다고 생각지 못했다. 사생대회에서 뽑혀도 백일장에선 뽑히지 못했다. 문학적 표현 같은 걸 할 줄 몰랐다. 지금 쓰는 것이 문학적인 글이 아니라, 생각을 정리한 글이어서 건축과 잘 맞는 것 같다.” -저서 네 권이 연속으로 베스트셀러가 됐다. 그 비결이 무엇인가?“구어체로 쓰기 때문인 것 같다. 구어체라서 사람들에게 쉽게 다가간다. 손으로 쓰는 시대였다면 구어체로 쓰지 못했을 것이다. 컴퓨터가 있어서 구어체로 쓸 수 있었다. 학교에서도 선배 교수들이 ‘논문을 구어체로 썼다. 문어체로 쓰라’고 하는 경우가 있다. 문어체로 써야 하는 논문은 힘들다.”-다른 도시, 건축 작가들과 무엇이 달랐을까? “대한민국 국민이 공간과 건축에 관심을 가질 소득(3만달러)이 됐을 때 내가 책을 냈다. 대학 때 ‘건축이 인정받으려면 선진국이 돼야 한다’는 말이 있었다. 1990년대에 서태지와 김건모가 음반을 100만 장 넘게 판 것과 비슷하다. 그런 시장이 있어서 책을 많이 팔 수 있었다. 또 나는 일상적인 이야기를 한다. 실질적이고 삶에 와닿는 이야기를 한다. 예를 들어 승효상 선생(전 국가건축정책위원장)의 글은 철학적이고 어렵다. 내가 공부할 때 건축 책을 별로 안 읽은 것도 도움이 된 것 같다. 다른 사람들은 건축계 스승들을 이야기하지만, 나는 내 이야기를 한다. 그런 점이 쉽게 다가가는 것 같다.
유현준건축사사무소의 1층 외벽엔 평소 유 교수의 철학처럼 행인들이 잠시 앉아서 쉴 수 있는 벤치가 만들어져 있다. 박승화 기자
글쓰기는 설계
인문·사회과학 분야에서 유 교수 같은 베스트셀러 작가는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 정도다. 유 전 청장은 400만 권 이상, 유 전 장관은 100만 권 이상 팔았다고 알려져 있다. 유 전 청장은 유 교수의 사무실 근처에 살고, 유 전 장관은 한 방송 프로그램에 함께 출연해 친해졌다. 유 교수는 “두 분 다 좋아하는 선배님이고 여러 차례 뵀다. 그분들처럼 100만 권 이상 팔고 싶다”고 웃었다.-당신에게 글쓰기는 무엇인가?“건축은 제약이 많다. 여러 사람과 흥정해야 하고, 예산 제한이 있고, 건축주의 취향이 있다. 그래서 원래 의도의 반이나 실현하면 다행이다. 그러나 글은 처음부터 끝까지 내가 컨트롤한다. 아무도 뭐라 하지 않는다. 자유를 느낀다. 스트레스도 해소된다. 건축은 하나를 현실화하기도 어렵지만, 글로는 뭐든지 할 수 있다.” -글은 언제 쓰나?“시간은 충분하지 않다. 가장 좋은 때는 아침에 식구들이 일어나지 않았을 때다. 식탁에서 주로 쓴다. 칼럼 위주라 시간이 많이 필요하진 않다. 코로나19 이전엔 출장 가는 비행기에서 많이 썼다. 출장 가면 비즈니스석 끊어주고, 콘센트도 있고, 먹을 것도 갖다줘서 글쓰기에 좋았다.(웃음) <어디서 살 것인가>의 3분의 1가량은 외국 출장을 다녀오며 비행기 안에서, 출장지에서 썼다.” -어디서 글쓰기 영감을 얻나?“일하면서 얻는다. 일상에서 습관처럼 건축, 공간을 읽는다. 건축엔 증명된 진리가 없다. 거장들도 각자 자기 시각으로 이야기한다. 나도 스스로 생각하고 상상한다. 내 생각을 이야기한다. 논문처럼 주석을 달 필요가 없다. 그래서 내 말이 ‘뇌피셜’이라는 힐난도 많다.(웃음)”-글쓰기 습관, 루틴이 있는가? “설계와 같다. 영감이 있으면 스마트폰에 키워드를 적는다. 아침에 일어났을 때 그 생각이 또 나면 문장으로 정리하고, 머리가 맑으면 글로 펼친다. 먼저 칼럼 같은 짧은 글을 쓰고, 그것을 키워서 책으로 낸다. 말로도 정리한다. 수업 시간에 말하면서 생각을 정리한다. 말하면서 좋은 아이디어가 떠오르기도 한다. 수업 시간에 1시간30분을 떠들다보면 모든 게 다 나온다.” *유현준, 청와대와 용산에 대해 말하다 [21WRITERS②]로 이어집니다.https://h21.hani.co.kr/arti/culture/culture_general/51791.html출간 목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