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김진수 선임기자
글로생활자? 말로생활자?
정은정(45) 작가는 끊임없이 스스로 묻고, “소심하다”고 할 만큼 고뇌한다. ‘쓰다’와 ‘적다’ 사이에서 굳이 선택이라는 것을 하는 엄밀함이 그렇다. 엄격해서도, 올바름을 추구해서도 아니다. 글의 무게를 누구보다 무겁게 느껴서다. 글 쓰는 자신의 마음가짐, 그 글 속에 기록한 사람들, 나아가 글을 읽을 독자의 마음까지 헤아려 세심하게 단어를 고르고, 글의 고갱이를 예리하게 벼린다. 작가이되 연구자여서 몸에 밴 태도다.그는 스스로를 ‘농촌사회학자’라고 소개한다. 소속된 기관이나 학교는 없다. “주로 하는 일은 전국을 떠돌며 말과 글을 팔러 다니는 일이다. 이런 직업을 두고 우스갯소리로 ‘글로생활자’라고도 하고 ‘말로생활자’라고도 한다. 글과 말로 쌀과 반찬을 구한다.”(<밥은 먹고 다니냐는 말>) 농민을 대상으로 강의를 다니고, 라디오방송과 팟캐스트에 출연한다. 신문에 칼럼을 쓰고, 세 권의 단독 저서를 냈다.(어린이책 제외)2014년 처음 쓴 <대한민국 치킨전(展)>은 11쇄를 찍은 베스트셀러다. “음식사회학의 시작”이라는 평가(최진규 포도출판사 대표)와 함께 ‘2010년대의 책’으로 꼽혔다.(2019년 신문 <한겨레>가 출판·서점계 전문가들에게 추천받아 선정) 4년 뒤 나온 두 번째 책 <아스팔트 위에 씨앗을 뿌리다>는 백남기 농민 투쟁을 기록한, 일종의 르포르타주다. 2021년 펴낸 <밥은 먹고 다니냐는 말>은 따듯하면서 문학적인 에세이집이다. 셋 다, 장르도 문체도, 달라도 한참 다르다.<대한민국 치킨전>에서 그의 글은 발랄하고 유머러스하다. “치킨이야말로 끼니-안주-간식의 삼위일체를 이룰 수 있는 유일한 메뉴, ‘치느님’이다. 다양한 치킨 메뉴 고르기도 귀찮다면 한마디만 외치면 된다. ‘반반 무 많이!’”백남기 농민의 죽음 앞에서는 한없이 단단하고 곧다. “백도라지는 병원에 도착한 후 비닐봉투에 담긴 아버지의 옷을 얼떨결에 받아들었다. (…) 백도라지는 그 옷 봉투를 손에서 놓지 못하고 쓰러진 아버지 곁을 지켰다. 물 202톤과 최루액 440리터의 무게이자 한 사람의 생명을 빼앗아간 죄의 무게였다. 함부로 내려놓을 수도, 번쩍 들어올릴 수도 없는 그런 무게.”(<아스팔트 위에 씨앗을 뿌리다>)<밥은 먹고 다니냐는 말>에서는 문학소녀 같은 감수성이 포근하다. 이를테면 이런 문장들. “엄마는 사 남매의 생일을 모두 과일이나 먹거리로 빗대서 말씀해주셨다. (…) 음력 7월 말이 생일인 작은언니는 포도의 계절에 태어났다. (…) 자기 생일을 보름 앞두고 포도의 계절에 태어난 작은언니는 포도의 계절에 떠났다.”다만 공통점은 있다. 음식(밥상), 사람, 사회(농촌·농업)가 글의 주재료라는 점이다. 같은 재료를 놓고서 어떻게 이렇게 매번 다른 글을, 그것도 맛깔나게 쓸 수 있는지 궁금했다. 2022년 3월6일 경기도 남양주에 사는 정은정 작가가 가끔 글을 쓰러 찾는다는 정약용도서관에서 그를 만났다.-책마다 문장의 결이 굉장히 다르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일부러 의도하고 쓰신 걸까요?“저는 글쓰기 실험을 많이 해요. 좀 빤한 글을 많이 경계하는 편이거든요. ‘(두 책의 저자가) 동일인이라는 걸 몰랐어요’라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되게 좋아요. 의도적으로 흐트러뜨리는 재미죠. <아스팔트 위에 씨앗을 뿌리다>는 화자가 남성인지 여성인지 모르는 글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거든요. <밥은 먹고 다니냐는 말>은 이 땅에서 아이 키우면서 글 쓰는 사람이라는 정체성을 강력하게 드러냈고요. 나중에라도 혹시 엉뚱한 글을 쓰면, 정말 상상도 못할 사람이 되어보고 싶어요. 하하.”-학술언어와 글쓰기 방식이 완전히 달라서 힘들진 않았나요?“<대한민국 치킨전>은 첫 책이기도 했고, 원래 쓰려던 박사 논문을 밀쳐놓고 쓰는 바람에 대중서 감각이 없었죠. 처음에 논문처럼 엄청 자료를 붙여 보내서 편집자님이 당황하셨어요. 당시 출판사 따비의 신수진 편집자님이 ‘고등학교 2학년 정도가 읽고 이해할 수 있는 책이면 좋겠다’고 해서 많이 따라갔어요. <대한민국 치킨전>이 그렇게 훅훅 읽히는 이유 중 하나는 우리 아버지예요. 평생 농사짓고 노동하셨던 아버지는 거의 무학자에 가까워요. 제가 사회학과를 나왔는지 사학과를 나왔는지조차 아직 모르시는 분이거든요. 적어도 아버지가 이 책에서 무슨 말을 하는지는 아셨으면 좋겠다는 욕망이 컸어요. 글의 대상자가 뚜렷했죠. 책을 드리니 아버지가 단박에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아시더라고요. 다행이다, 생각했죠.” ‘도마도 집’ 막내딸, 농촌연구자 되다
정은정 작가는 ‘도마도 집’ 막내딸이다. 충북 충주에서 서울로 올라온 부모님은, 1980~1990년대 경기도 남양주에서 비닐하우스 농사를 지었다. 겨울부터 온실을 따로 만들어 토마토 모종을 직접 길러도, 값이 내려 팔리지 못한 토마토는 밭에 짓이겨지곤 했다. “지금도 토마토는 입에 대지 않는” 이유다. 토마토는 먹지 않아도 그는 “‘도마도 농사’를 짓는 이들을 관찰하는 농촌사회학 연구자”가 됐다. 대학교 학부에서는 문학을 전공했지만, 2000년 어머니가 젊은 나이에 암으로 세상을 떠나는 모습을 본 뒤 대학원에서 “사회학으로 급하게 항로를 변경했다”. 농촌, 농업, 농민은 “집안일”이었고 ‘여성 농민의 죽음’을 구조적으로 규명하고 싶었다. 농촌문제를 더 친숙하게 설명하고 이해시키려면 ‘먹는’ 이야기에서 출발해야 했다. 머리는 이론에 있어도, 손발과 입은 구체적인 현실에 있어야 하니까. 음식사회학 글쓰기의 첫 소재는 치킨이었다. 그의 석사 논문에서 ‘스토리를 끌고 가는 힘’을 용케 발견해낸 편집자가 출판을 제의했다. 석사 논문 주제가 치킨이었냐고? 전혀 아니다. ‘1960년대 미국의 한국 ‘농촌 만들기’ 담론 전략-미 공보원(USIS) 발간 농촌 사람들을 위한 잡지 <새힘> 분석을 중심으로’라는 제목의 논문에서 ‘기술 원조’를 받은 근대화 이야기에 주목해, 이를 무려 ‘치킨’ 이야기까지 끌어간 편집자의 놀라운 힘이다. 하지만 연구자에서 작가로 정체성을 바꾸기가 쉽진 않았다.-첫 책을 쓰는 데 4년이나 걸리셨다고요. “2011년 출판 계약서를 덜컥 쓰고 2014년 책이 나왔으니, 출판사도 얼마나 답답했을까 싶어요. 계약금을 다시 돌려주려고 부단히 애썼던 기억이 나요.(웃음) 출판사 대표님의 후일담에 따르면, 연락하면 제가 계속 ‘논문 읽고 있다’ ‘취재하고 있다’고 하고, 어느 날 전화하면 ‘치킨 프랜차이즈 창업 설명회 와 있다’고 하니까 너무하다고 생각하셨대요. 초짜의 과잉 열정이 일을 망치겠다 싶어서, 출판 공모전에 확 내버리셨대요.”정은정 작가의 꼼꼼하고도 세세한 취재는 기자도 놀라울 정도다. 1년간 치킨 창업 온라인 카페를 탐구하고, 몇 년간 여러 치킨 프랜차이즈 창업 설명회를 쫓아다니고, 치킨집 사장님들을 인터뷰하고, 직접 치킨을 튀겨보며 영업비밀을 알려주는 속성 ‘창업 학원’에 등록하는 식이다. <아스팔트 위에 씨앗을 뿌리다>를 쓸 때는 “평전들과 민주화운동 관련 기록물, 백남기 농민 투쟁 관련 기록을 훑는 데 반년을 보냈다”.*정은정, ‘쓰기’보다 사람과 이야기를 ‘적는’ 농촌사회학자 [21WRITERS②]로 이어집니다.https://h21.hani.co.kr/arti/culture/culture_general/51789.html출간 목록

황예랑 기자